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최주현

두 달 전 인연이 된 원만행 보살님은 췌장암 말기와 백내장·녹내장 말기증세로 시력까지 잃었을 뿐만 아니라, 현재는 의식마저 있다 없다를 반복하는 위급한 상황이다. 두 달의 짧은 시간동안 보살님을 통해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처음 보살님을 만났을 때 그의 인자한 외모와 내면에서 풍겨져 나오는 진실된 신심과 겸손한 자세에 감동을 받았다. 따님의 도움으로 휠체어를 타고 병원 입구에서 1미터 간격의 책상을 사이에 두고 인사를 나누었다. 첫 마디가 “스님 저는 절에서 30년 공양주를 살았습니다”였다. 부처님과 스님들을 시봉하며 살아온 자신의 삶을 뿌듯하고 행복하다 전하는 그의 말에 가슴이 뭉클하였다. 

보살님은 자신의 고단한 삶의 인연을 극복하고자하는 일념으로 절을 찾아 공양주를 자청하고 절 살림을 맡게 되었다.

일이 많아 몸은 힘들지만 부처님과 스님들께 공양 올리는 마음으로 살았다. 500등이 넘는 연꽃을 혼자서 다 만들어 법당에 달면 스님들께서 “보살님은 이렇게 연꽃을 잘 만들어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니 다음 생엔 반드시 연화장 세계에 태어날 것입니다”라고 덕담을 주시기도 하였다. 

공양 때는 스님들의 식성에 따라 국과 찌개를 끓였다. ‘영양분도 없는 것을 드시고 어떻게 수행을 하시겠는가’하는 생각이 들어 스님들마다의 식성과 좋아하는 요리를 눈여겨보고 기억하였다. 어떤 스님은 미역국을 좋아하시고 어떤 스님은 국보다는 찌개를 좋아하셨다. 밥도 흰밥과 찰밥을 나누어서 준비하였다. 이런 모습에 주변에서는 별스럽다고, 왜 고생을 자처하냐고 하였지만 스님들에게 공양 올린다는 일념으로 하였다. 조금 더 마음 쓰면 스님들이 훨씬 공양을 잘 드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스님들이 잘 드시는 모습만 봐도 감사했고 흐뭇했다. 

이렇듯 한 생을 공양 올리며 살았고 이제 부처님 곁으로 가는 일만 남았다는 보살님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며칠 전 보살님의 딸로부터 전화가 왔다. “스님 엄마가 많이 위독한데요. 눈은 안 보이지만 들을 수는 있어요. 이 전화를 바꿔 드릴테니까 통화 좀 해주세요.” 흐느끼는 딸의 음성이 들렸다. 

“원만행 보살님”하고 부르니 “스님, 왜 이렇게 부처님한테 가는 게 힘들까요. 저를 그만 데리고 가셨으면 좋겠는데”라고 천천히 읊조리듯 말하는 보살님의 소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들렸다. 무어라 말을 해야 할 지 말문이 막히고 가슴이 먹먹했다. 

다시 위급하다는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보살님의 모습은 마른 나뭇잎처럼 바짝 마르고 숨은 목에 차 당신의 시간이 얼마 없음을 표현하는 듯 보였다. “스님입니다. 목소리가 들리세요?”라고 묻자 고개를 가늘게 끄떡인다. 귀 가까이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니 함께 입을 움직이는 모습에 목이 메었다.

“대자대비하신 부처님! 30년을 부처님 도량에서 한 생 공양올린 불자 원만행 보살을 위해 기도합니다.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극락정토 아미타부처님의 나라에 왕생할 수 있도록 가피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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