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의 삶과 정신세계 탐구해 온 정찬주 작가가
10여년의 세월을 응축해 써 내린 또 한 편의 역작
간화선의 현대화 세계화 선구자이자 이 시대 선지식
안국선원장 수불 스님의 삶과 수행을 소설로 만나다
“잘 모르면 아무리 노력해도 답을 구하기 어렵다
​​​​​​​그 모름을 알게 해주는 것이 선지식의 역할이다”

정찬주 지음/불광 펴냄/1만8천원
정찬주 지음/불광 펴냄/1만8천원

“만일 한정된 날짜에 공을 이루려면 마치 천 길 우물에 빠졌을 때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아침까지, 밤이나 낮이나 천 생각 만 생각이 오로지 다만 한낱 우물에서 나오려는 마음뿐이고 끝끝내 결코 다른 생각이 없는 것과 같이하여라. 진실로 이렇게 공부하기를 3일 혹은 5일 혹은 7일 하고도 깨치지 못한다면 서봉은 오늘 큰 망어를 범했으므로 영원히 혀를 뽑아 밭을 가는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고봉원묘 선사〉

고봉원묘 선사의 말은 간화선 수행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어떤지를 알려주는 동시에 간화선이 얼마나 신속하게 핵심을 파고드는 수행법인지를 설명한다. 간화선은 달마 대사로부터 시작된 선(禪) 불교에 뿌리를 둔 한국불교 정통 수행법이자 최상승의 수행법이라 불린다. 하지만 지도 방식과 수행 과정의 난해함으로 인해 보통 사람은 접근하기 힘들다거나 평생 참선에 몰두한 스님조차 쉽사리 하지 못하는 수행이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녔다. 이러한 선입관을 180도 뒤바꾸어 놓은 선지식이 바로 안국선원 선원장 수불 스님이다. 현대 간화선의 선구자라 불리는 수불 스님은 출가자든 재가자든 마음을 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수행, 7일이면 체험할 수 있는 수행으로서 간화선을 지도하고 널리 알려 왔다. 지난 30여 년간 수만 명의 사람이 스님의 가르침 아래 돈오(頓悟)를 체험했다.

이 책 〈시간이 없다〉는 수불 스님의 출가 전 이야기부터 출가 후 의심을 타파하는 과정, 그리고 간화선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해 진력해 온 과정을 주요 일화를 중심으로 써내려갔다. 전체 이야기를 관통하는 핵심은 간화선이 어떤 수행법이며, 왜 이것을 세상에 알려야 하는지에 맞춰져 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수불’이라는 한 출가 수행자의 삶을 읽어 나가면서, 또 간화선이라는 한국불교 전통 수행법에 대해 알아가면서, 점점 더 강하게 내면 깊은 곳에서 샘솟는 의문과 마주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스스로 묻게 될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왔으며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이 책은 그 물음의 답을 찾아가는 길을 보여준다.

전 세계 불교 전통에 전해지는 여러 가지 수행법 가운데 최고로 손꼽히는 최상승 수행법이라는 간화선(看話禪)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 원리를 이해하고 제대로 활용하는 사람이 드물었다. 아무나 시도할 수 없는 고난도 수행이라서일까? 아니면 타고난 근기의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신묘한 수행이어서일까? 모두 아니다. 간화선이 어려운 수행으로 오해받고 점차 사람들한테서 멀어진 이유는 다름 아닌 수행을 지도해 줄 선지식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불교는 불자들에게 간화선의 탁월함을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수행은 조사선(祖師禪)의 방식으로 지도해 왔다. 그러다 보니 어디 가서 배워도 간화선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지 않고, 아무리 열심히 수행해도 원하는 결과에 도달할 수 없었다. 이 책의 주인공 수불 스님 역시 처음 사람들에게 수행을 지도할 때 같은 실수를 저질렀다. 수행하러 온 이들에게 ‘부모한테 몸 받기 전에 나의 본래면목은 무엇인가?’ ‘송장을 끌고 다니는 놈이 누군가?’와 같은 조사들의 유명 화두를 던져주었지만 사람들은 답을 찾지 못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집중력과 흥미를 잃어갔다. 이에 스님은 스스로를 성찰해 문제를 직시하고 단호하게 결심했다. 수불 스님은 단호했다. 일상생활이 바쁜 신도들에게 1주일 안으로 화두 체험 시키지 못할 실력이라면 포교당을 접어야겠다고 결론 내렸다. 신도와 자신을 속이는 포교당 운영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수불 스님은 옛 조사들의 공안에 집착하기보다는 자신만의 활구를 제시해야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수불 스님이 찾은 답은 ‘활구(活句)로써 체험케 하기’였다. 의심만을 지속하게 하는 조사선 방식을 버리고, 의심을 바깥의 벽으로 여기고 이를 타파해 자신의 본성을 깨달을 수 있도록 살아 있는 화두를 던져주는 것이다. 방편으로 삼은 것은 이른바 탄지(彈指) 화두였다.

책에서 저자는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들을 현실감있게 조명했다. “수불은 집게손가락을 튕기면서 신도들에게 말했다. 무엇이 이렇게 하는 것인가? (중략) 새롭게 제시한 화두는 신도들에게 작년과 달리 집중력을 불러일으켰다. 수불은 이때다 싶어 신도들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흐느끼는 사람, 비명 지르는 사람, 눈에 핏발이 터진 사람 등 반응은 제각각이었지만 다들 온몸으로 화두를 들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자, 하나둘 자신의 본성을 깨닫고 체험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소문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이렇게 ‘수불 스님’ ‘안국선원’은 현대 간화선의 대명사처럼 한국불교계에 회자되었다.

나와 세상 알게 해주는 간화선의 힘

이 책에는 간화선을 대중화하고 세계화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해 온 수불 스님의 행보가 다채롭게 그려진다. 그 과정서 여러 이름난 이들과 만난 사연도 등장하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혜민 스님, 로버트 버스웰 교수(미국 예술 과학 아카데미 회원, 前 동국대 불교학술원장), 차드 멍 탄(구글 엔지니어), 베누 스리니바산(TVS모터스그룹 회장)이다. 혜민 스님과 로버트 버스웰 교수는 수불 스님의 지도 아래 안국선원에서 직접 간화선 체험을 했고, 차드 멍 탄과 스리니바산 회장은 수불 스님을 만난 뒤 스님을 스승으로 삼았다. 수불 스님에게 간화선에 대해 듣고 배운 이들은 하나같이 한국불교 간화선이 가진 힘에 놀라워했다.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간화선의 대중화와 세계화에 대한 수불 스님의 의지 역시 더욱 견고해졌다.

선은 인간 속의 이기적 배타주의를 돌려 자기의 본래면목에 사무치게 하고 세계와 역사를 자기 생명 속에서 합일하는 대승의 눈을 열어준다. 그래서 선은 궁극적으로 자기와 남을 둘로 보지 않는 절대 평등의 세계를 열어 더불어 사는 자비문과 원융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재단법인 대한불교조계종 안국선원은 조계종 종지종풍에 의거해 인류에게 진리의 외침이 울리게 하고, 세계만방에 지혜의 눈을 밝히는 선의 범세계화로 만민평등의 세계일화를 우주법계에 가득 꽃피우고자 한다.

수불 스님이 부산 금정구 남산동에 안국선원을 개원하면서 제시한 선원의 이념처럼 여기에는 상호 존재하는 생명의 본질을 바로 보게 해주는 선으로써 현대 사회가 겪는 여러 가지 병폐의 근본 원인이 자타의 구별과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서리란 결의가 담겨 있다. 그런 마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온 세월이 이 책에 오롯이 담겨져 있다. 2,600여 년 전 석가모니 붓다로부터 시작된 불교는 이제 국가와 인종을 넘어 많은 사람의 내적·영적 성장 지침이 되어 가고 있다. 선의 가치도 날로 높아지고 있다. 수불 스님의 바람처럼 선(禪)의 선한 영향력이 서서히 전 세계에 퍼지고 있다.

‘시간이 없다’는 간곡한 당부를 전하다

“본래의 자기 자신으로 돌아와 살기를 바란다.” 대쪽 같은 삶을 살아간 인물과 수행자들의 정신세계를 탐구해 온 정찬주 작가가 밝힌 이 책의 집필 의도다. 10여 년 전 처음 수불 스님을 만난 작가는 아내와 자녀의 변화를 목격한 이후 간화선에 대한 확신이 생겼고, 수불 스님과 간화선을 주제로 책을 쓰리라 다짐했다. 이후 2019년 스님과 함께한 부처님 성지순례 길에서 자신의 뜻을 전하고 2021년 겨울부터 올해 7월까지 집필에 몰두했다. 긴 시간을 거쳐 탄생한 이 책은, 오랜 시간 글 짓는 수행자로 살면서 선지식들을 만나고, 그들의 가르침을 깊이 배우고, 그들의 삶과 가르침을 이야기로 전해온 정찬주 작가가 자신의 삶에서 체험하고 길어 올린 또 한 편의 역작이다. “부처님께서 방일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 가만히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되겠어요? 수행은 안 하고 시간을 흘려보내서야 되겠냐는 거지요. 어차피 한정된 시간을 살다가 가는데 어떻게 보내야 하겠느냐는 겁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접할 기회가 왔을 때 공부해야지요. 이런 의미에서 시간이 없다는 거죠. 내 입장에서도 신도들한테 가르쳐줄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시간이 없는 거지요. 앞으로 내가 몇 번이나 가르치겠어요?”

정찬주 작가의 말에 따르면, 수불 스님은 법문 때마다 이런 취지의 말을 자주 한다고 한다. 이것이 ‘시간이 없다’로 제목이 정해진 이유다. 소설가로서, 선지식의 삶과 가르침을 널리 알리는 데 뜻을 둔 전법사(傳法師)로서, 어쩌면 정찬주 작가 역시 수불 스님과 같은 마음일 것이다. 선지식의 삶과 가르침을 글과 이야기로 전함으로써 우리 역사와 전통과 문화에 존재하는 뛰어난 스승과 가르침을 드러내는 일을 업(業)으로 삼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보면 이 책은 소설 속 주인공인 수불 스님과 정찬주 작가의 간곡한 마음이 겹겹이 담긴 따듯한 당부와도 같다.

▲정찬주 작가는?

오랜 기간, 불교적 사유가 배어 있는 명상적 산문과 소설을 발표해 왔다. 1983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작가가 된 이래, 자신의 고유한 작품세계를 변함없이 천착하고 있다. 호는 벽록(檗綠). 1953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했고, 상명여대부속여고 국어교사로 교단에 섰다가 십수 년간 샘터사 편집자로 법정스님 책들을 만들면서 법정 스님은 저자를 재가제자로 받아들여 ‘세속에 있되 물들지 말라’는 뜻으로 무염(無染)이란 법명을 내렸다. 현재 전남 화순 계당산 산자락에 산방 이불재(耳佛齋)를 짓고 2002년부터 자연을 스승 삼아 벗 삼아 집필에만 전념 중이다. 장편소설 〈산은 산 물은 물〉 〈소설 무소유〉 〈암자로 가는 길〉(전 3권)을 비롯해, 이 땅에 수행자가 존재하는 의미와 우리 정신문화의 뿌리를 일깨우는 수십 권의 저서를 펴냈다. 장편소설로는 인간 이순신을 그린 대하소설 〈이순신의 7년〉(전7권) 〈광주 아리랑〉(전2권) 〈천강에 비친 달〉 〈조선에서 온 붉은 승려〉 〈다산의 사랑〉 〈칼과 술〉 〈못다 부른 명량의 노래〉 〈니르바나의 미소〉 법정스님 일대기 장편소설 〈소설 무소유〉 성철스님 일대기 장편소설 〈산은 산 물은 물〉 〈하늘의 도〉 〈나는 조선의 선비다〉(전3권) 〈천년 후 돌아가리-茶佛〉 등이 있다. 산문집 〈행복한 무소유〉 〈부처님 8대 인연 이야기〉 〈암자로 가는 길〉(전3권) 〈법정스님 인생응원가〉 〈법정스님의 뒷모습〉 등이 있다. 행원문학상, 동국문학상, 화쟁문화대상, 류주현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