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한국인이 알아두면 좋을 미얀마 문화

드러나지 않는 문화적 차이
여성 통금 시간은 저녁 7시
‘성범죄’는 있지만 ‘미투’ 없어
가해자는 암묵적으로 배제해
‘여성과 접촉’한 스님 조심해야

탁발하는 스님들.

미얀마로 유학을 가기 전에는 해외에서 유학하는 친구들의 고충을 잘 이해하지 못 했다. 예를 들면 ‘문화가 달라서 생활 하는데 스트레스가 많아.’라고 말하는 친구의 고민에 완벽히 공감하지 못 했었다. 미얀마로 떠난 후 ‘직접 경험해야만 배울 수 있다’는 말을 남긴 소설가 루이스 라무르의 명언이 온 몸으로 이해가 되었다. 한국에서 십 여년동안 미얀마 사람들을 만나면서 교류를 해왔기 때문에, 미얀마 문화와 관습에는 어려움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유학 첫 날부터 나의 오만은 와장창 깨지기 시작했다.

운이 좋게도, 미얀마 집권여당인 NLD 최고위원분의 배려로 미얀마 경제 싱크탱크 ‘르네상스 연구소’에서 미얀마 연구원 언니 2명과 지내게 되었다. 양곤대학교 기숙사 경우에는 여자라면 오후 6시까지 통금시간이 있었다. 앞으로 지내게 될 숙소는 기숙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한국과 같은 자유로운 생활을 기대했다. 어느 날, 대사관 행사가 끝난 후 밤 10시가 넘어 집에 도착했다. 대문을 열고 들어 가자 마자 언니들은 나에게 ‘여자가 위험하게 밤늦게 돌아다닌다. 가로등도 없는데 얼마나 위험한 줄 아냐!’ 등 여러가지 이유로 혼을 냈고, 그 다음날 아침에 NLD 최고위원분의 귀에도 들어가서 호되게 혼난 적이 있었다.

외국 경험이 있는 미얀마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여자가 혼자 밤늦게 돌아다니는 것을 많이 걱정한다. 특히 여자라면 저녁 6시에서 7시까지는 집에 귀가해서 가족들과 식사하고 집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미얀마 사회적인 관습 중의 하나였다. 유학생활을 2년 동안 하면서 적응 안 되는 것이 ‘통금’ 시간이다. 대사관 행사 및 한국인들과 약속이 있는 저녁 식사자리라면 언니들에게 보고를 한 후 정확히 10시까지 집에 돌아와야 혼나지 않는다. 내년이면 30살을 바라보는 나로서, 앞으로 3년 동안 더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마치 고등학생으로 돌아간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불교’나라지만 성범죄 없지는 않아

한국에서 ‘미투(Me too)’운동이 일어났을 때 몇몇 분께서 ‘미얀마는 불교나라라서 그런 일 없지 않아?’ ‘불교나라라서 성(性)과 관련된 문제는 없지?’라는 환상을 갖고 질문을 했다. 나의 대답으로 아마 그 분들의 환상이 깨졌을 듯하다. 미얀마가 불교나라라는 것은 맞지만, 우리와 같은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기 때문에 비슷한 문제가 발생한다. 하지만 사회적인 현상이 미얀마 문화와 관습에 따라 우리나라와 다르게 나타나는 편이다.

미얀마 사람들은 부처님의 가르침 중 “세상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이 부끄러움과 무서움”이라는 것을 굉장히 중시한다. 여기서 부끄러움과 무서움이란 악행을 하는 것과 선행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하는 것을 말한다. 부끄러움과 무서움을 망각하는 사람은 진리에서 제일 멀리 있는 사람이며, 부끄러움과 무서움을 망각하지 않으면 부처님의 가르침과 진리에 다가가게 된다. 이 가치관은 미얀마 사람들의 개개인의 생각과 행동으로 나타나며 사회의 암묵적인 규범이 되었다.

본래 부처님의 말씀은 ‘악행을 하는 것과 선행을 하지 못 하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두려움이지만 이것이 현재 미얀마에서는 ‘나’와 ‘타인’의 체면을 상하는 일은 하지 않는 것으로 굳어졌다. 성(性)과 관련된 문제가 발생해도 수면 위로 문제가 떠오르지 않는다. 설령, 문제가 터졌다고 하더라도 사회적인 공론화가 되지 않는 것은 피해자가 다른 사람들의 소문에 상처받는 것을 극도로 조심하기 때문이다. 대신 가해자를 사회적인 관계에서 암묵적으로 배제시키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가해자의 죄질이 나쁜 행동에 대해서 몰래 이야기를 해주는 편이다.

탑과 승가에 관해서는 발 조심하기

미얀마 스님들은 새벽 4시가 되면 탁발을 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 특별히 절에 아침 공양 보시가 오는 날이면, 외부로 탁발을 가지 않고 절에서 음식을 발우에 받는다. 신도들은 스님에게 공양을 보시할 때, 반드시 신발을 벗고 드려야 한다. 또한 불상과 탑이 있는 곳에 앉을 때는 반드시 발가락을 보여서도 안 되고, 발을 뻗으면 안 된다. 스님과 어른들에게도 앉을 때도 자신의 발을 보여서는 안 된다. 삼보(三寶:불·법·승)와 관련된 것과 삼보와 같이 자신들이 존경심을 갖는 ‘어른’에게 ‘발’을 보이는 것은 굉장히 무례하고 부끄러운 행동으로 생각한다. 또한 불교 경전, 불교 관련된 책에 부처님 사진이 삽입되어 있는데 그 위에 물건을 올려놓으면 어른들에게 혼날 수 있다.

승가와 관련해서 조심해야 할 행동이 하나 더 있다. ‘스님의 그림자를 밟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특히 여성은 비구스님 옆에 가까이 서서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미얀마에서는 여성신도와 비구스님이 가까이 하는 것을 극도로 조심하기 때문이다. 스님에게 할 말이 있을 때는 스님이 앉아 계실 때 그 주위에 가서 무릎을 꿇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 또한 스님과 몸이 접촉하는 것 자체를 극도로 조심해야 하기 때문에 가까이 친견하지 않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미얀마 비구 스님이 미얀마가 아닌 다른 나라에 가도 여성과는 가까이 접촉하지 않는 것은 미얀마 승가가 반드시 지키는 계율이다. 혹여 미얀마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만난 미얀마 비구 스님이 여성과 가까이 있거나 몸의 접촉이 있다면 그는 진정한 미얀마 스님이 아니니 현명하게 피하는 것을 권한다.

점심공양 시간의 모습.

직설적인 표현은 자제…우회적 발언

미얀마 사람들과 대화 할 때, 긍정적인 표현을 제외하고 부정적인 이야기를 할 때는 우회적으로 해야 한다. 한국 사람들은 돌려 말하는 것을 답답해하고 싫어하는 경향이 있지만, 미얀마에서 한국스타일로 이야기 했다가 인간관계 단절을 맛 볼 수 있다. 미얀마사람들은 ‘싫어하는 것’을 표현 할 때, 말로 하지 않는다. 말을 아예 하지 않거나, 피하는 편으로 자신의 의사를 알린다. 혹시 어떤 문제에 대해서 미얀마 사람들이 대답을 안 하거나, 피한다면 그 문제에 관련해서 ‘말하고 싶지 않다’는 표현을 하는 것이니 더 이상 묻지 않아야 한다.

또한 한국 사람들이 가장 어려움을 겪는 부분 중에 하나가 ‘전화’ 문제이다. 한국 사람이 미얀마 사람에게 부탁을 한 후 답변을 기다릴 때 ‘연락이 오지 않는다’ 혹은 ‘연락을 해도 받지 않는다’는 고충을 많이 들었다. 이것은 ‘부탁을 들어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미안하다’라는 뜻이다. 이를 전화하지 않거나, 받지 않는 것으로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2주 가량 아무 연락이 없거나,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다면 그 부탁은 다른 미얀마 사람에게 하는 것이 현명하게 인간관계를 이어 나가는 방법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시각에서는 ‘못 한다, 이건 내가 해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고 솔직하게 이야기 해주는 것을 바라지만, 미얀마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직접적으로 이야기 하면 상대방의 감정이 상한다고 생각해서 우리나라식으로 하지 않는 것이다.

서로가 오해를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지만, 오해를 풀 수 있는 방법은 나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살아온 문화적인 환경과 생활을 이해한 할 때 오해가 풀리지 않을까? 우리나라에서도 각자 다른 가치관과 표현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 가서 정착하여 사는 것은 더욱 쉽지 않다. 미얀마가 단순히 ‘불교’ 나라여서 사람들이 모두 선량할 것이라는 생각은 우리의 욕심이다. 미얀마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과 다르기 때문에 빨리 경제개발을 못 하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미얀마를 관통해온 문화와 관습 그리고 가치관을 이해 할 때 한-미얀마 관계가 더욱 밀접해지지 않을까? 미얀마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싶다면, 미얀마 문화를 통찰력 있게 이해한 후 다가가야 할 것이다. 〈양곤대 박사과정〉

기업에 초대받아 회장 및 임직원들의 보시를 받는 미얀마 스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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