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왕 가르침 되새기며 중생 치유”

상하이 중의학 발전 공헌 인정돼
한국인 최초 ‘백옥란영예장’ 수상

난치병 가족 위해 중국 유학 결심
외국인 최초 상하이 중의사 거듭
108참회로 주체적 의료인 ‘고찰’

9월 28일 공정(묠正, 사진 오른쪽) 상하이시 시장이 홍원숙(사진 왼쪽)에게 ‘백옥란영예장’을 수여하고 있다. ‘백옥란영예장’은 상하이 지역 발전에 공헌한 외국인을 대상으로 매년 시상하는 의미있는 상이다.

조계종 불교여성개발원 8차 여성불자 108인인 홍원숙 상하이중의약대학 부교수가 9월 28일 한국인 최초로 중국 상하이 ‘백옥란영예장(白玉蘭榮譽奬, Magnolia Gold Award)’을 수상했다. 앞서 홍 교수는 지난 2017년 ‘백옥란기념장(白玉蘭記念奬 Magnolia Award)’을 수상하기도 했다.

‘백옥란장’은 중국 상하이시의 시화(市花)인 백옥란을 기념해 제정된 훈장으로, 상하이 경제·사회발전 및 대외교류에 공헌이 큰 외국인를 대상으로 매년 시상한다. ‘백옥란장’은 1989년 제정한 ‘백옥란기념장’과 1992년 제정한 ‘백옥란영예장’ 2가지가 있다.

홍 교수가 이번에 받은 ‘백옥란영예장’은 ‘백옥란기념장’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백옥란기념장을 수상한 뒤 2년 이상이 지났거나 상하이와 3년 이상 우호 관계를 맺는 데 큰 공헌을 한 외국인에게만 수여된다. 현재까지 총 342명의 외국인이 수상했다.

현재에도 상하이 현지서 의술을 펼치고 있는 그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다음은 홍 교수와의 일문일답.  

Q. 상하이 백옥란영예장 수상 소감은?
A. 부처님의 가피로 백옥란영예장을 받게 돼 너무나 감사하다. 인류의 건강을 위해서 앞으로도 넓고 심오한 중의약 문화와 상하이 중의(海派中醫), 중의약 치료 체계를 한국과 세계에 전파하는 데 힘쓰겠다.

Q. 중국 중의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는?
A. 대학은 한국서 동국대를 졸업했으나, 가족이 난치병을 앓고 있어 1993년부터 중의학을 공부하게 됐다. 중국 유학을 떠나기 전에 어머니께서는 “첫째는 꼭 학업을 성취해라. 둘째는 한국 하늘과 중국 하늘은 똑같다. 그러므로 부모가 항상 너와 함께 살고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살아가라”고 말씀하셨다. 지난 2002년 외국인 최초로 중국의사자격증을 취득한 이후 지금까지 소화기내과 임상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2007년 중의내과학 임상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전에는 상하이중의약대학 부속 용화(龍華)병원·부속 서광(曙光)병원에서 근무했고 현재는 상하이 민항구(閔行區) 중의병원에서 진료하고 있다. 한국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를 겸임으로 역임했다.

Q. 사스(SARS) 때부터 중국 감염병 유행때 활약했다 들었다.
A. 지금까지 중의학계에 몸담은 지 28년이 됐다. 중국에서 지난 사스(SARS, 2003)·신종플루(2009)에서 코로나19(2020) 사태까지 상하이 환자들과 함께했다. 2003년 사스가 창궐할 때 타국 대학원생은 모두 귀국했다. 난 그때 상하이중의약대학 부속 용화병원 응급실에 배치됐다. 마침 한국에 계신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더니 “너는 의사다. 의사로서 너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다 해야 한다. 만약 네가 희생된다면 우리는 운명을 받아들이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에게 배정된 응급실 환자를 정성껏 돌봤다. 또 2009년 신종플루 때는 상하이중의약대학 부속 서광병원 응급실과 발열 호흡기 외래 진료소(發熱門診)에서 9개월간 진료했다.
올해는 코로나19가 창궐해 전 세계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중국은 한국과 달리 전통의학을 다루는 중의사와 현대의학을 다루는 서(西)의사(한국의 양방)를 구분하지 않고 대등하게 코로나19 방역과 진료에 참여한다. 현재 발열 호흡기 외래 진료소에 배치되지 않았지만 병원서 방역 준칙을 지키며 진료한다.

홍원숙 교수가 상하이 민항구 중의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Q. 불교와의 인연은?
A. 우선 가족 모두가 불교와의 인연이 깊다. 부산 능인선원에 주석하며 불교 선차(禪茶)를 계승·전파하고 계시는 성각 스님이 제 언니이시다. 개인적으로는 중학교 재학 당시 집에 있는 티베트불교 서적을 읽고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됐다. 물론 언니이신 성각 스님의 영향도 크게 받았다.
성각 스님은 경봉(鏡峰) 선사를 통해 서울 방생선원 정관 스님의 상좌가 됐다. 저의 법명 만덕화(萬德華)도 고등학생 시절, 정관 스님께서 내려 주셨다. 스님께서는 법명을 주시며 “자라서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라. 만 가지 덕을 쌓아라. 살면서 덕을 많이 쌓으면서 살아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정관 스님의 가르침을 항상 잊지 않고 살고 있다.

Q. 평소 마음에 새기는 경구는?
A. <임제록>에 있는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다. ‘어느 장소에서든지 주인이 될 수 있다면, 모든 곳이 참된 곳이다’라는 의미인데 되새길 때마다 의료인으로서 본분이 무엇인지 고찰하게 된다.

Q. 평소 신행생활은?
A. 1993년 상하이에 도착했다. 처음에는 상하이 한국인 불자 모임인 ‘반야회(현재 용화선원)’을 다녔으나 지금은 옥불선사(玉佛禪寺)에 자주 간다. 이번 수상 직후인 음력 8월 15일에도 옥불선사 부처님을 참배하고 ‘백옥란영예장’을 부처님전에 바쳤다. 또한, 아침마다 108참회를 통해서 타국 생활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불심을 키워가고 있으며, 조계종 불교여성개발원 여성불자 108인 8차 회원으로서 선배 불자에게 배우고 있다.

Q. 향후 계획은?
A. 부처님의 칭호 중 하나가 ‘대의왕(大醫王)’이다. 질병의 고통에서 구제하는 의학은 불교와 마친가지로 국경을 초월한다. 불자 의료인으로서 앞으로 어디서 일하든지, 그곳이 어디든지 아픈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병마와 싸울 수 있도록 돕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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