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173

저자, 정신 폐쇄병동서 입원치료
그 아픔과 비밀을 시심으로 승화
삶의 목적과 원동력 찾는 기회로

전 62편 연작시…각 시마다 부제
애절한 시어로 현장 생생히 전해
구도의 공간으로 변화…시어의힘

승한 스님 지음 / 문학연대 펴냄 / 1만 5천원
승한 스님 지음 / 문학연대 펴냄 / 1만 5천원

저자인 승한 스님〈사진〉은 글쟁이다. 그래서 한동안 本紙에 필자로 활동했다. 그러던 어느날 신문 마감날로 기억된다. 원고 담당 기자가 필자인 승한 스님 핸드폰이 꺼져 있고 연락이 안된다고 발을 동동 굴렀다. 결국엔 스님과 연락이 닿지 않아 원고는 불가피하게 다른 원고로 채워졌다. 그리고 얼마간 스님을 원망했다. 어릴 적부터 유전적으로, 심리적·환경적 요인으로 ‘자살충동’에 시달리는 등 극심한 정신적 아픔과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을 알기전까지는 말이다. 아마 그때도 병원에 입원했을 거란 짐작이 든다.

저자는 청소년기 때부터 앓던 정신적 고통과 내면의 상처가 재발돼 두 차례나 서울 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173 폐쇄병동에 입원해 몇 개월간 치료를 받았다. 이번 시집은 그때 겪고 느끼고 체험한 폐쇄병동 생활과 내용을 매우 객관적이고 직접(直接)적인 발성법으로 실감 나게 그려낸다. 시집 제목을 ‘173’이라 붙인 것도 폐쇄병동을 상징한다는 의미다. 이 시집은 우선 독창적이다. 정신병원 폐쇄병동을 소재로 전편(62편)을 연작시로 썼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정신병원 폐쇄병동을 소재로 쓴 소설작품은 많지만, 시집 한 권을 통째로, 그것도 문학적 완성도가 높게 형상화된 시집은 없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에 대해 저자인 승한 스님은 “처음엔 저의 정신건강 문제가 부끄럽고 수치스러워 삶의 비밀로 꾹꾹 눌러두고 살았지만 출가수행자가 되면서 모든 것을 내리고 비우고 참회하면서 제2의 삶을 새로 시작하기 위해 제 삶의 치부조차 모두 고백하게 됐다”며 “오히려 그 아픔과 비밀을 시로 승화시켜 저처럼 정신적 아픔과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이어 승한 스님은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객관적이고 정직한 메시지를 통해 우리 사회가 그들을 좀 더 따뜻하게 안아주고 잘 보듬길 발원하는 마음에서 5년 전부터 이 시편들을 쓰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이 시들은 ‘173 폐쇄병동’으로 귀결되는 연작시로 구성됐지만, 각 시마다 부제가 붙어있어 변별점을 지닌다. 하지만 저자가 입원한 폐쇄병동서 이루어진 경험과 사유가 시집 내용의 전부라서 이 시집은 폐쇄병동서 하루하루 일상을 보내는 정신질환을 잃고 있는 환우들을 위한 헌사라 할만하다. 저자인 승한 스님은 책 서두에서 〈나의 173 동료들에게 이 시집을 바친다〉란 부제의 시로 애절한 그 심정을 생생히 전했다. “그들과 함께 나는 진화하고 생존했다. 앞으로도 나는 그들과 함께 진화하고, 생존할 것이다. 모든 삶은 진화하고 생존하다 명멸한다”라고.

황치복 문학평론가는 책 말미에 붙인 해설을 통해 “고통과 상처로 얼룩진 공간, 감시와 처벌의 감옥과 같은 공간이 구도(求道)의 공간과 성스러운 공간으로 변화되는 극적인 장면을 보는 것은 감동적”이라며 “시집을 읽는 내내 독자들은 가슴 아린 통증을 느끼면서도 극단의 폐쇄적 공간에서도, 그리고 극도로 고독한 상황에서도 깨달음을 향한 인간의 정신이 형형하게 살아 있음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문태준 시인도 승한 스님의 시집 원고를 읽은 뒤 “시집 속에 등장하는 ‘173 폐쇄병동’은 우리의 고통스런 이 사바세계이며, 실감 있는 삶의 현장 그 자체이다. 스님은 이 연작시들을 통해 삶과 죽음, 폐색과 개방, 속됨과 신성, 실재와 환(幻), 그리고 자유에 대해 끝없이 질문하고 있다”며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무상과 무아를 깨닫게 하며, 이 시편들은 한 편 한 편이 아프고 격렬함과 동시에 고성(高聲)으로 몰아쳐 가며 읽는 불경(佛經)과도 같다. 그러나 시심의 결이 곱고 여리어 우리는 이 시편들 속에서 ‘오른쪽 뺨에 고이는 볼우물’과 같은 애틋함과 순수, 그리고 사랑을 함께 발견한다”고 평했다.

승한 스님의 이번 시집이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출가수행자’로서 감추고 싶은 자신의 ‘비밀’을 가감없이,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커밍 아웃(coming-out)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승한 스님은 “사람들은 누구나 정신적인 문제를 조금씩은 갖고 있다. 오히려 그런 정신적인 아픔과 고통을 감추고 싶은 병(病)으로만 치부하지 말고 그 본질을 직시함으로서 삶의 목적과 자유 도덕 행복 인간의 존엄성 등을 찾아가는 원동력으로 삼기를 바란다”며 “그렇게 된다면 더욱더 인간적이고 차원 높은 삶을 살아가는 ‘구원의 문(門)’을 찾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속내를 내비쳤다.

 

▲저자 승한 스님은?

중앙대 대학원 철학과 박사과정서 동양철학과 불교철학을 공부하고 있다. 198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 200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됐다. 시집으로 〈수렵도〉 〈퍽 환한 하늘〉 등과 산문집으로 〈나를 치유하는 산사기행〉 〈스님의 자녀수업〉 〈네 마음을 들어줘〉 등이 있다. 현재는 한국불교태고종 〈한국불교신문사〉 주필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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