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생애서 나무는 중요한 상징
출생, 정각, 열반 모두 나무와 연결
나무, 하늘과 땅 잇는 연기적 존재
길 역시 이곳과 저곳 이어 만들어져

2019년 11월 11일 상월결사 시작돼
나무처럼 수미산-사바세계를 이어
안주하지 않고 길 만들어 걸어갔다 
상월결사의 내일이 한국불교 미래

마음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니카자와 신이치는 〈예술인류학〉에서 이렇게 말한다. 네안데르탈인의 뇌는 현생인류보다 크지만 뇌의 구조가 지식 영역을 따로 관장하기 때문에 지식이 서로 유동하지 못했다. 현생인류는 뇌의 크기를 줄이면서도 훨씬 더 많은 지식을 축적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는데 그 비법은 지식 영역을 상호 교류시키는 데 있었다. 그 결과 뇌 속의 뉴런 신경 세포체가 발달하고 정보와 지식이 폭발적으로 팽창하는 진화가 일어나면서 창조적 지식과 상상력을 키울 수 있게 되었다. 이 상상력이 마음을 탄생시켰다고 그는 주장한다. 인간의 상상력은 인지, 분석, 추론, 적용, 종합, 평가 등의 행위를 유도하고 예술과 종교의 발명을 이끈다. 이 스토리에서 가장 핵심적인 사건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잇기-연결’이다.

개체로서의 인간은 유전적 선조의 계통발생을 반복하고 있으며 다른 사물들과도 연계돼 있다. 수행자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이루어 붓다가 됐을 때 성찰해 보니 우주의 모든 현상이 이와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름 하여 연기법(緣起法)이다. 연기법은 고도의 형이상학이어서 보통사람들은 알기 어렵다. 붓다의 연기론을 쉽게 설명하는 방식은 경험적 사물을 활용하는 것이다. 가장 확실한 이미지는 나무와 길이다. 

붓다의 생애에서 나무는 중요한 상징이다. 붓다는 아쇼까 나무(무우수) 아래서 태어나고 삡빨라 나무(보리수) 아래서 깨달았으며 샬라 나무(사라수) 아래서 입멸한다. 나무의 생태적 본질은 하늘과 땅을 잇는 것이다. 하늘의 빛과 땅의 물을 결합시켜 산소를 공급하고 그늘을 만들어 더위에 지친 이들을 쉬게 한다. 생명의 보살행이다. 

길은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나무의 속성을 인간의 유전적 특성으로 되바꾼 것이다. 사람은 두 발로 걸어 공간을 이동하면서 살아야 한다. 수직으로 선 나무와 같은 모양인데 인간은 나무와는 달리 수평운동을 한다. 수평운동의 지속적 반복의 결과가 길이다. 길은 지표면의 이곳과 저곳을 이어준다. 잇는다는 점에서 나무와 길은 연기법의 경험적 예증이다.

우리가 왜 나무와 숲을 사랑해야 하며, 열심히 걸어서 이웃과 마음을 나누어야 하는지는 연기법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다. 나무와 길은 연기의 법칙을 감각적으로 느끼게 하고 지각을 통해 깨우쳐준다. 나와 너를 잇는 것. 전통과 현대를 잇고, 번뇌와 열반을 잇는 것. 그리하여 모든 차별이 없어지는 것. 이것이 붓다정신의 핵심이 아니고 무엇인가.

상월결사 3주년이 다가왔다. 2019년 11월 11일, 도심 한복판 아파트 공사현장에 비닐 천막을 치고 아홉 스님이 3개월간 용맹정진을 했다. 사부대중이 함께했다. 전통을 파괴한 새로운 수행양식이었다. 수미산이 멀리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사바세계 한복판이라는 선언이었다. 나무가 하늘과 땅을 잇는 것처럼 수미산과 사바세계를 이었다. 그러고는 길을 걸었다. 붓다가 45년간 전법한 방식을 병마에 신음하는 ‘지금 여기’에 도입했다. 안주하지 않고 길을 만들어 걸었다. 방일하지 않고 정진했다. 화려한 말잔치 대신 묵언설법을 택했다.

오늘의 한국불교가 박물관 속 문화유산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시대정신과 이어져야 하고 국민 눈높이와 마주해야 한다. 현장성과 실제성이 몰각되는 불교는 박제불교일 뿐이다. 

상월결사의 내일이 곧 한국불교의 미래이다. 11월 11일. 1자 네 개가 모이면 두 사람이 마주보고 합장하는 모양새다. 나하고 너부터 이어보자. 불교계 내부는 물론 정치인들부터 모범을 보이면 좋겠다. ‘나는 당신을 존중합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는 당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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