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철웅 스님

 

 

〈서신 1〉

대원성께

옥서(玉書)와 사진 잘 받았습니다. 사진 솜씨와 재조가 너무 많아서 걱정입니다. 남녀 간에 못나고 평범해야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테이프가 이상이 있는 것은 전부 가져오시면 꾸짖고 나무라고 해서 작품을 더 잘 만들도록 하고 바꾸어 드리겠습니다. 충고는 귀에 담았습니다.

회원들께 안부 사뢰시고 건강하시길 비나이다. 이곳은 유월의 연하(煙霞) 속에 매미소리가 한창입니다.

〈서신 2〉

대원성께

옥서(玉書) 잘 수견(受見)했습니다. 귀한 분들이 오시니 산문이 활짝 열려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성전암 주.

철웅 스님이 대구 파계사 성전암에 계실 때였다. 연꽃모임 야외법회를 가게 되었다. 당시 스님은 여러 가지로 불교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쉬운 말로 인기가 최고였다. 스님을 뵙기 위해 전국에서 불자들이 몰려들었다.

당시 스님이 대중으로부터 많은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스님의 법문 때문이었다. 스님의 법문은 책 속에서 온 법문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온 법문이었다. 눈물이 날 정도로 웃기기도 했던 스님 특유의 법문은 딱딱하지 않고 재미있어서 귀에 쏙쏙 들어왔다. 단순히 재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법문들이었다. 빡빡한 세상살이에 찌든 마음이 말끔히 청소되는 스님의 법문은 유쾌, 상쾌, 통쾌해서 법문 내내 실컷 웃으며 듣는 법문이었다. 불교에 입문한 지 얼마 안 되는 초심자 대중도 스님의 법문에 금방 빠져들었다. 하지만 결코 법문의 결론은 가볍지 않았다. 선지를 품은 선어들이 등장할 때면 법문은 더 없이 깊고 깊었다. 금방이라도 한소식이 잡힐 것처럼 마음이 깊어지곤 했다. 그야말로 선사를 만나는 시간이었다.

기골이 장대했던 스님은 겉으로 보기에 엄격해 보였지만 안으로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사셨다. 나는 늘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며 가는 곳마다 만나는 스님마다 사진 찍기를 좋아했다. 법회가 끝난 후 스님을 모시고 회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고, 스님의 독사진도 찍었는데, 스님도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셔서 싫은 내색 없이 응해주셨다. 덕분에 여러 장의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스님께 편지를 올릴 때면 스님의 사진들을 함께 보내드리곤 했다. 스님은 그때마다 늘 따뜻한 답장을 주셨다. 재주가 많다며 덕담에 유묵까지 보내주시기도 했었다. 직설화법의 법문과 카리스마에 스님을 어렵게 생각하는 대중도 있었지만 안으로 따뜻한 정을 품고 산 스님이었다. 또한 농담처럼 던지는 가벼운 말에도 선지가 있었고 자신의 화두가 확실했던 선사였다. 많이 뵙지는 못했지만 뵐 때마다 가슴에 선명하게 남는 선지식이었다.

연꽃모임이 초창기였던 당시에는 우리처럼 젊은 불자들이 많지 않을 때여서 연꽃모임이 스님들로부터 많은 관심과 격려를 받으며 신행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큰스님들과의 인연 덕으로 연꽃모임도 잘 키우고 행복한 신행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고, 그 힘으로 또 다른 모임으로 발전시킬 수도 있었다. 철웅 스님을 비롯한 많은 스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가져본다. 지금도 사진 속의 스님을 뵐 때면 그 날의 기억들이 따뜻하게 일어난다.

겉보기에 엄격했지만 안으로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철웅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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