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교토시, 사이지 사지 발굴 결과 발표

발굴된 강당터와 수미단터를 설명하는 발굴팀. 사진출처=마이니치 신문

1천여년 가까이 규모가 짐작되지 않던 사찰의 비밀이 풀리고 있다. 일본의 문화수도인 교토를 지키던 사이지(西寺)의 사지발굴 조사에서 발굴팀이 드디어 강당과 수미단 터를 찾아냈다. 10월 22일 일본의 ‘교토신문’ ‘마이니치 신문’등의 주요언론들은 사이지 발굴조사 결과를 일제히 보도했다.
794년 교토가 일본의 수도로 지정되면서 일본 조정은 수도와 나라를 지키는 관사(官寺)로 교토의 동쪽과 서쪽에 각각 토지(東寺)와 사이지(西寺)를 건립했다. 두 사찰이 건립됨에 붙여 교토 시내에는 그 어떤 사찰의 건립도 허용되지 않았다.

1천년 숨겨졌던 사찰확인
토지는 세계문화유산이나
사찰은 소실 후 재건못해
초유의 발견에 학계 주목


토지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현존하는 반면, 사이지는 10세기와 13세기경의 대화재로 소실된 후 재건되지 못했다. 사지는 공원으로 변하여 규모와 구조를 알 수 없는 상태로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그러나 역사기록에서 사이지는 일왕이 주관하는 법회를 개최하고, 출가자들의 승적을 관리하는 등 격이 높은 사찰이었다.

교토시 문화재보호과가 주관해 지난 9월부터 진행된 사이지 사지 발굴조사에서 그동안 규모와 위치가 특정되지 않았던 강당터가 불상을 봉안했던 수미단의 터와 함께 발견됐다. 교토시는 22일 오후, 코로나19 감염방지를 위해 발굴지 현지설명회를 진행하지 않는 것을 대신해 보도자료와 발굴자료를 공개했다.

발굴된 강당의 토대는 안 길이 25m, 폭 39m, 수미단은 안 길이 6.3m, 폭 17m로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토지의 강당에 비해 동서의 폭이 좁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교토시 문화재보호과 측은 “사료에 따르면 토지의 강당이 사이지 보다 뒤에 지어졌다는 점에서 규모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발굴된 강당의 규모나 기둥간의 간격이 당시 왕궁의 규모와 같은 간격이라는 점에서 매우 격이 높은 건물”이라고 밝혔다. 사이지의 강당은 사이지가 처음 건립되던 당시 가장 먼저 건립된 중심 건물로, 예불과 함께 승가교육이 이루어졌던 복합적인 시설이다.

이번 발굴결과에 대해 일본고고학계의 반응은 뜨겁다. 교토산업대학의 스즈키 히사오 교수는 “토지의 강당은 수미단에 21구의 불상을 모신 입체만다라가 봉안되어 있기에 수미단의 규모가 큰 것을 이해할 수 있지만, 사이지의 수미단도 예상외로 큰 크기”라며 놀라움을 표했다. 스즈키 교수는 “발굴된 수미단의 크기에서 추정해 볼 때, 사이지의 강당도 최소한 삼존상이나 사천왕상을 함께 모셨을 것이다. 아마 당시 당에서 들어온 선진불교였던 진언밀교의 영향으로 하나의 세계관을 수미단 위에 건립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한편 긴키대학의 아미 노부야 교수는 “사이지가 토지에 비해 먼저 완공되었고, 승적을 관리하는 등의 관청의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사이지는 당시 기존불교의 주류였던 현교(顯敎)를 중심으로 삼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미 교수는 “교토의 중심대로를 기준으로 좌우를 나누었다는 점과 두 사찰의 규모가 다르다는 점에서 동쪽을 밀교, 서쪽을 현교로 하는 당시의 종교정책을 추정해 볼 수 있는 귀중한 발견”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발견으로 사이지는 현재 공원으로 지정된 약 105평방미터의 사지보다, 더 큰 규모로 조영되었음이 밝혀지고 있다. 현재 발굴팀은 기록상 존재하는 사이지의 오층탑 터와 요사채 터 등을 추가적으로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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