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바랑 속의 동화

14명의 선지식들 깊은 통찰 조명
“산중 뭇생명조차 경계짓지 않아”
자비, 사랑, 지혜에 관한 이야기

동화 형식 빌려 생명존중 조명해
온가족 함께 있는 따뜻한 동화로
아름다운 일러스트 삽화 돋보여

정찬주 지음 / 다연 펴냄 / 1만5천원
정찬주 지음 / 다연 펴냄 / 1만5천원

성철·법정·경봉·구산 큰스님,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큰스님들이다. 세속에 물든 일반인들이 범접하기 힘든 높은 경지에 올라 삶의 깊은 깨우침을 몸소 실천하고 설파한 선지식들이다. 당신들의 큰 사랑은 산중의 뭇 생명에게도 경계를 짓지 않았다. 산짐승과 스님 사이에 맺은 신비로운 인연은 신산한 우리 삶에 깊은 통찰을 전한다.

이 책의 저자 정찬주 작가〈오른쪽 사진〉는 법정 스님에게서 ‘세속에 있되 물들지 말라’는 뜻으로 무염(無染)이란 법명을 받은 각별한 재가제자다. 저자는 이번에 법정 스님서 수불 스님까지 큰스님 열네 분의 자비와 사랑, 지혜에 관한 이야기를 엮어냈다. 모두 큰스님들이 직접 전해준 이야기이거나 큰스님을 모신 상좌 스님들에게 들은 주옥같은 감로법문 들이다. 상상력의 날개를 단 허구가 아니라 실제 스님들의 일화를 풀어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더욱 각별하다.

책에 등장하는 열네 분 큰스님들은 산중서 산승으로 평생을 살면서 뭇 생명에 두루 자비와 사랑을 베풀었다. 다람쥐, 토끼, 박새, 멧돼지 등을 도반이듯 살뜰하게 보살피고, 동물뿐만 아니라 억새나 개울가 바위에 낀 이끼나 오솔길을 불편하게 하는 나무 한 그루도 베지 않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름다운 색감의 그림과 글을 읽다 보면 영혼이 정화되는 듯하다.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만연해가는 사막 같은 시대’에 온 가족이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따뜻한 동화다.

갈수록 각박해가는 우리 사회가 주는 마음의 상처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생명을 경시하고 자비와 사랑에 인색한 풍조가 만연하다. 마음이 콘크리트처럼 딱딱하게 굳어갈 것만 같다. 이 책은 동화 형식을 빌려 남녀노소 누구나 읽으면서 마음의 평화와 안식을 얻을 수 있게 한다.

큰스님과 뭇 생명 사이의 순수한 이야기로 잊었던 사랑과 배려, 생명 존중을 되살린다. 법정 스님이 휘파람을 불면 오동나무 구멍서 나와 허공에서 묘기를 부리듯 공중제비를 돌던 호반새,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며 누더기 속의 이와 벼룩에게 자신의 몸을 내주던 구정 스님, 평소 밥 한 덩이를 내어 준 구산 스님에게 은혜를 갚은 산토끼 등 사랑과 자비로 충만한 이야기들이 풍성하다.

정찬주 작가는 식구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이 동화를 함께 읽음으로써 자비와 사랑, 지혜의 싹이 자라나는 계기가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며 이 책을 쓴 계기를 밝혔다. ‘바랑’은 승려가 등에 지고 다니는 자루 모양의 큰 주머니를 일컫는 말이다. 저자가 큰스님들의 바랑 속에서 직접 꺼내온 아름다운 동화를 통해 삭막해가는 세상 속에서 한줄기 청량한 위로를 받고 또 앞으로 살아갈 용기를 내보자.

이 책 1장 〈스님 바랑에서 꺼낸 자비〉는 법정 스님, 혜암 스님, 경봉 스님, 구산 스님, 혜국 스님의 뭇 생명에 대한 자비 이야기이고, 2장 〈스님 바랑에서 꺼낸 사랑〉은 성철 스님, 혜국 스님, 수월 스님, 경허 스님, 지장 스님의 뭇 생명에 대한 사랑 이야기이다. 이어 3장 〈스님 바랑에서 꺼낸 지혜〉는 청담 스님, 구정 스님, 혜통 스님, 수불 스님의 뭇 생명에 대한 지혜를 들려준다. 작가 정찬주는 1983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래 지금까지 줄곧 깨달음을 얻기 위해 정진하는 수행자들의 정신세계를 탐구해왔다. 그런 그가 지금까지 직간접으로 가르침을 받았던 큰스님들의 신비로운 일화들을 모아서 펴낸 가족이 함께 읽는 가슴 따뜻한 동화다. 그저 책장을 넘기다 보면 세상살이에 지쳐 점차 사그라들던 사랑과 자비, 연민의 감정이 되살아난다.

영국 킹스턴대학교서 일러스트를 공부한 일러스트레이터 정윤경의 아름다운 삽화들은 큰스님들이 베푸는 자비로운 마음의 아름다운 결을 부드러운 색채를 이용해 그대로 지면에 옮겨 놨다. 스님과 동물들을 따뜻하게 포착한 그림만 봐도 싱긋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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