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성, 정책과 정치의 또 다른 생명
유연성, 정책과 정치의 또 다른 생명
  • 윤성식/ 고려대 명예교수
  • 승인 2020.08.08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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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혁신의 바탕

벨리사리우스는 비잔틴 제국의 명장으로 백전백승의 전설적인 장군이다. 동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가 벨리사리우스를 견제하지 않았다면, 동로마제국은 서로마제국을 탈환했을 것이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자신의 부하인 벨리사리우스를 두려워하여 더 이상 서로마제국으로 진격하지 못하게 막았으니 참으로 못난 황제임이 틀림없다. 벨리사리우스 군대는 이민족이 절반인 칵테일(혼합) 군대였으며, 기병이 보병 역할까지 하고 보병이 기병역할까지 할 수 있는 다양성과 유연성이 특징이었다.

몽고군대의 강함 ‘다양성’
이웃문화 대한 열린 자세
우리 문화의 발전 이끌어


세계에서 가장 큰 제국을 건설했던 몽고는 작은 나라였다. 동유럽까지 석권했던 몽고는 건강한 젊은 성인 남자의 거의 대부분이 군대에 참여했다고 한다. 몽고의 징기스칸 군대는 이슬람 국가를 차례로 궤멸하고 서쪽으로 서쪽으로 진격하면서 드디어 동유럽에 도달했다. 동유럽 국가들은 모두 공포에 휩싸였다. 유럽의 군대는 아예 몽고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몽고군이 오스트리아 근처까지 진격했는데 오스트리아 군대가 몽고군 척후병을 생포하고 깜짝 놀라게 된다. 투구를 벗겨보니 백인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몽고군은 다국적군이나 마찬가지였다. 인종을 불문하고 누구든지 유능하고 충성을 맹세하면 군대는 물론이고 관리로 활용했다. 백인의 눈은 파란색 등 다양했기에 백인은 색목인이라고 불렸다. 당시 몽고의 수도에는 수많은 색목인이 거주하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색목인이 몽고인 다음으로 권력을 누렸다는 기록이 있다.

오스트리아를 공격하기 전에 사전 염탐을 위해서는 몽고인보다는 백인이 더 적합했으리라. 놀란 오스트리아는 전쟁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수많은 몽고군이 홀연히 사라진다. 알고 보니 징기스칸이 사망하여 모든 군대가 몽고의 수도로 돌아갔던 것이다. 만약 징기스칸이 몇 년 만 더 살았어도 유럽은 완전히 몽고인의 손에 넘어갔을 것이다. 러시아는 지역에 따라 100년에서 300년 동안 몽고에 지배당한다.

다양성은 필연적으로 유연성과 나란히 갈 수밖에 없다. 다양하면 환경과 조건의 변화에 훨씬 더 잘 적응할 수 있다. 몽고는 종교에 있어서도 다양성을 허용했다. 러시아를 지배할 때 러시아 정교에게 자유를 주었기에 러시아 정교는 몽고 지배 하에서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다.

불교의 연기법은 모든 사물과 현상이 수많은 요인과 수많은 조건에 의해 임시적으로 존재할 뿐 공(空)하다고 설한다. 수많은 요인과 수많은 조건이 끊임없이 변화할 때 다양하지 않고 유연하지 않으면 생존이 어려워진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제행무상’은 다양성과 유연성을 요구하는 불교교리라고 할 수 있다. 부처님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농사만 짓지 말고 상업, 목축은 물론이고 집을 지어 세를 놓아 임대료를 받으며,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으라고 권장하셨다. 그야말로 다양한 방법으로 돈을 벌라고 하셨으니 이는 불교교리의 성격상 당연할 수밖에 없다.

수많은 요인과 수많은 조건이 연기 화합하는 세상에서 획일성을 고집하면 변화에 뒤떨어지고 도태된다. 획일성을 떠나 다양성을 추구하는 불교의 정신은 부처님의 승가운영에도 드러난다. 부처님은 부자와 가난한 자에게 획일적인 잣대를 요구하지 않으셨다. 부자에게는 부자에 맞는 기준을, 가난한 자에겐 가난한 자에게 적합한 기준을 제시하셨다. 출가자에게는 돈을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지만 재가자에겐 밤낮으로 열심히 돈을 벌라고 하셨다. 비구와 달리 비구니는 귀하고 좋은 옷을 입어도 된다고 허용하셨으니 비구와 비구니에게도 획일적인 기준을 적용하지 않으신 것이다.

몽고는 여러 민족을 통해서 가장 최신의 기술을 받아들이는 개방적인 자세를 취한다. 몽고의 무기와 전쟁 기술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기술이 될 수밖에 없었다. 끊임없이 다른 민족의 기술을 받아들여서 개량하는 몽고의 응용력이 바로 세계 제패의 비법이었다. 연기의 세계는 닫힌 세계가 아니라 열린 세계다. 원인이 결과가 되고 결과가 또 원인이 되는 연기의 세계는 경계선도 없고 실체도 없는 상호작용과 상호의존을 뛰어넘는 파악 불가능한 세계다. 모든 사물과 현상이 다른 사물과 현상에 의해 임시로 존재하는 연기의 세계는 열린 사고, 개방된 사고가 아니면 결코 이해할 수 없다.

몽고는 불교국가로 발전했지만 가톨릭, 러시아정교, 이슬람 등 다양한 종교에 열린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자이나교의 유력자가 부처님을 찾아와 불교로 개종하겠다고 하자 부처님이 개종하지 말고 자이나교에 남으라고 말씀하신 사례가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자세는 열린 자세, 공존하는 자세를 의미한다. 부처님은 포교를 강조하셨고 포교의 극대화를 위해 여럿이 가지 말고 각자 흩어져서 가라고 하실 정도로 포교를 중시하셨다. 그러나 오직 불교만이 이 세상의 유일한 종교가 되어야 한다는 관점은 부처님의 뜻에 어긋난다.

몽고는 세계화를 실현한 국가였다. 몽고의 혁신적인 교통수단은 국경과 민족을 뛰어 넘기도 했지만 몽고의 포용적인 정책은 이민족을 대거 몽고에 편입시켰다. 수많은 민족을 하나로 엮기 위해서는 다양성과 유연성은 물론이고 개방성까지 필요하다. 오늘날은 국경을 뛰어넘고 우주를 개척하는 세계화 우주화의 시대이다. 개방적이지 않고 폐쇄적인 닫힌 사고로는 번성할 수도 없고 생존할 수도 없다.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폐렴에 전세계가 떨고 있는 시대이다.

모든 것이 변하는 ‘제행무상’의 세계에서 기존의 제도와 관행을 고정된 것으로 착각하고 집착하는 것은 불교교리에 어긋나는 행위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조건과 환경에 맞추어 정치와 정책도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 모든 것이 변화하는데 내가 변화하지 않고 있다면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 과거에는 변화의 이유가 있어야만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오늘날은 변화의 이유가 없어도 무조건 수시로 변해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로 변화가 중요한 세상이 되었다.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가 제대로 변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학생이라면 방학이 끝나고 개학하여 다시 등교할 때 ‘나는 방학 동안 무엇이 변했는가?’라고 스스로 되물어야 한다. 회사의 CEO는 수시로 ‘우리는 잘 변화하고 있는가?’를 되물어야 한다. 정치인은 ‘우리나라는 지금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가?’라고 반문해야 한다. 공무원은 ‘우리의 정책은 지금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변화하고 있는가?’를 수시로 점검해야 한다.

고객에게 잘못하면 퇴출당하는 기업과는 달리 공공부문은 퇴출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1등 기업이 순식간에 2등, 3등으로 추락하고 시장에서 도태된다. 1등 기업도 항상 가시방석에 앉은거나 다름없으니 안주하지 말고 개혁해야 한다. 공공부문은 무풍지대이기 때문에 국민의 요구에 의해 정치인이 개혁을 주도해야 한다. 세계적인 석학인 랭커스터 전 버클리대 교수는 불교를 대표하는 말로 “모든 것은 변한다”를 꼽았다. 모든 것이 변하는데 시장과 정부가 변하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도 문제다. 따라서 정책과 정치도 부단히 변화해야 한다. 기존 제도와 관습을 고정된 것으로 생각하고 집착하는 것은 잘못이며, 불변의 진리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개혁하여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부처님은 계율을 수시로 수정하였다. 새로운 요인이나 조건으로 인하여 출가자와 재가자가 기존 계율의 적용에 있어 모순이나 문제에 직면하면 부처님은 그에 맞게 기존 계율을 수정하거나 새로운 계율을 제정하셨다. 새로운 요인과 조건의 발생으로 기존의 계율이 부적절하면 부처님은 혁신으로 변화에 대응하셨다. 모든 것이 변화하는데 계율이 그대로 있다면 문제다. 이처럼 부처님은 끊임없는 변화의 모범을 보이셨다. 불교는 2,500년 동안 여러 장소에서 시대에 맞게 적응해왔다. 한국에서는 전통신앙과 결합하고 중국에서는 도교적 요소와 결합하는 등 지역마다 토속종교와 결합하여 다양하고 유연하게 변화해왔다.

불교는 출범부터 혁신적인 종교였다. 제도권 종교였던 브라만교를 비판하면서 등장한 신흥 종교사상가를 당시에는 사문이라고 불렀는데 사문 고타마는 가장 성공한 사문이었다. 불교는 인도의 4계급을 부정하고 행위와 능력을 중시한다. 인도는 그때 농업 사회에 신흥 상공업이 등장하고 도시가 형성되는 변화의 시기였다. 상업과 수공업에 종사하여 돈을 많이 번 사람은 주로 4계급 중 세 번째 계급인 평민 계급 수드라에 속했다. 경전에는 이들을 장자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들은 계급을 부인하고 행위와 능력을 중시하는 불교에 열광했다. 불교는 여성의 출가를 허용했다. 2,500년전의 일이니 얼마나 개혁적이고 심지어 혁명적인가? 오늘날 카톨릭, 개신교, 이슬람과 비교해보아도 부처님 당시의 불교는 참신하고도 파격적이다.

불교의 지혜는 세간을 비추는 지혜이어야 한다. 불교는 다양성, 유연성, 개방성, 혁신성의 종교이다. 다양성, 유연성, 개방성, 혁신성은 세간을 헤쳐 나가며 살아야 하는 중생에게 불교가 주는 선물이다. 변화의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선 다양성, 유연성, 개방성, 혁신성이 필요하다. 정치와 정책의 영역에서도 성공의 핵심 단어는 적응이다. 우리나라는 힘의 논리에 좌우되는 국제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적응해야 한다. 4차 산업 혁명의 시대에 우리를 덮치는 파도를 타고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해야 한다. 한반도는 남과 북이 충돌하고 있는 대치의 땅이며 대한민국은 동과 서가 대립하는 갈등국가이다. 불교가 제시하는 정책과 정치는 우리 국민과 대한민국과 인류의 생존을 위한 적응이어야 한다. 생존을 위한 적응은 다양성, 유연성, 개방성, 혁신성을 가진 정책과 정치가 구현될 수 있을 때 가능하다고 불교는 말하고 있다. 과연 우리는 얼마나 다양하고 유연하며 개방적이고 혁신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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