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난한 위드코로나로 가는 길
제약들 풀리며 3000명대 확진
격변기, 이기적 행동은 위험해

계·정·혜 가르침 필요한 시기
배려하고 자기 자신에 집중하면
바른 지혜는 자연스럽게 생겨나

위드코로나 상황서 삼학 가르침
행복, 희망의 피안으로 이끌 것

도심의 길가와 산사의 도량을 온통 노란 빛으로 물들이고 우리의 마음에 평안함을 안겨주던 가을이 어느새 지나가고 삼동의 추위를 맞이할 동안거가 입재했다. 언제나 그렇듯 시간의 무상함과 속도는 우리를 아쉬움에 빠지게 한다.

이번 동안거는 여느 때와는 다르다. 지난해 동안거는 코로나가 정점이었던 어수선한 분위기였다면, 이번 안거는 코로나를 포용하기 위한 새로운 분위기이다. ‘위드코로나’, 표현 그대로 우리의 모든 일상 속에서 이제 코로나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이 아니라 코로나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함께 나아가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나 이 새로운 일상으로의 첫걸음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다. 위드코로나가 발표되고 여러 제약들이 풀리면서 그동안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사람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왔고, 그 결과 현재 하루 확진자수가 3000명대를 넘어서며 역대 최고치를 갱신해가고 있다. 그렇기에 일부에서는 다시 봉쇄를 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러한 격변기에 자신만을 생각하는 행동은 무엇보다 위험하다. 우리 모두는 아직도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누구라도 피해갈 수 없다. 이러한 현실의 모습은 불교에서 말하는 업의 인과응보와 유사하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늙어 병들고 죽지만 누구라도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고, 또한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으로 저지른 행동과 말과 생각이 그대로 업이 되어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자신에게 고스란히 되돌아온다. 

그렇기에 부처님께서는 그러한 어리석음에 빠진 우리를 이끌어주시기 위해 바로 ‘나’ 자신을 다스리고 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르침을 설하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오늘 그 가르침이 다시금 절실한 시기이다. 팔만사천의 가르침 중 바른 마음가짐과 행동에 대해 설하신 것이 바로 계(戒)·정(定)·혜(慧)의 ‘삼학(三學)’이다. 계는 바른 계율과 도덕, 정은 선정과 집중, 혜는 지혜로운 삶을 말한다. 이 삼학은 단순히 배운다는 개념이 아니라 몸과 마음에서 자연스레 나오는 습관과 같이 자기 스스로를 물들여 어떤 상황이든 그 행동이 무의식중에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 가르침을 지금에 활용할 때 먼저 ‘계’는 개인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을 버리고, 주변을 배려하며 함께 이 시기를 극복하려는 바른 생각과 행동인 것이다. 즉 배려하며 착하게 살자는 의미이지만, 이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세 살짜리 아이도 알지만 팔십 노인도 행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하는 것이다. 자신의 하루 속에 항상 발밑을 바라보듯 주변을 살펴보고 자신으로 인해 불편함을 주는 일은 없는지 확인하는 일만 하더라도 이 ‘계’를 바르게 행한 것이다.

그리고 ‘정’은 바른 집중이란 의미로, 바로 자신의 직업과 생활에 집중하는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의 일상은 상당히 어그러졌다. 많은 분들이 생계가 어려워질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젊은 세대들은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가장 먼저 살펴야 할 것은 바로 자신이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를 스스로에게 솔직히 물어 그 일에 집중하여 매일을 보낼 때 비로소 작은 행복을 얻을 수 있고, 다시금 희망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혜’는 ‘계와 정’을 바르게 실천할 때 자연스레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즉 지혜는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주위로부터 인정되고 존중받을 때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힘들게 한걸음을 내딛어 일상으로 나오게 된 지금 어리석게 자신만을 생각하며 이기적으로 보낸다면 스스로에 의해 다시금 기약 없는 외로운 현실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충분히 힘들고 외로운 2년을 견뎌왔다. 간신히 내딛은 한걸음에서 뒤로 물러설 것이 아니라 나와 남을 함께 화합하여 큰 한걸음을 내딛으며 내일로 나가야 한다. 위드코로나라는 안개길 속에서 삼학의 가르침은 바른 나침반이 되어 우리를 행복과 희망의 피안으로 이끌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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