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닦음의 길 16

오늘날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간화선(看話禪)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이는 800년을 이어온 한국불교의 전통이자 근간이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위빠사나, 아나파나사티 등 다양한 수행법의 소개로 그 영향력이 예전에 비해 약화된 것은 사실이다. 간화선의 위기라는 말 또한 많이 회자되고 있다. 간화선은 오늘의 한국불교를 있게 한 경허, 만공, 효봉, 구산 등의 선사들을 깨침의 세계로 인도한 수행법이다. 간화선의 전통이 끊겨서는 안 되는 이유다.

화두를 참구(參究)하는 간화선은 송나라 때 대혜종고(大慧宗苑, 1089~1163)가 개발한 수행법으로 전통적인 붓다의 수행체계와는 성격이나 내용이 많이 다르다. 대혜의 행적을 담은 <대혜어록(大慧語錄)>은 흔히 <서장(書狀)>이라 불리는데, 지금까지 승가대학이나 강원에서 주요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간화선을 국내에 처음 소개한 인물은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知訥, 1158~1210)이다. 지눌의 뒤를 이은 진각혜심((眞覺慧諶, 1178~1234)은 이를 더욱 체계화했으며, 지금까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수행법으로 자리하고 있다.

간화(看話)란 글자 그대로 화두를 보는 것이다. 화두를 공안(公案, formal document)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그 내용이 틀림없음을 보증하는 정부의 문서를 가리킨다. 그만큼 공안이 깨침을 이루는 데 공신력을 가진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간화, 즉 말머리(話頭)를 본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이는 선사가 하는 말(話)의 핵심(頭)을 곧바로 알아차린다는 의미다. 다시 말하면 말에 담긴 맥락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 뜻을 즉각적으로 깨친다는 것이다. 흔히 대화를 할 때 ‘말꼬리를 잡는다.’고 하는데, 이는 핵심에서 벗어나 말 자체에 집착하여 따지는 것을 말한다. 화두는 말꼬리를 잡고 빙빙 도는 것이 아니라 말머리를 통해 핵심으로 곧바로 들어가는 수행이다.

간화선은 깨침에 이르는 속도가 빠르다고 한다. 자세한 설명이 아니라 말 한 마디(言下)에 깨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화두선을 경절문(徑截門), 즉 지름길이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는 마치 선생님의 설명을 자세히 듣고 난 다음에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한 마디만 듣고도 곧바로 전체적인 맥락과 의미를 알아채는 것과 같다. 보통 사람들은 쉽게 흉내 내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간화선은 뛰어난 근기의 수행자에게 적합한 수행체계라고 평가한다.

대표적인 선사들의 공안집으로는 원오극근(成悟克勤, 1063~1135)의 <벽암록(碧巖錄)>이나 무문혜개(無門慧開, 1183~1260)의 <무문관(無門關> 등이 있다. 오늘날까지 1700 공안이 전해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무자(無字)’, ‘이 뭐꼬?(是什?)’ 등의 화두가 많이 유행하였다. 특히 무자 화두를 통해 견성에 이른 선사들이 많다. 이 화두는 당나라 말기의 유명한 조주종심(趙州從?, 778~897) 선사에게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라고 물으니 ‘없다(無)’라고 답한 데서 유래한다. 스승으로부터 무자 화두를 받은 수행자는 조주 선사가 왜 무(無)라고 했는지 ‘무, 무, 무’ 하면서 끊임없이 참구하다 보면, 어느 순간 말머리를 타파하고 견성(見性)에 이른다는 것이다. 화두는 전통적으로 배고픈 고양이가 쥐를 쳐다보고 닭이 알을 품듯이 수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만큼 간절하지 않으면 화두를 타파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선가(禪家)에서는 동정일여(動靜一如), 몽중일여(夢中一如), 숙면일여(熟眠一如)의 세 단계를 거쳐야 비로소 견성에 이른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움직이거나 고요히 앉아있을 때뿐만 아니라 꿈을 꿀 때와 숙면할 때도 화두가 성성하게 살아있어야 자신의 성품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이 곧 부처(心卽佛)’라는 굳건한 믿음과 용맹정진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아무리 건강에 좋은 약이라도 내 몸에 맞지 않으면 별다른 소용이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간화선이 훌륭한 수행체계라 하더라도 자신에게 맞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양한 수행법들의 소개로 간화선이 위기를 맞고 있는 오늘날 그 전통을 살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물음을 말머리로 삼아 참구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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