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선태 교수, 경주문화재硏 창립 30주년 세미나서

궁궐로 짓다가 사찰된 황룡사
철저한 도시계획 통해 창건돼
황룡사 등 前大路 왕궁 향해
‘중국 리방제 모방’ 학설 반박

신라 황룡사지 전경. 최근 발굴을 통해 대로들이 확인됐는데 이는 월성을 중심으로 계획된 구조물로 추정된다.

신라를 대표하는 사찰인 황룡사의 부지는 본래 궁궐로 지으려고 했던 곳이다.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에 따르면 새 왕궁을 지으려고 했으나 황룡이 나타나는 이적을 보고 그곳에 ‘황룡사’를 세웠다고 한다. 사찰연기설화로만 전해지는 황룡사의 창건이 신라 특유의 철저한 도시계획 속에서 이뤄졌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신라사 전문가인 윤선태 동국대 역사교육학과 교수는 8월 21일 열린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창립 3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논문 ‘신라 왕도와 국가사찰’을 통해 이 같이 주장했다. 

그는 최근 나타난 황룡사지 발굴 성과를 살폈는데, 특히 2016~2019년 진행된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이 발굴한 남쪽대로 및 광장 터 발굴조사 결과에 주목했다. 조사 결과 길이 500m, 너비 50m의 대로가 황룡사 남문 남쪽 광장부터 서쪽의 안압지 인근 신라 궁궐의 동문까지 이어진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는 황룡사와 남쪽 동서대로가 신라 왕궁의 장엄과 밀접히 관련됐음을 보여준다는 게 윤 교수의 설명이다. 

궁궐로 지을 부지에 황룡사를 세운 이유도 철저한 계획 속에 이뤄졌다. 윤 교수는 신라 왕궁인 월성과의 관계를 살폈다. 그에 따르면 황룡사가 건립되기 전 부지는 거대한 습지로 이름하여 ‘용궁’으로 불렸다. 하지만 신라인들은 자신들의 독창적인 토목기술로 사찰을 세웠고, 현재 안압지(월지) 주변 공간도 활용이 가능하다고 봤다. 

윤 교수는 “월지 주변을 월성과 연결해 궁궐 공간을 확장한다면 월성의 기존 장점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관청 간 인적·물적 자원을 황룡사지보다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면서 “황룡사지보다 궁궐을 건설할 보다 적합한 땅이 생길 수 있는데, 굳이 황룡사지에 궁궐을 조성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고 이는 후일 만월성 건립으로 실현된다”고 설명했다.

실제 신라 중후기로 넘어가면 월성은 동북쪽 안압지 권역 등 사방으로 증축돼 만월성으로 변모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황룡사를 비롯한 흥륜사, 영묘사, 사천왕사 등 국찰들은 왕의 권력을 더욱 돋보이게 장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조성됐다는 게 윤 교수의 주장이다. 

윤 교수는 주장의 근거로 황룡사와 왕성 사방에 자리한 국찰들에게서 공통적으로 ‘전대로(前大路)’가 확인되는 것을 들었다. 

윤 교수는 “국찰의 전대로와 왕궁의 중요한 누각을 갖춘 대문들은 시각적으로 이어져 왕경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왕궁으로 집중될 수 있도록 했다”면서 “역으로 왕은 왕궁 대문의 문루에 올라 각 방면으로 열려 있는 사찰의 전대로를 통해 만민을 굽어 살피고 자신의 손짓 하나로 왕경인들의 일상이 작동하는 왕의 힘을 보여주려고 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교수의 이 같은 주장은 기존 신라 왕경이 중국 당나라 장안성의 리방제 도시계획을 모방했다는 기존의 학설을 반박하는 것이라서 더 눈길을 끈다. 

그는 “그간 신라 왕경 연구는 중국 도성사의 발달과정을 거의 무비판적으로 가져와 신라왕경을 완벽하게 통일적으로 작도했다”고 지적하며 “신라 왕궁의 사방에 배치되어 왕궁을 장엄했던 국찰의 전대로와 그 방향성으로 볼 때, 왕경계획의 기본적인 중축선은 월성과 그 확장된 궁궐인 만월성이 기준이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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