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우릴 떠났다” 광고 문구
업무위해 세계 다녔던 과거 회상

여행 기회 풍족했던 이전과 달리
코로나19로 해외여행·출장 全無
여행의 소중함 일깨우는 계기 돼

풍부함이 삶을 풍부하게만 할까
삶의 가치를 일깨우는 건 ‘무집착’

내가 좋아하는 영어 표현 중에 ‘어플런트(affluent)’란 말이 있다. 이 용어는 풍부한, 풍족한이란 의미의 형용사로서 부족함이 없고 원하면 언제나 할 수 있으며 모든 것이 넘쳐나는 상태를 지시한다. 

불교의 중도(中道)는 다양한 측면에서 적용될 수 있다. 물론 초기에는 쾌락을 추구하는 삶과 고행을 하는 삶 사이의 중도를 지칭했지만, 점차 의미가 확장되어 있음과 없음 사이의 중도, 영원과 단멸 사이의 중도 등으로 사용되었다. 아마도 한쪽으로 치우치는 극단을 피해 중앙을 견지해야 한다는 관점이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에 중도를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우리의 삶이 어플런트(affluent)해서 모든 것이 풍족하고 풍부하여 넘쳐나면 그것이 훨씬 더 좋은 삶이 아닐까? 이러한 삶은 부족하고 결핍되어 항상 모자라는 삶보다도 훨씬 더 좋은 삶이 아닐까? 왜 우리는 모든 것이 넘쳐나서 원하면 무엇이든 언제나 할 수 있는 삶을 지양해야 하는 것일까? 

코로나19는 한편으로 우리 삶을 옥죄면서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전에 미처 알지 못했던 우리 삶의 소중한 측면을 일깨우기도 한다. 요즘 TV를 보다 보면 “여행이 우리를 떠났습니다…”로 시작하는 광고가 있다. 이 광고를 보면서 불현듯 지난 10여 년간 나의 삶을 가득 채웠던 수많은 해외여행이 떠올랐다. 학교와 학회 업무로, 불교 유적 답사를 이유로 인도·태국·미국·유럽·중국 등 전 세계를 여행했다. 매달 거의 1번 이상 해외 출장이 있었던 것 같았고 여행을 갈 기회가 지천에 널려 있어서 때로는 귀찮아했던 것 같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때는 여행이 너무나 어플런트(affluent)해서 각각의 여행이 가지는 소중함과 남다른 가치를 전혀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이는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와 마시는 물은 너무나 풍부하고 풍족해서 우리가 그 소중함을 인지하지 못하지만, 일단 부족해지면 우리의 목숨을 좌우한다는 점을 알아차리게 되는 것과 같다. 

코로나19로 여행이 나를 떠나면서, 내가 했던 여행들이 얼마나 소중했던 것인가를 불현듯 인지하게 되었고 나의 삶을 얼마 많이 변화시켰고 각각의 여행들이 나의 삶에 얼마나 깊은 의미를 부여했는가를 새롭게 실감하게 되었다. 

〈숫따니빠따〉는 ‘소 주인은 소 때문에 기뻐하고 아들이 많은 사람은 아들 때문에 기뻐한다’라는 말에 ‘소 주인은 소 때문에 괴로워하고 아들이 많은 사람은 아들 때문에 괴로워한다’라고 답한다. 삶이 풍족하고 풍부하며 ‘옵플런트(opulent)’해서 가진 것이 많게 되면 이를 지키기 위해서 집착하게 되고 그러한 집착은 결국 괴로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굳이 집착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엄청나게 소가 많다면, 엄청나게 자식들이 많다면 어떻게 될까? 모든 것이 풍부하고 모든 것이 풍족해서 굳이 가지려 하지 않아도 모든 것이 넘쳐나는 유토피아가 있다면 우리는 그곳에서 더 이상의 집착이 없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코로나19로 뉴노멀(New Noraml)을 겪으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러한 유토피아가 있다고 해도 절대로 가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런 곳에서 우리 삶의 소중함과 남다른 가치를 결코 인지하지 못 한 채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여행이 나를 떠나기 전 수많은 답사에서 찍어온 영상과 사진들 천천히 살펴보며 그 하나하나에 담긴 소중한 기억과 의미를 되새기는 일이 나의 일상이 되고 있다. 다시 여행이 나를 찾아오게 될 때를 기다리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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