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고요 찾은 마음이 적멸보궁
본래 고요 찾은 마음이 적멸보궁
  • 최훈동/ 한별정신건강병원장
  • 승인 2020.07.21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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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신화와 명상

14-1 올림푸스에 산다는 열두 신보다 훨씬 많은 신들이 사는 나라. 매우 서민적인 신들이 사는 가장 인간적인 나라 헬라스. 서양 문명을 탄생시키고 서구 민주주의를 최초로 정립한 그리스의 원래 이름은 헬라스입니다. 신들의 제왕인 제우스보다 희랍인들에게 더 존경 받은 신 아폴로를 모신 최초의 신전 아폴론은 아고라(시장)의 중심에 위치합니다. 아고라에는 대중 연설의 연단이 있는데 그곳에서 진리를 설파하는 철인들에 의해 시민의식이 고양되었습니다. 제우스에 대한 신앙보다 진리를 상징하는 아폴로를 더 중하게 여긴 희랍인들은 인도인들이 그랬듯이 인간 심성의 여러 측면을 신들로 표현합니다. 에게해의 여러 섬에서 탄생한 신들의 이야기 속에는 수많은 인간 심성들이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지요.

2500년 전에 이미 의족을 개발 사용했고 두개골에는 뇌수술까지 시행한 흔적이 있을 정도로 철학뿐 아니라 수학, 의학을 발전시킨 헬라스의 이성은 신들과 교감을 통해 찬란한 헬레니즘 문화를 꽃피워 서양의 정신적 모태를 형성하였지요.

자신을 알라는 동서 격언
자신 돌아보는 명상 닮아
영적순례로 마음평화 체득

14-2 희랍 철학자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인물을 꼽으라 하면 디오게네스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철학을 배워 스승 사후에도 훌륭한 철인들을 지원하는데 하루는 그를 찾습니다. 디오게네스는 아고라 광장 한 구석의 항아리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멀리 마케도니아에서 찾아 온 대왕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자신의 사상을 펼칠 기회, 공간 등을 원함직했으나 철인의 대답은 의외였지요. “해를 가리지 말고 비켜주시오.”

자신이 태양이고 태양의 아들이라 여기는 황제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디오게네스이기에 스승이라 할 수 있지요.

달마대사에게 당시 도교의 풍토에서 불교를 신봉하고 사찰과 불상 조성 지원을 아끼지 않은 중국의 황제(양무제)가 질문합니다. “나의 공덕이 얼마나 됩니까?”라고 묻자 달마대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무(無)!”

디오게네스는 알렉산더에게 무엇을 가르쳐주었으며 달마대사는 양무제에게 무엇을 일깨워주었을까요?

14-3 세계문화유산 1호인 파르테논신전도 제우스가 아닌 지혜의 여신 아테네를 모시는데 아테네의 언덕에 서 있습니다. 파르테논이 1호 자리를 차지하는 진정한 이유는 다른 거대한 석조 건축물들이 인간의 피와 땀을 강요받아 지어진 것인데 반해 아테네 시민들의 자발적 노동의 제공으로 이루어진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건축물이라는 점입니다. 그것은 30년 간 매년 실시하는 도편 투표에서 90%이상의 절대적 신임을 받은 페리클레스의 덕의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보답이라 합니다. 헬라스인들이 지혜를 소중히 여기는 것은 교육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철학의 아버지 소크라테스는 기존의 소피스트들이 지식을 팔아 축재한 것과 달리 대가를 전혀 받지 않았습니다. 그 영향으로 그리스는 대학까지 무상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데 철저하게 대화와 토론으로 교육시키는 게 특징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소크라테스의 금언은 ‘너 자신을 알라’이지요.

그런데 잘 알려지지 않은 진정한 금언이 있습니다.

“나는 한가지 밖에 모른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시민들의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하던 그가 뭘 모른다 하였을까요?

공자는 같은 시대에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알지 못함을 아는 것이 진정으로 아는 것이니라.”

현자들의 생각이 동서를 떠나 이렇게 같을 수 있다니 경이롭기만 합니다. 그래서 진리란 누구의 소유물이 아닌 인간 내면의 보편성에 기초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군요.

그러면 알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요?(숙고해보시기 바랍니다)

14-4 기독교가 콘스탄틴 대제로부터 공인받기까지 300여 년 동안 받은 박해와 수난의 자취가 터키 카이막길 지하 동굴 도시에 남아 있습니다. 국교로 공인된 이후 삶이 안락해지자 오히려 신앙이 퇴락하는 것을 보고, 사막에서 수도자들이 금욕적 수행을 하게 되는데 카파도키아의 사암 동굴에 숨겨진 교회들에는 이들 수도자들의 담백하고 절제적인 공동체 생활의 자취가 남아 있습니다. 신앙의 이름으로 갖은 욕심을 채우려들 때에 외화내빈이 되어 기성 종교는 형해가 되고 맙니다. 화려하고 웅장하기 짝이 없는 성소피아 성당(지금은 모스크)과 사암 동굴의 알려지지 않은 교회 같지 않은 교회의 대비처럼, 우리의 밝은 본성을 흐리게 하여 바른 지혜를 어둡게 하고 맙니다.

고난은 영적 본성을 맑게 하고 안락은 속물 근성을 키우는 것은 동서 구별 없이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고요히 앉아 마음을 맑히우고 내면을 응시하며 하루 저녁 정도 절식을 하고 한 달에 1박 2일 집중 명상을 해보는 것은 외면적 생활 일변도의 현대에서 할 수 있는 최소의 노력일 것입니다. 마음속의 갖가지 욕망들을 관조하여 준동치 않게 하는 것은 평화로운 세상의 필요충분조건이기 때문입니다.

14-5 마음이 극도로 괴롭거나 불안할 때 종교를 찾지만 더 절박하면 점쟁이나 무당을 찾습니다. 불확실함에 대해 과민 반응 때문이지요. 드물게 정신적 순례의 여행을 떠나거나 심리치료자를 찾습니다. 대부분은 외적 구원에 매달리거나 이도저도 아닌 절망의 심연으로 가라앉기도 합니다.

내담자들은 심리치료자가 주술사나 점쟁이처럼 뭔가 시원한 해답을 줄 것이라는 환상을 품습니다. 상담자 또한 불안과 우울에 싸여있는 이들을 보고 뭔가 해주려 하고 보답하려 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고통의 의미를 깨달을 기회를 잃게 만듭니다. 넘어진 아이가 스스로 일어날 기회를 박탈하는 것과 같지요. 이미 그에게 갖추어진 자각과 치유의 능력을 간과한 것입니다. 마치 전능한 자가 피조물에게 은사하듯이 심리치료도 치료자의 능력으로 환자를 고치려든다면 치료는 암초에 부딪치거나 부작용에 표류하기 마련입니다.

14-6 고통의 상황은 정신적 영적 성숙의 기회가 왔음을 뜻합니다. 그동안 나름대로 행복의 길로 열심히 뛰었건만 무엇이 결여되어 이렇게 되었는지 찬찬히 돌아볼 기회인 것이지요. 심리치료자는 고통의 무의식적 메시지를 잘 해석하여 전달할 수 있어야 하지만 그 시기와 방법이 문제입니다. 서둘러 해석을 하다가는 주입식 교육이 되어 통찰 대신 지식만 늘게 되기 때문입니다.

환자는 스스로 가지고 있는 능력을 보려하지 않고 고통을 피하려 들거나 현실(고통)에 안주하여 순응하려 합니다. 이러한 환자를 새로운 상황-자립과 성숙-으로 안내하는 길은 그를 존중하고 경청하고 그의 모든 표현을 공감적으로 수용하는 것이지요. 서두르지 않고 경이로운 눈길로 주의깊게 지켜보되 환자 스스로 자신을 잘 보고 해결책도 스스로 찾도록 기다려 주는 치료자의 태도를 통해 환자는 부모나 세상에 투사했던 불만과 원망을 되돌리기 시작합니다. 부모도 신도 별로 해줄 게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면서 스스로 채우며 나아가게 되지요. 디오게네스나 달마처럼 직접적 답을 주지 않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큰 울림이 현대에도 필요합니다. 알렉산더나 중국 황제들처럼 온갖 부귀와 권력으로도 부족하여 이웃 나라를 정벌하여 대제국을 만드는 노력이 얼마나 하잘 것 없는지요?

서산 대사는 그런 영웅호걸들을 개미와 같고 그들이 살고 있는 으리으리한 궁성을 개미집과 같다 하였지요. 마음을 돌아보고 살펴 감정과 생각을 가다듬고 잘 가꾸고 아름답고 향기롭게 피어내는 일이 가장 수승한 일이군요.

14-7 연전에 미국의 어느 목사가 이슬람의 성경인 쿠란을 소각하는 쿠란 화형식을 단행했습니다. 그에게는 쿠란이 악마의 경전입니다. 바이블은 쿠란보다 훨씬 전에 통일되었기 때문에 그는 정의의 심판을 하였다고 자신합니다. 무슬림들의 규탄 시위는 유혈사태로 번졌습니다. 종교적 테러가 그치지 않습니다. 수용 대신 배타가 사랑 대신 증오가 성스러운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난무하는군요. 한쪽의 행복이나 평화가 다른 쪽의 불행과 비탄이라면 참된 행복이요 평화라 할 수 있을까요? 같은 하느님을 신봉하는 형제들이 극단의 대립을 거듭하고 예수 사랑이냐 무하마드 사랑이냐로 싸우는 모습은 참 종교인다워 보이지 않습니다.

14-8 붓다는 무엇을 믿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의 마음씀과 행위(신앙을 포함한)가 선하고 건전한 면을 늘리는지 악하고 불건전한 면을 늘리는지를 살펴보라 하십니다. 예로부터 내려온 불문율이나 경전이라도, 아무리 훌륭한 스승이 말한 것이라도, 심지어 신의 계시라 할지라도, 타인에게 해가 되고 상처가 되며 자신에게만 이롭고 행복한 것이라면 과연 선하고 건전한 것인지를 자문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욕망의 도적이 마음 들판을 휘젓고 돌아다니도록 방관할 것인지 지켜보라는 것이지요. 믿음의 바탕에 지혜의 빛이 없다면 죽을 때까지 위장된 행복과 평화임을 자각하지 못한 채 자신의 믿음이 최선이며 최고라고 자부할 것입니다. 욕망에 대한 성찰이 없는 기도나 명상은 진정한 구원이나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함을 쿠란 화형식은 일깨워줍니다.

14-9 명상은 신령스런 그 무엇을 찾는 게 아닙니다. 영적이라 함은 신비한 체험이 아닌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고 깨닫는 것을 말합니다. 내면의 욕망과 분노, 무지를 성찰하고 깨달으면 영적 각성이 일어납니다. 보다 밝고 선한 마음 상태로 거듭 태어남이지요. 내면의 순례(명상)를 시작하는 순간 여러분은 모두 영적인 순례자입니다. 이 길은 밖으로 치달리는 마음을 쉬고 자신을 돌아보고 알아가는 길입니다. 마음이 본래 고요를 되찾으면 내면은 자비로 충만한 곳이자 고귀한 깨달음의 빛이 있는 적멸보궁(성전)이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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