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회

짠다빳조따왕이 우데나왕에게 대드는 전옥관리를 만류한 것은 다분히 계산적이었다. 우데나왕의 비위를 맞추는 척하면서 코끼리 부리는 주문을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그렇다고 왕의 자존심을 버린 채 우데나왕에게 삼배를 하면서 배울 생각은 전혀 없었다. 짠다빳조따왕이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나에게 삼배를 하라니 웃기는군. 난 절대로 삼배를 할 수 없소. 그대는 삼배를 받을 수 있는 붓다가 아니오.”

“그럼, 나도 절대로 코끼리 부리는 주문을 가르쳐줄 수 없소.”

“별 수 없군. 나는 그대를 처형하겠소.”

“내 영혼까지 처형할 수는 없을 테니까 알아서 하시오.”

우데나왕은 붓다에게 죽음에 대한 설법을 들은 적이 있었으므로 당황하지 않았다. 붓다는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삶의 시작이라고 설했던 것이다. 짠다빳조따왕의 심복인 우두머리 전옥관리가 짠다빳조따왕에게 귓속말을 했다.

“폐하, 우데나왕을 죽이지는 마십시오. 폐하께서 원하시는 바는 우데나왕에게서 주문을 배우는 것입니다.”

“내 생각도 그렇소. 그런데 우데나왕이 주문을 배우려면 나에게 삼배를 하라니 난감하오.”

“폐하, 적국의 왕에게 삼배를 한다는 것은 치욕이니 그럴 수는 없습니다.”

짠다빳조따왕이 전옥관리에게 중얼거리듯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내 딸 와술라닷따에게 주문을 배우게 한 뒤 내가 딸에게 배우면 어떻겠소?”

“폐하, 묘수입니다.”

잠시 후, 짠다빳조따왕이 우데나왕에게 제의했다.

“나와 가까운 사람이 삼배를 한다면 가르쳐 줄 수 있겠소?”

“왕의 체통이 있을 것이니 친족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소.”

짠다빳조따왕은 딸 와술라닷따를 꼽추라고 둘러댔다. 우데나왕이 와술라닷따에게 음심을 품을까봐 꼽추라고 거짓말을 했다. 와술라닷따는 부모 말을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는 고분고분한 여자였다. 짠다빳조따왕은 딸에게는 우데나왕이 문둥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순진한 딸이 우데나왕의 유혹에 넘어갈까봐 걱정되어서였다. 짠다빳조따왕은 딸에게 가서 말했다.

“사랑하는 내 딸아, 어떤 문둥이가 코끼리 다루는 주문을 알고 있단다. 너는 커튼 뒤에 있는 문둥이에게 주문을 잘 배우기만 하면 된다. 다른 사람이 배우면 안 되기 때문에 너에게 부탁하는 거란다. 주문을 배우고 난 뒤에는 나에게 가르쳐다오.”

“예, 잘 배울게요.”

“고맙다. 내가 코끼리를 사로잡는 주문만 배운다면 너와 나는 더 큰 부귀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너무 욕심은 부리지 마셔요. 궁중제관께서 욕심은 재앙의 문이라고 했어요.”

“우데나왕이 나를 모욕해서 그런다. 나를 우습게 보는 왕이 있어서야 되겠느냐?”

“예, 잘 배울 테니 걱정 마셔요.”

마침내 궁중 한 방에서 커튼을 사이에 두고 우데나왕과 와술라닷따가 마주앉았다. 방문 밖에는 짠다빳조따왕의 호위군사들이 경계를 섰다. 우데나왕은 삼배를 한 와술라닷따에게 약속대로 주문을 반복해서 가르쳤다. 와술라닷따가 주문을 다 배우면 자신은 앙가국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와술라닷따는 주문을 잘 따라하지 못할뿐더러 외우지도 못했다. 주문은 한 자라도 틀리면 소용이 없었다. 야생 코끼리는 영리해서 틀린 주문을 금방 알아차렸다. 와술라닷따는 착하기만 했지 영민하지는 못했다. 하루 종일 우데나왕이 주문을 가르쳤지만 제대로 외우지 못했다. 우데나왕은 화가 나서 소리쳤다.

“이 꼽추야, 입술이 두터워서 더듬거리는 거냐! 커튼이 가려져 있기 망정이지 너를 볼 수만 있다면 회초리라도 들었을 것이다.”

“말이 심하십니다.”

와술라닷따는 자신도 모르게 큰소리로 말했다. 아반띠국의 공주에게 문둥이가 수모를 주다니 참을 수 없었다.

“나를 꼽추라고 부르다니!”

“내가 정성을 다해 가르쳤는데 진전이 없다니. 아무리 멍청한 사람이라도 다 외웠을 것이다. 바보가 아니고서는.”

“나를 꼽추에다 바보라고 부르다니! 천한 문둥이라서 입이 거칠군!”

“나를 문둥이라고 부르는 너야말로 누구냐?”

우데나왕도 와술라닷따에게 문둥이라고 모욕을 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와술라닷따가 홧김에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난 아반띠국 왕의 딸 와술라닷따다.”

“나를 속이지 마라. 왕이 그대를 꼽추라고 했다.”

“그대도 나에게 거짓말하지 마시오. 아버지께서 그대를 문둥이라고 했으니까.”

“나는 앙가국 우데나왕이다. 그대의 아버지에게 속아서 나는 감옥에 갇혀 있다.”

“그럼, 나도 속은 것인가? 아버지가 그대를 문둥이라고 했는데...”

비로소 두 사람은 서로의 신분을 알고는 헛웃음을 지었다. 와술라닷따가 말했다.

“사랑하게 될까봐 두려워서 우릴 속였군요!”

 

와술라닷따는 우데나왕에게 문득 연민의 정이 생겼다. 공평하게 따진다면 아버지 짠다빳조따왕이 우데나왕을 속였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두 사람은 방 안에서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사랑을 나누었다. 우데나왕은 순수한 와술라닷따에게 반했고, 와술라닷따는 용감한 우데나왕이 마음에 들었다. 어느 날 짠다빳조따왕이 두 사람 간에 정이 싹튼 줄도 모르고 와술라닷따에게 물었다.

“딸아, 주문은 잘 배우고 있느냐?”

“예, 아버지 조금만 더 외우면 될 것 같아요.”

사랑을 하면 눈이 멀어 거짓말도 스스럼없이 하는 법이었다. 와술라닷따는 아버지 짠다빳조따왕을 속이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우데나왕과 와술라닷따는 짠다빳조따왕이 정해준 궁중 방에서 날마다 주문을 가르치고 배우는 척하면서 껴안고 지냈다. 호위군사들은 방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두 사람이 방문을 걸어 잠그고 창문은 커튼으로 가려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 때였다. 우데나왕이 몹시 낙심한 표정을 짓고 와술라닷따를 바라보았다. 와술라닷따가 물었다.

“무슨 슬픈 일이 있군요.”

“그대와 사랑을 나누기에는 이 방이 너무 좁다오. 나를 내 나라로 돌아가게만 해준다면 나는 그대를 왕비로 삼겠소.”

“당신의 왕비가 된다면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요.”

“그대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무리 그대를 위한다고 하더라도 앙가국의 왕비가 되게 할 수는 없을 것이오.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오.”

와술라닷따가 우데나왕에게 말했다.

“약속을 지키신다면 당신의 목숨을 구해드리겠어요.”

“틀림없이 지키겠소.”

와술라닷따는 짠다빳조따왕에게 가서 그의 발에 입을 맞추었다. 짠다빳조따왕은 주문을 다 외운 줄 알고 반갑게 맞이했다.

“딸아, 이제 주문을 다 배웠느냐?”

“다 외우기는 했는데 이제부터는 실제로 연습을 해야겠어요.”

“뭣이 필요한지 언제든지 말하거라.”

“아버지, 산에 가서 사냥하려면 말이나 코끼리가 필요해요.”

“알았다. 내 전용 말과 코끼리 이용을 허락하마.”

와술라닷따는 짠다빳조따왕에게 방문 열쇠까지 받았다. 호위군사들에게는 우데나왕과 와술라닷따가 아무 때나 사냥을 나갈 것이니 막지 말라고 지시했다. 우데나왕과 와술라닷따는 마음대로 방을 드나들 수 있었으므로 더 없이 기뻤다.

짠다빳조따왕에게는 다섯 가지 운송수단이 항상 대기했다. 첫째는 한 번에 오십 요자나를 갈 수 있는 암코끼리 밧다왓띠였다. 둘째는 한걸음에 육십 요자나를 달리는 노예 까까였다. 세 번째와 네 번째는 한 번에 백 요자나를 갈 수 있는 두 암당나귀 쩰라깐티와 문자께시였다. 다섯 번째는 쉬지 않고 백이십 요자나를 갈 수 있는 코끼리 날라기리였다.

우데나왕과 와술라닷따는 짠다빳조따왕이 신하들을 거느리고 순행하는 날을 기다렸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우데나왕은 암코끼리 밧다왓띠에 일곱 개의 자루마다 와술라닷따가 몰래 가지고 온 금과 은을 가득 채워 실었다. 그런 뒤 와술라닷따를 태우고 도망쳤다. 궁궐의 호위군사들이 뒤늦게 발견하고는 짠다빳조따왕에게 보고했다. 짠다빳조따왕이 소리쳤다.

“즉시 쫓아가서 붙잡아라!”

“예, 알겠습니다.”

“우데나는 코끼리를 부릴 줄 아는 왕이니 반드시 날랜 말을 타고 추격하라.”

우데나왕은 추격대가 쫓아오는 것을 보고 자루를 푼 뒤 금과 은을 길바닥에 뿌렸다. 추격대는 잠시 추격을 멈추고는 금과 은을 주웠다. 탐욕스러운 나머지 눈이 어두운 것은 왕이나 군사나 마찬가지였다. 우데나왕은 바로 그러한 심리를 이용해 금과 은을 뿌리며 국경을 넘었다. 국경 부근에는 때마침 우데나왕의 군사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군사들은 우데나왕을 철통같이 호위한 채 곧장 꼬삼비로 돌아갔다. 꼬삼비에 도착한 우데나왕은 환영 나온 성민들에게 선언했다.

“이 여인은 짠다빳조따왕의 딸이다. 이제는 나의 왕비가 될 것이다.”

“와아! 와아!”

성민들이 용감한 우데나왕의 모습을 보고는 환호했다. 적국에 잡혀 들어가 혼자서 도망쳐온 것이 아니라 적국의 공주까지 데려왔으니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민들은 우데나왕을 사지에서 돌아온 영웅처럼 이전보다 더 떠받들었다. 다음날에는 우데나왕과 와술라닷따의 결혼식이 성민들의 축제로 거행되었다. 성민들이 우데나왕의 두 번째 왕비가 된 와술라닷따에게 꽃을 뿌렸다. 축제는 꼬삼비뿐만 아니라 앙가국 전역에서 며칠 동안 벌어졌다.

담마팔 사문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는 창문에 걸렸던 초승달이 사라지고 없었다. 담마팔 사문은 아쇼까에게 합장한 뒤 코코아 음료로 목을 축였다. 아쇼까는 우데나왕이 부러웠다. 담마팔 사문이 아쇼까의 마음을 간파하고는 말했다.

“부왕이시여, 우데나왕은 용감한 데다 지혜롭기까지 합니다. 어째서 그렇다고 보십니까?”

“적국의 왕에게 붙잡혔지만 목숨을 구걸하지 않는 모습이 부럽소.”

“그렇습니다. 짠다빳조따왕이 목숨을 빼앗을 수는 있어도 영혼까지는 지배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생사를 초월하지 못한 사람은 그런 말을 못합니다.”

“어찌해야 생사를 초월할 수 있소?”

“붓다의 가르침이란 한 마디로 바로 그것입니다.”

아쇼까는 담마팔 사문의 말을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자 담마팔 사문이 다시 말했다.

“부왕이시여, 우데나왕의 영광은 붓다께 귀의했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우데나왕의 영광이란 붓다의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사문이여, 나는 아직 붓다의 가르침에 귀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소.”

“부왕이시여, 소승은 강요하지 않습니다. 아직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아쇼까는 담마팔 사문과 밤늦게 헤어졌다. 그때 아쇼까가 담마팔 사문을 위해 호위대장에게 횃불을 켜서 배웅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담마팔 사문은 아쇼까의 호의를 거절했다. 붓다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조용히 걸어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계속>

▶ 40회 예고

라다굽따 특사일행이 웃자인을 떠나기 전날 환송연을 연다. 베디샤데바와 데비도 환송연에 초대를 받는다. 아쇼까는 연회장에 있는 베디샤데바와 데비를 접견실로 따로 불러 청혼한다. 데비는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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