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축 데스크 초대석 - 제주 원명선원 한주인 대효 스님

50년간 제주 원명선원서 간화선 대중화
‘고땡’ ‘자젠’ 등 참선 프로그램 히트시켜
2008년 활인선원 개원…참선지도 집중

코로나19는 새역사 쓰는 대전환 기회
화두참구는 긍정 에너지 돌리는 큰힘
​​​​​​​과거 미래 생각지 말고 지금행복해야

50여년간 조계종 정통 수행법인 간화선 대중화에 앞장서온 대효 스님. 스님은 1976년 제주도 화북에 개원한 원명선원과 참선재단을 문중 조카인 금강 스님(前 미황사 주지)에게 맡기고 지난달 떠났다. 여기에 2008년부터 일반인 대상의 간화선 포교 전진기지였던 활인선원 마저 후학에게 운영을 모두 맡겼다. 그리고 대효 스님은 올해 초부터 모든 직함을 다 내려놓고 강원도 평창의 산골에서 운수납자로 걸림없이 살고 있다. 그래서 본인을 무의한주인(無依閒主人) 즉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의지할 것 없는 한가한 주인이란 의미로 자신을 소개했다.

인터뷰도 처음에는 한사코 사양했다. 몇 번의 삼고초려 끝에 간신히 5월 9일 강원도 봉평의 효석문학관서 대효 스님을 만났다. 스님께 2021년 올해 봉축을 맞아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지혜와 반세기 동안 간화선 대중화에 힘써온 구도 역정을 들어봤다.봉평=김주일 편집국장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국내는 물론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러한 비대면 시대에 생활속 행복을 위한 일상 수행법을 모색해 현대인들 스스로 코로나를 극복하고 올바른 삶의 방향을 정립하기 위한 대중 프로그램의 실천 방안이 중요할 것 같은데요. 지난해에는 이를 주제로 한 세미나도 여신걸로 알고 있습니다. 대처 방안을 일러 주시지요.

=현대사회는 너무 균형이 깨지고 방향이 어긋나 있어서 바로 잡기위해서는 코로나 19와 같은 팬데믹을 통해 전화위복으로 삼아 새로운 진로를 모색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인류는 근원과 너무 멀리 떨어져 나와 지엽적인 것에만 매달리고 있습니다. 행복이 나와는 동떨어진 나 밖에 있다고 보는 비뚤어진 시각에 기대고 있죠. 그래서 내 자신이 아닌 어딘가 밖의 나와 먼 곳에 안식처가 자리 잡고 있을 거라는 망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밖으로 더 뛰쳐나가서 잡으려고 하는데 잡히질 않으니까 불안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겁니다. 코로나19를 극복하는 길은 외부와 차단하고 자제해 사람을 만나지 않는 자체 만으로도 백신이라고 받아드리면 위안 삼을 수 있겠지요. 밖에 있다고 믿던 행복이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바로 보고 삶의 방향을 내 안으로 되돌려놓으면 그때부터 온 세상이 달리 보입니다.

△1976년 제주서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참선도량인 원명선원을 일으키셨는데요. 당시만 해도 섬지역 특성상 토속신앙과 뒤섞인 기복신앙이 대세인 제주에서 정통 조사선(祖師禪)을 전파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제주서 포교를 시작한 연유와 녹록치 않았을 그 간의 포교 과정을 들려주시지요.

=1976년 겨울 한철 선방서 보내려고 제주에 왔다가 40여년 눌러 있게 됐죠. 당시만 해도 제주 불자들은 불심은 깊은데 불교를 어떻게 공부해야 되는지 잘 모르더군요. 특히 섬 지역 특성상 토속 신앙과 기복 신앙이 강하게 뒤섞여 있었어요. 불교에는 밝고 큰 길이 있는데 길이 아닌데서 한사코 빌고 매달려서 위안을 삼으려 합니다. 그것은 위안이 될 수 없다는 생각에 너무 안타깝고 연민이 쌓여서 결단을 감행했지요. 그래서 정통 조사선을 전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이때부터 前 종정 서암 스님을 모셔와서 무차법회를 열고, 각종 참선 프로그램을 만들어 포교를 했습니다. 대표적인 것들이 잠들기 전에 하는 ‘침선’과 활동하면서 하는 ‘행선’ 등 수행법을 개발해 보급했습니다. 인간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일상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는 길로 이끄는 정통 조사선을 알리기 위해 진력 했습니다.

△제주 원명선원 수행 프로그램은 ‘구하지 않아도 깨달음이 저절로 다가오는 조사선 수행’을 모토로 하는 걸로 유명한데요. 특히 삼매 체험을 통해 빗나간 습관과 태도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하는 ‘고통 끝 행복시작, 고(苦)땡 캠프’를 비롯해 연령별, 집단별, 성격별 프로그램 등 차별화된 조사선 콘텐츠들을 만드셨습니다. 계기와 참가자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자연스럽게 한가지 일에 몰입하는 삼매를 경험하면 꼭 불자가 아닌 일반인이라도 빗나간 습관과 태도를 바람직한 자리로 되돌릴 수 있습니다. 깨달음을 구하지 않더라도 자신도 모르게 어떤 깨침이 다가오는 무공용(無功用)의 경지를 맛볼 수 있죠. 고통 끝 행복 시작을 뜻하는 ‘고(苦)땡’ 캠프가 바로 그런 취지로 만든 것입니다. 모든 괴로움 갈등 번민을 통털어 고통이라 하는데, 이 고(苦)를 끝내면 ‘땡’이 되는 것이지요. 고땡, 이렇게만 된다면 여한이 없기에 이것 저것 다 접고 고땡으로 질주를 한겁니다. 다른 것 돌아보지 않고 오직 여기에만 매달렸습니다. 기도도 접고 절 재정이 어려웠지만, 봉사자 스탭진들이 함께 해줘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죠. 재선 도의원 출신인 한 참가자는 ‘고땡’ 프로그램에 감화돼 의원직도 그만두고 지금까지도 스탭진으로 봉사하는 분이 있습니다.

‘고땡 캠프’는 유치원 초중고생 할 것 없이 제주도는 물론 국내외 전역에서 문의가 오는 등 호응도가 높았죠. 이전엔 없던 ‘자젠 침선’도 새 영역으로 끌어 들였고, 선농도 조사선적 시각으로 시작은 했으나 대중화까지는 미흡한 상황입니다.

어린이부터 어른 노인에 이르기까지 전연령대에 선적 바탕으로 이 시대의 고민을 해결할 방안으로 가능성을 보았고, 비대면 프로그램으로 확장해 적용했으며, 세대 계층 종교까지 아우를 수 있는 실험성에서 가능성을 확인한 셈이죠.

△스님의 주도 하에 치러지는 수련회는 무엇보다 ‘무공용(無功用)’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들었습니다. 이는 열심히 노력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닌 물 흐르듯이 어느 순간 이뤄지는 깨달음을 찾아가는 과정을 의미하는 것 같은데요. 스님께서는 평소 “조사선 정신은 힘을 쓰는 과정을 통해 목적을 이루거나 성취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힘을 써서 이루고자 하면 깨달음을 거스르게 된다.”고 강조하셨는데요. 이에 대한 설명 좀 부탁드립니다.

=역사상 최고의 당나라 정신문화를 바탕으로 이룩된 300년 조사선 문화는 인간의 존재적 측면과 가치적면을 무한 공간으로 넓혀 놓았습니다. 조사선의 극치는 인간을 인간 본연의 자리에서 살아가는데 털끝만큼도 걸릴게 없는 위대함을 보여주고 있지요. 무위진인(無位眞人) 즉 사람을 극치에 이른 존재로 본 당대 최고의 조사선 정신이지요. 본래생사가 없다는 것이에요(本無生死). 본래부터 나고 죽음이 없는데 불법을 쓸 만한 데가 어디 있겠습니까?

배우고 익히고 뼈를 깎고 심혈을 기울여 밤낮으로 열심히 연마해도 부족할텐데, 이와는 정반대로 하늘과 땅의 위치를 바꿔 놓을 만큼 다른 교훈이 당대 조사선 정신에 농축돼 있었지요. 차례차례 힘써 배워서 얻으려 하는데 미련 두지 말고 정리를 분명하게 하라는 정신이에요. 수련 과정에 이 정신을 적용해서 매달리거나 쫓기지 않도록 여유로움을 받아들이고 조급함에서 벗어나는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 수련 과정에는 굳이 시간표를 두지 않아요. 시간을 정해 두면 오히려 시간에 구속됩니다. 시간은 생각이고 시간의 관념을 허물어 버리니 시간의 고정관념서 벗어나는 진실하고 효과적인 체험이 되지요.

△스님 말씀대로라면 ‘일상 속에서 말을 듣다 깨닫는 법’이 조사선의 핵심 사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깨달음이란 굳이 구하거나 얻으려 하지 않아도 먹고 자고 뛰놀며 저절로 어른이 되는 것처럼,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오는 것입니까?

=불교가 이 같은 조사선에서 획기적 불교 전통을 세우고 승속의 차별 없이 깨달음의 높은 고지를 평지로 끌어내리는 신기원도 만들 수 있었습니다. 당대에 들어서 지식과 신분 및 성별의 벽을 허물고 누구나 깨달을 수 있는 일상의 평이한 체험으로 깨달음을 보편화한 대중화가 되었던 것입니다. 한마디에 깨닫는다(言下大悟)라는 말을 선가에서는 쉽게 들을 수 있지요. 이런 문화에서 훗날 간화선도 잉태될 수 있었어요. 원활하게 계승하지 못한 여러 이유는 있지만, 한 생각 바꾸면 온산을 통째 옮기는 일도 허송세월하는 것보다 나을 수 있어요.

조사선은 매우 뛰어난 정신문화로 스승의 언어 한마디와 표정 및 행동을 면밀하게 살피면 제자의 일상이 우수한 일상 수행으로 승화됩니다. 일상에서 언어 한마디에 천금이 오가기도하고 찰나에 세상이 천만번 바뀌는 소식을 접할 수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중국 역사상 최고 문예부흥기인 당나라가 무너져가는 혼란한 시기에 촌철살인 같은 선의 어록을 많이 남기신 임제 선사를 멘토로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당시 눈과 귀가 밖으로만 쏠려있는 이들에게, 하늘과도 같은 부처님을 죽이고 그 정신을 이어받는 제자인 조사를 죽이고, 충효의 근간인 부모를 죽이라는 ‘살불살조 살부모(殺佛殺祖 殺父母)’의 외침은 청천벽력과도 같은데요. 임제 선사는 왜 이렇게 이야기한 것일까요? 또한 현대의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요?

=살불살조의 표현을 한 임제선사를 지나치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데 오늘날 극과 극 흑백논리의 낮은 정신문화에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당대 문화와의 차이를 극명하게 들여다 볼 수 있지요. 세계 역사상 가장 우수한 문화 전성기인 당대에 이 같은 말을 남겼다는 것은 당시의 정신 문화 수준이 얼마나 높았느냐를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전통과 관습으로부터 자유로운 사상의 전개는 인간의 존재와 가치를 있는 그대로 구김없이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죠. 이런 당당하고 뛰어난 정신문화로 극찬되는 것도 당이 문을 닫고 송대에 접어들면서 잠시 잠깐에 그치고 끝을 맺고 말았지요.

오늘날 황금만능의 대가가 혼미한 정신문화로서 갈등과 고통의 물결로 넘실대는 사회상을 낳고 있다고 하겠지요. 전통과 풍습 관례의 틀을 벗어난 정신을 여과 없이 보여준 인류 역사상 두드러진 절대적 주체의 인간 사상을 정확히 안다면 이 시대를 위기에서 건져내게 할 것입니다.

△화두 참구는 악한 자의 에너지마저도 긍정으로 돌리는 수행이며, 참선 공부를 위해 업장소멸 한답시고 기도할 이유는 없고, 화두 참구에 업장소멸은 불필요하다고 말씀하신 걸 들은 기억이 납니다. 화두는 깨달음의 구경 즉 완성이며 화두참구는 깨달음의 과정이라고 흔히들 말합니다. 그렇다면 화두를 제대로 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참선은 최상승 법문입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했건 중요치 않습니다. 화두만 들면 단박에 생사문제를 해결 할 수 있습니다. 화두 참구는 악한 자의 에너지마저도 긍정적으로 돌리는 수행입니다. 백정도 모자란 사람도 한소식을 했죠. 참선 공부를 위해 업장 소멸 한답시고 기도할 이유는 없습니다. 화두 참구에 업장소멸은 불필요합니다.

서로 대화하는 이 순간, 학교 수업에서 강의할 때 질문과 대답을 하는 시간, 그 순간마다 삼매를 체험하고 자신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촉발되면 깨달음은 어느 순간 내 안에 있는 것입니다. 말 듣다 깨닫는 법이 조사선의 핵심입니다. 깨달음이란 어린애가 태어나 먹고자고 뛰놀며 저절로 어른이 된 것과 같은 것입니다.

간화선은 일순간에 뛰어넘는 확철대오에 이르는 길임에 틀림없지요. 그래서 굳이 다른 관심사에 방황하지 말고 화두 의문을 갖는다면 화두 참구는 시간을 많이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곧잘 일념으로 다가갈 수 있습니다. 또한 안착한 정신을 쉽게 포기 말고 일상 활동 중에 여유를 갖고 화두에 임하면 이것이 바로 올바른 화두 참구입니다. 그래서 화두 참구는 간결하고 빠르고 바로 들어가야 하며, 화두를 드는 순간부터 깨달음을 일상서 가느다랗게 쓰기 시작하는 단계에 접어든 것입니다.

△2008년 부터는 경기도 안성에 활인선원을 열어 일반인을 대상으로 수행을 가르치며 간화선 대중화와 저변확대에 힘쓰고 계신데요. 활인선원은 특히 축원이나 기도의식을 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죠. 활인(活人) 즉 제 마음을 바로 보는 일이 사람을 살리는 가장 쉽고 근본적인 길이란 믿음에 참선만 하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거사가 제주 원명선원 수련회에 참가했다가 수도권에도 이런 도량이 있다면 좋겠다고 발원해 현재 안성 활인선원 산자락을 마련해줘 2008년에 개산하게 됐죠. 시주자의 뜻을 받들어 이 시대에 사람을 살리는 도량이 되기를 발원해 활인(活人)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됐습니다.

종교와 상관없이 누구나 활인선원에 오면 조사선을 기본으로 쉽게 지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선원을 경영하지 않는다고 항상 강조합니다. 선원은 경영이 아니라 수행하는 곳이어야 한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이 원칙은 바꿀 생각이 없습니다. 그래서 활인선원은 축원이나 기도 의식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죠. 오직 참선만 합니다. 인생의 성장은 결국 마음과 생각의 발전에서 옵니다. 생각이 막힐 때 그 한계를 뛰어넘는 것을 생각해 냄으로써 비로소 빛을 발하죠. 그때에 마침내 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상대를 존중하면서 진정한 자비심을 구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진면목만 제대로 보아도 잃어버린 인성을 찾아 바르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이 스스로 깨달음을 얻게 해주는 참선의 목적인 것입니다.

△매일 끊임없이 넘어지고 부딪히는 게 중생의 삶입니다. 일상서 마음이 부처님 같지 않을 때가 더 많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숨은 쉬어지는데, 숨쉬기 힘들 만큼의 고통들도 속속 나타나지요. 어떻게 극복해야 최선을 다하는 지금 이 순간이 바로 내 인생 최고의 시간이라는 생각으로 살 수 있을까요?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원래 힘들고 고통스러운게 세상은 아닙니다. 모두 어두운 세상으로 규정 짓다보니 그렇게 보일 뿐이지요. 부정적으로 보면 그렇지 않은 밝은면 또 바람직한면 까지도 그냥 지나쳐 버리고 말지요. 어떤 사람이 한 눈만 갖고 한눈으로만 보고 사는데, 그 주위 사람들도 모두 눈을 하나씩만 갖고 있다고 합시다.

한 눈을 갖은 사람들은 조금도 불편하거나 힘들지 않을 거에요. 그런데 이와 달리 그 많은 사람 가운데 한사람만이 두 개의 눈을 갖고 있다면 외눈을 가진 다른 모든 사람들이 이 두눈 박이를 어떻게 볼까요?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고 수군거리고 가깝게 가는 것조차 망설여지고 손가락질하지 않을까요. 다른 이와 비교해 ‘나는 행복하다 나는 불행하다’라고 규정짓는 것이야말로 씻을 수 없는 과오입니다.

주변과 이웃과 대상과의 단순 비교로 결정짓는 어리석음처럼 무모한 짓에서 하루빨리 손을 씻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비교라는 다리를 훌쩍 건너 뛸 때 우리 사회는 힘 빼지 않고 성숙한 사회에 진입할 것입니다. 비교는 곧 죄악입니다. 비교가 죄악이 된다는 공식을 안다면 개인과 집단, 집단과 집단, 계층 간에 갈등은 사라지고 서로 화해하고 화목하며 평화로운 사회가 펼쳐지겠지요. 태어나면서 가지고 나온 크나큰 행복을 쪼그라들게 하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최상의 지혜입니다. 이 지금의 순간은 누릴 때 느끼는 것이지 머리로 헤아려서는 그 바다보다 깊고 우주만큼 큰 오묘함을 알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의 순간은 아는 것이 아니고 가슴으로 온전히 누리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은 과거에 진 빚 미래에 질 빚을 모두 갚는 유일한 자리이며 도리입니다. 이 순간에 빚을 갚지 못하면 빚은 이자가 복리로 돌아와 도산될 수도 있으니, 이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초기 대승경전인 〈금강경〉서 ‘여래를 여래라 하면 여래가 아니다’라는 구절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여래라고 하는 것은 생각일 뿐. 머릿속 생각으로써만 여래라는 것이지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 드라마틱한 과거, 영상으로 등장하는 그 모습들. 자신을 감동 시켜 이 순간에 감격하고 오열하고 심장이 멈추게 하는데, 이는 오직 생각과 관념을 넘지 못하는 비현실이죠. 사실이 진실이고 진실이 진리입니다. 진리를 깨닫는다고 하는데 깨달음은 사실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지요.

사실이 아니면 진실이 아니고, 사실이 아니면 거짓임이 분명합니다. 과거는 그림자와 같고 영상과 같아서 실체가 없다는 사실인데 과거를 있는 것처럼 아직 있지도 않은 미래를 제단하고 오인해서 환상과 관념의 틀 속에 가두고 있습니다. 과거와 미래는 나 자신을 옥죄일만한 사실적 근거라곤 이 세상 저세상을 아무리 샅샅이 파헤쳐도 찾을 수 없는데, 거짓에 속아 그것도 내가 나에게 속으면서 사는 삶을 청산하고 이 시대의 지성인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런 정신으로 대중을 이끌고 나아가야 합니다. 나를 나라고하면 나또한 내가 아니다. 이렇듯 나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나를 지키는 것이 아닌 진실로 성찰하는 삶이 될 때, 또한 모든 존재가 생겨나고 또 사라짐이 싱그럽고 생기 넘치는 순간순간이 될때 우리가 사는 지금이 활발발로 펼쳐질 것입니다.

대효 스님은…

1966년 경북 선산 대둔사서 서옹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68년 자운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고 제방 선원서 정진하며 당대 선지식인 서옹 서암 성철 향곡 경봉스님 등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 1976년 제주도 화북에 원명선원을 열어 40여년 간 ‘고(苦) 땡 캠프’ 등 참선 수련회를 열어 재가불자들을 지도해 왔다. 또한 2008년 부터는 경기도 안성에 활인선원을 개원해 간화선 대중화에 함썼으며, 2010년 재단법인 참선재단을 설립해 조계종단에 등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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