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마 끝 풍경이 내게 물었다

저자, 2년전부터 전국의 사찰 답사
사찰 30곳 방문…“100곳 답사목표”
저자 특유의 그림체로 사찰들 기록
​​​​​​​일상과는 다른 사찰만의 매력 소개

배종훈 지음 / 담앤북스 펴냄 / 1만 6천원
배종훈 지음 / 담앤북스 펴냄 / 1만 6천원

소란한 일상의 틈바구니 속에서 정신없이 부대끼다 보면 고요하고 여유로운 공간과 시간이 절실해지는 때가 온다. 그럴 때 많은 이들은 절에서의 하룻밤을 꿈꾼다. 계절이 바뀌면 계절이 바뀌는 대로, 자세히 살펴보면 볼수록 그 매력이 다양한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그곳에서 배종훈 저자는 비슷비슷해 보이는 사찰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찾았다.

이후 한 달에 한 번, 카메라와 그림 도구를 챙겨 사찰 구석구석의 모습을 기록하러 떠난 지 벌써 2년이 훌쩍 넘었다. 약 30곳이 넘는 전국의 사찰을 다녀온 저자는 앞으로 100곳의 사찰을 방문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자꾸만 그가 절로 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절에서 저자는 어떤 풍경들을 마주하고 어떤 생각들을 눈에 담았을까?

국어 선생님, 서양화가, 일러스트레이터, 만화가, 여행작가, 그리고 중학교 국어교사. 저자를 가리키는 수식어는 다양하다. 안 그래도 번잡한 세상, 1인 다역을 소화하면서 일상의 어떤 ‘틈’을 갈망하게 되었다는 그는 느리게 흘러가는 사찰의 곳곳을 저자 특유의 그림체로 기록하기 시작한다. 어떤 것을 오래 바라보게 되면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계단 옆 돌수반에 핀 연꽃의 문양, 햇빛의 움직임에 의해 시시각각 바뀌는 마애불의 표정, 석탑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자신의 원을 전하는 사람들의 간절한 표정까지. 낮에는 낮의 고요함이 깃들고 밤에는 까만 어둠을 덮은 정적이 가득한 사찰의 풍경에 집중하며 저자는 차차 자신의 소란한 마음과 번잡한 생각을 비워내는 연습을 한다.

저자가 바라보는 풍경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절 구석구석의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또 하나는 꽉 차 있는 자신의 마음 서랍이다. 이런저런 계산들과 소란함으로 잔뜩 채워져 틈이 없어진 좁은 마음은 특별한 것 하나 없이 그저 고요함과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하나둘 비워져간다.

1부 ‘부처님을 닮은 그곳’은 저자의 시선으로 보고 담은 절의 소박하고도 정감 있는 풍경을 성실하게 기록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 사찰을 향해 가는 길에서 느낄 수 있는 계절마다의 아름다움, 처마 밑에 매달린 풍경이나 오래된 석물과 빛이 바랜 탱화, 절 마당에 자리 잡은 무영탑 하나, 소박한 문구가 새겨진 돌기둥 등 절 곳곳에서 발견한 것들, 그리고 절이 자리 잡은 곳 주변의 자연 풍광까지 “부처님의 마음을 닮은 사람들이 사는 곳”에 대한 애정 어린 기록들로 가득하다.

2부 ‘처마 끝 풍경이 내게 물었다’에서는 자신에게 말을 건네는 그 모든 것들에 소란한 마음을 비춰보는 사색적인 글들을 모았다.

절에서 마주한 풍경들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은 결국 자신의 마음 안으로 향한다. 한구석에 자리한 불확실성, 불안감, 크고 작은 슬픔들, 휴식에 대한 갈망 등 다양한 모습들로 제각기 쌓인 마음을 풍경에 비춰보며 그는 점점 그 특별할 것 없는 풍경들에 마음의 온기를 느낀다. 자신이 일상에서 그토록 아파하고 조급해했던 문제들에서 잠시 떨어져 그것을 바라보며 잠시라도 ‘작은 나’가 아닌 ‘큰 나’가 되어보기도, 무너져도 다시 쌓고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를 얻기도 한다.

이 책은 그가 바라보고 기록한 절의 풍광과 비슷하다. 특별할 것 없이 비슷비슷한 절의 모습들에서 특별함을 발견한 그처럼, 독자들은 그의 글과 그림을 감상하며 점점 일상의 시간과는 다른 속도로 흘러가는 절만의 특별한 매력을 느끼게 될 것이다.

온통 소란한 것들로 가득차 있는 일상에 조금의 위안을 얻고 싶거나 작더라도 아주 조그만 틈이 필요한 모든 독자들에게 〈처마 끝 풍경이 내게 물었다〉는 느린 듯 밀도 높은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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