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 전 귀의한 아들 들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흰 부처님 의지해 사느냐?
나는 내 스스로를 믿고 산다”

세수가 90세인 올해 어느 날, 
아버지는 마지막 숨을 쉬셨다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아버지
생전 당당했던 아버지의 모습
“우리에게 전해진 유산입니다” 

아침울력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오니 전화벨이 울렸다. 큰형님이었다. 아버지께서 임종하실 것 같으니 급히 오라고 하였다. 어제 통화할 때는 일주일이나 한 달은 더 계실 수 있을 것으로 들었는데,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지며 잠시 할 바를 잊었다.

올해 꼭 90세. 당신의 인생에 굴곡이야 없었겠냐만은 평생 거칠 것 없이 당신의 뜻대로 살아온 인생이었다고 생각한다. 출가 전 불교에 귀의한 아들들을 보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절에 다니며 부처님을 믿고 의지하고 사니? 나는 내 힘으로 일하고 내 힘으로 가족들 먹여 살리고 나 스스로를 믿고 산다. 너희가 절에 다니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겠지만 나한테 불교를 믿으라고 권하지도 말아라. 나는 내가 알아서 살 거야.”

형제들이 모두 모였다. 내가 출가하고 형제들이 한자리에 모두 모인 건 35년 전 할머님이 돌아가신 뒤 처음이다. 중환자실에 누워계신 당신은 그리 힘들어 보이지는 않았다. 다른 환자들처럼 링거를 몇 개 꽂고 입을 조금 벌리고는 약한 호흡을 하고 계셨다. 의식을 찾지는 못하지만 가끔 침을 삼키시는데 그것만으로도 고마웠다. 잠시 더 견디실 수 있을 것 같았다. 온기가 줄어든 손을 잡고 아들들이 온 것을 알려드렸다. 나직이 염불을 외우며 귓가에 말씀드렸다. “나무아미타불, 걱정마세요. 두려워하지 마세요. 한평생 열심히 사셨잖아요. 정말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중환자실이라 계속 머물 수는 없었다. 의사 선생님이 아침을 먹고 와도 좋을 것 같다고 하셔서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식사를 마치고 수저를 내려놓자 전화벨이 울렸다. 다시 병실에 도착하니 당신의 마지막 심장박동이 스러지고 있었다. 마지막인 아버지의 손을 잡고 말씀드렸다. 

“나무아미타불, 편히 가세요. 너무 걱정 마세요. 두려워하지 마세요. 정말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형제 중 하나가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님 잘 모실게요. 걱정마시고 편히 가세요.” 

다들 담담한 마음으로 아버지의 임종을 맞을 때 넷째가 갑자기 ‘엉엉’ 하며 소리 내어 울음을 터뜨렸다. 

어머니를 비롯해 형제와 가족들 누구도 애통하게 슬퍼하는 사람이 없었다. 입관 때 큰형수님이 잠시 소리 내어 슬퍼했을 뿐이다. 35년 전 할머니 장례식 때 아버지의 형제들처럼 우리 형제들도 편안하고 담담한 마음으로 아버지를 보내고 있었다. 성복제를 지내며 잠시 아버지에 대한 기억들을 이야기했다. 각기 유전자의 장단점을 물려받은 것에 대해 좋고 나쁨을 이야기 했지만 누구도 딱히 불만이 있지는 않았다.

다만 생전 아버지의 성실성과 부지런함 그리고 우직한 책임감에 대해 고마워했다. 그림과 글씨 등 다양한 재능을 가지고 계셨으면서도 삶을 혼탁하게 하는 잡스러운 일에는 관심도 두지 않은 고지식함도 모두에게 같은 기억으로 남았다. 형제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자부심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이 모두 아버지를 닮은 것임을 새삼 느끼고 알 수 있었다. 
 

70세까지 열심히 일만 하시더니, 은퇴한 뒤 당신의 삶은 나름 근사했다. 한동안 국내외로 거침없이 여행을 다니시더니, 복지관에서 중국어와 수영도 배우고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댄스스포츠에 몰두하시며 후원금도 아낌없이 내곤 하셨단다. 몇 년 전 내게 오셔서는 봉사점수를 수천 시간 쌓았음을 자랑하기도 하셨다. 아들이 있는 절에 왔으니 부처님께 인사드린다고 법당에 참배도 드리고 스님들께도 예의를 잊지 않으셨다. 가끔 통화할 때면 당신이 지어준 이름이 아닌 법명을 부르던 애틋한 당신의 목소리가 귓전에 선하다. 

아버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생전에 못 해본 말 지금 해봅니다. “사랑합니다.” 우리들에게 가장 훌륭한 당신의 유산은 당신의 당당하고 근사한 삶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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