코로나 이후 거센 사회변화
일상의 삶 팍팍하게 만들어
주변 돌볼 ‘여유’ 가질 시간
한숨 내려놓고 ‘쉬어 갑시다’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연기법 
모든 생명의 ‘소중함’ 일깨워
우리의 목적지, ‘더불어 행복’
생명이 함께 행복한 연말되길

연말연시다. 지금쯤이면, 잊고 있던 친지도, 잊고 있던 친구들도 번호를 찾아서 안부를 묻고 덕담을 건네는 것이 우리네 풍습이다. 필자도 우리 불자님들에게 묻고 싶다. 댁내 평안하신지요? 혹은 무탈하신지요? 라고 말이다. 유독 많은 사건과 사고들이 있었던 한 해이기에, 불자님들의 가정에 신상에 무탈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건네고 싶어서이다.

코로나19 시대가 겨우 진정되나 싶었더니,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의 전반적인 변화가 우리 일상의 삶에 미친 여파가 거푸 닥쳐온다. 게다가 미국발로 시작된 금리인상이 우리 삶을 더욱 팍팍하게 만들고 있기도 하다. 여러 가지로 근심과 걱정의 인사말이 주변 사람들에게 건네지지 않을 수 없는 연말이고 연시인 것 같다. 그래서 더더욱 주변에 대한 관심이 간절해지는 때이다. 

부처님이 가르치신 사성제의 첫 번째 도리인 고성제를 풀면 ‘인생은 고통스럽다’라고 풀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말이다. 좀더 찬찬히 고민해보면, 반드시 고통스러움만으로 얼룩진 것이 인생은 아닐진대 부처님은 왜 삶의 장면들에 대해 ‘일체개고(一切皆苦)’라고 표현하셨을까? 분명 고통에 겨워 힘들어 하라고 하신 말씀은 아닐 테다. 그 고통을 만들어내는 모든 것들을 직시하고, 그 직시한 고통의 원인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부터 벗어나 행복한 삶을 일구어내라고 하신 말씀일 테다. 

우리는 올해 또 한 해를 떠나보내는 막바지를 맞이한다. 숨 가쁜 일상 속에서 또 바쁜 마음을 더해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을 한국 사람이기에, 지금 이 연말이라도 한 숨 내려놓자고 말씀드리고 싶다. “쉬어서 쉬엄쉬엄 갑시다!”

이 글을 읽는 불자님들에게 이 말씀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주변의 함께하는 이들에게도 이 말을 공유하자고 말씀드리고 싶다. “우리 너무 바쁘게 살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은, 이 연말 한 달쯤은 쉬엄쉬엄 주변을 둘러볼 여유를 가져도 좋지 않겠습니까?”

굳이 멈추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찬찬히 틈을 내어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를 억지로라도 낼 때가 아닌가. 연말이니까 말이다! 평소에는 바쁜 핑계라도 대었지만, 바쁜 핑계라도 접어두고 주변에 관심을 보이는 척해도 이상하지 않은 연말이니까 말이다.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연기법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모든 생명들의 가장 고귀함을 일깨우는 가르침이기에, 그 생명들은 남김없이 모두 행복해야 한다는 목적지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목적지를 종종 혹은 잠깐 잠깐이 아니라 늘 잊어버리고 산다. 지금이라도 부처님이 당부하신 말씀을 되새겨, 잊어버리고 묻어두었던 진실을 꺼내어 보자. 연말이니까. 다른 때는 몰라도, 연말에는 다들 그러니까 말이다. 

고귀함을 일깨우는 것, 행복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우는 것은 사실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내가 주변의 많은 이들에게 관심을 바라고 있듯이, 그들 다른 생명 역시 나의 관심을 기다린다. 우리가 ‘바쁘다’는 일상의 핑계를 잠깐만 멈추고, 전화 한 통 걸어서 “안녕하신지요?”라고 물어주기만 하면 된다. 그 한 통의 전화가 관심의 표현이고, 소중함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올 연말연시에는 이제는 일상적이 되어버린 채팅 말고, 관심을 보여주지 못한 소중한 이들에게 전화 한 통 걸어 보셨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 불자님들이 ‘내가 소중히 여긴다’는 말 한마디 남보다 먼저 나누는 주인공이 되셨으면 좋겠다. 그것이 함께 행복해지고, 서로의 소중함을 일깨우려 했던 부처님의 가르침이 우리 불자들에게 요구하는 목적지니까 말이다. 그래서 필자도 우리 불자님들께 먼저 여쭙고 싶다.

“안녕하신지요? 평안하시지요?”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