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 이하 법계도)는 통일신라 의상 스님이 방대한 <화엄경>의 요지를 210자로 응축하고 54각(角)이 있는 도인(圖印)을 합쳐 만든 것이다. 이 같은 법계도가 최근 가톨릭에 의해 수난을 겪고 있다.

가톨릭 서울대교구가 운영하는 서소문역사박물관에는 최근까지 법계도를 왜곡한 나전칠화 ‘일어나 비추어라’가 전시돼 있었다. 이를 확인한 불교계는 지난 10월부터 철거와 재발 방지 약속, 진정성 있는 사과를 가톨릭 측에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11월 18일에는 조계종 중앙종회 대표단과 해인사 스님들이 서소문역사박물관과 가톨릭 서울대교구를 방문해 해결 방안을 논의하고자 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가톨릭의 문전박대와 사과 거부 의사였다. 

특히, 서소문역사박물관장 신부는 “작가가 왜곡과 도용을 인정하지 않아 사과를 할 수 없다”는 변명만 되풀이했고, 배석한 변호사는 초상권 등 법적 문제를 거론했다. 종교인 간의 대화를 하겠다는 의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 

가톨릭 측은 법계도를 전통문화유산으로 뭉뚱그리며 공공재로 만들려 하고 있다. 어디까지나 법계도는 불교의 성보이고 법구다. 그 의미를 알지 못한다면 법계도는 아무 의미가 없다. 불교의 성보인 법계도를 왜 가톨릭이 마음대로 가져다가 공공재로, 전통 문양으로 만드는 것인가. 

故법정 스님과 故김수환 추기경의 우의는 한국종교계의 귀감이었다. 다종교사회에서 한국종교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보여줬다. 그 바탕에는 상호 신뢰와 존경이 있었다.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성당을 찾은 스님들을 문전박대하고 법적 문제부터 운운하는 작금의 한국 가톨릭은 이웃종교에 대한 존경이 과연 있는가? 이를 그들에게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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