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춘]차 즐기며 휴식한 공간… 왕 위해 임시 설치
[박동춘]차 즐기며 휴식한 공간… 왕 위해 임시 설치
  • 박동춘 (사)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
  • 승인 2020.06.26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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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다점(茶店)과 다정(茶亭)

왕을 위해 화려한 다정 설치 하기도
<고려사>에 임시설치 기록도 남아
향림정, 사신들이 차 즐기던 공간
차를 팔던 ‘다점’, 휴식처로도 활용

〈선화봉사고려도경〉에 나타난 향림정에 관한 기록. 고려시대 설치전 다정의 면모를 알 수 있다.
〈선화봉사고려도경〉에 나타난 향림정에 관한 기록. 고려시대 다정의 면모를 알 수 있다.

고려시대 차 문화가 발전될 수 있었던 것은 왕실 귀족과 문벌 귀족, 관료 문인, 승려들의 차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려에서는 차의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송(宋)에서 차를 수입해 거래한 흔적이 보이는데, 이는 서긍(徐兢)의 〈선화봉사고려도경〉에서 확인된다.

(고려에서는)중국 납차와 하사품인 용봉단차를 귀하게 여긴다. (송 황제)하사품 이외에도 상인들이 가져다 판다. 그러므로 근래에는 차 마시기를 좋아하여 더욱더 찻그릇을 만든다(惟貴中國臘茶幷龍鳳賜團 自錫賚之外 商賈亦通販 故 邇來頗喜飮茶 益治茶具)

앞글에서 서긍이 말한 납차(臘茶, 고급 단차)와 송 황제가 하사한 용봉단차는 황실용 고급차다. 정위(丁謂)가 대용봉단(大龍鳳團)을 만든 이후 채양(蔡襄)에 의해 더욱 정밀해진 소용봉단(小龍鳳團)을 생산, 황실에 공납했던 차인데, 이를 고려 왕실에 하사했다. 서긍이 고려를 방문했던 12세기에는 송 휘종의 기호에 따라 백차를 생산 황실에 받쳤다. 이 무렵  고려에서는 11세기부터 뇌원차(腦原茶)가 생산되어 국가에 공이 있는 신하에게 하사되었다. 그러므로 서긍이 고려에 사신으로 왔을 당시에 고려는 고려인의 기호와 풍토에 알맞은 차를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을 완전하게 갖춘 시기였다. 한편 〈고려사〉에는 사원에서는 왕을 위한 다정(茶亭)을 설치하여 사치스러운 다회(茶會)가 열렸던 사실이 의종 13년(1159) 기사에서 확인되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3월 을해(乙亥)일 왕이 현화사에 갔다. 이날 동쪽과 서쪽 양원의 스님들이 각각 다정을 차려 놓고 왕을 청했는데, 더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하려고 서로 다투었다.(三月乙亥 幸玄化寺 東西兩院僧 各設茶亭迎駕 競尙華侈)

윗글은 의종 13년(1159)의 기록이다. 이 해 3월 의종을 위해 현화사 승려들이 다정을 설치하고 다회를 열면서 왕을 위한 다정을 임시로 설치한 것이다. 당시 왕이 방문했던 현화사는 법상종 사찰이다. 원래 법상종은 석충(釋忠)이 진표 계통의 법상종을 계승하여 고려에 소개하였는데, 고려 초기 법상종은 화엄종보다 활동이 미미했다. 그러나 목종(穆宗, 재위기간 998~1009)이 자신의 원찰인 숭교사(崇敎寺)를 창건한 후, 법상종의 교세가 도드라졌으며, 현종(재위기간 1009~1031)이 즉위한 후 법상종의 교세는 더욱 확대되어 화엄종과 양립하는 형세를 이룬다.

특히 문벌귀족 이자연의 아들 소현(韶顯)이 지공국사 해린(海麟 984~1067)에게 출가하였고, 문종의 다섯째 아들이 소현에게 출가함에 따라 현화사를 중심으로 법상종 승려들의 활동이 더욱더 확대된다. 따라서 의종(재위기간 1146~1170)을 위해 현화사 동서 양원의 승려들이 다정을 설치한 후 화려하고 사치한 다회를 준비한 것은 현화사가 교학 중심의 귀족적 성향을 보인 종파였기 때문이다. 이보다 앞선 시기의 다정의 규모를 드러낸 자료로는 서긍의 〈선화봉사고려도경〉 〈관사(館舍), 향림정(香林亭)〉 이 있다.
향림정은 차를 마시며 여가를 즐긴 공간이지만 현화사의 다정과는 그 결이 다르다. 그렇지만 향림정은 고려 시대 관사에 설치된 다정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향림정은 조서전 북쪽에 있다. 낙빈정 뒷산으로 가는 길로 올라가면 관사에서 100보 가량 떨어진 산 중턱에 세워져 있다(…)8면에 난간이 있어 기대어 앉을 수 있다. 누운 소나무와 괴석에 이끼와 칡덩굴이 어우러져 있는데, 바람이 불면 서늘하여 더위를 느낄 수 없다. 정사와 부사는 여유가 있는 날, 언제나 (향림정에서) 상절의 관속들과 차를 마시고 바둑을 두며 종일 담소를 나눈다. 이는 마음과 눈을 유쾌하게 하고 무더위를 물리치는 방편이었다.(香林亭在詔書殿之北 自樂賓亭後 有路登山 去館可百步當半山之背而之...中略...八面施欄楯可以據坐 偃松怪石女蘿葛蔓相互映帶 風至蕭然不覺有暑氣 使副暇日 每與上節官屬烹茶톳碁於其上 笑談終日 所以快心目而却炎蒸也)

강릉 선교장 활래정은 대표적인 다정이다
강릉 선교장 활래정은 대표적인 다정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서긍이 고려에 사신으로 온 해는 선화 5년(1123)이다. 그가 언급한 향림정은 소나무와 괴석을 잘 안배한 다정(茶亭)으로, 산 중턱에 있었기 때문에 풍광이 아름답고 서늘하여 더위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괘척한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사신들이 차를 즐기고 바둑을 두며 담소를 나누며 심신을 휴식하던 장소였다. 그러므로 고려 시대 다정은 풍광을 즐기며 차를 즐기던 복합 공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고려 시대의 다점(茶店)은 차를 팔던 장소요, 휴식의 공간이었다는 사실은 〈고려사절요〉나 임춘(林椿·1148~1186)의 〈이유의가 다점에서 낮잠을 자다(李郎中茶店晝睡)〉에서 확인된다. 〈고려사절요〉 제2권 〈목종선양대왕〉 편 기사에 드러난 다점은 다음과 같다.

가을 7월에 교하기를, “요사이 시중 한언공(韓彦恭)의 상소를 보니, 그 소에 ‘지금 선조(先朝)를 이어 돈을 사용하고 추포(?布)의 사용을 금지해 시속을 놀라게 하여, 나라의 이익은 되지 못하고 한갓 백성들의 원망만 일으키게 됩니다.’라고 하였다. 다점(茶店)ㆍ주점(酒店) 등 여러 상점에서 물건을 매매할 때는 그전대로 돈을 사용하고, 그 외에 백성들이 사사로이 물건을 매매할 때는 그 지방의 편의에 따라 하도록 맡겨 두도록 한다.” 하였다.(秋七月 敎曰近覽侍中韓룴恭上疏 言今繼先朝而使錢 禁用?布 以駭俗 未遂邦家之利益 徒興民庶之怨嗟 其茶酒諸店 交易依前使錢外 百姓等 私相交易 任用土宜)

윗글은 목공(穆宗·재위기간 998~1009)때인 임인 5년(1002) 가을 7월에 내린 교서의 일부 내용이다. 물류를 유통할 때 돈을 사용하고 추포(?布, 거친 베) 사용을 중지시켜 달라는 요청에 따른 조치이다. 그런데 “다점(茶店)ㆍ주점(酒店) 등 여러 상점에서 물건을 매매할 때는 그전대로 돈을 사용” 하라는 조서 내용으로 보아 다점(茶店)은 차를 매매하는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다점이란 차를 파는 상가이기도 하지만 때론 차를 마시며 휴식하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임춘의 〈이유의가 다점에서 낮잠을 자다(李郎中茶店晝睡)〉는 다점이 휴식의 공간임을 극명하게 드러냈으니 그 내용은 살펴보자.
 
나른한 몸 평상에 누워 문득 형체를 잊었더니(頹然臥榻便忘形) 한낮 베개 위로 바람 불자 절로 잠이 깨누나(午枕風來睡自醒) 꿈속에서도 이 몸은 머물 곳이 없었어라(夢裏此身無處着) 하늘과 땅이란 온통 하나의 쉬어가는 역이런가(乾坤都是一長亭)
빈 다락에서 꿈을 깨보니 막 해가 저무는데(虛樓夢罷正高尺) 흐릿한 눈으로 먼 산봉우리를 바라보누나(兩眼空얉看遠峯) 누가 알리, 은거한 사람의 한가한 멋을(誰識幽人閑氣味) 한바탕 봄잠이 천종(千鍾) 봉록과 맞먹으리니(一軒春睡敵千鍾)

윗글은 임춘의 〈서하집(西河集)〉에 수록된 〈이유의가 다점에서 낮잠을 자다(李郎中茶店晝睡)〉 2 수인데, 〈동문선(東文選)〉에는 〈다점에서 낮잠을 자다(茶店晝睡)〉라고 하였다. 아마 이유의는 임춘과 교유했던 인사로 낭중 벼슬을 지냈던 인물이라 짐작되는데, 그의 시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다점(茶店)은 낮잠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그가 “나른한 몸 평상에 누워 형체를 잊었다”고 했던 건 그런 연유에서다. 그러므로 다점은 세상의 모든 근심을 덜어낼 수 있는 공간으로, 은거한 사람의 한가한 멋을 만끽할 장소였던 셈이다. 당시 다점에서 술과 차를 함께 즐겼는지는 자세하지 않더라도 주점(酒店)이 별도로 언급된 사례를 보아 차와 술은 분리하여 팔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고려 시대 다점이나 다방도 다소 변질되었겠지만 이를 규명할 자료가 드물기 때문에 현재 발굴된 사료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다방은 약과 차를 함께 총괄했던 관청이었고 다점은 차를 사고파는 상가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문화공간이었다. 비록 후대의 기록이긴 해도 황호(1604~1656)의 〈동사록(東傭錄)〉에서는 다점의 형태가 변질된 사례도 확인되는데, 이는 그가 일본으로 사신을 갔을 때 보고 느낀 것을 기록한 사행일기에서다.

‘초경(初更)에 평방(平方)에 다다르니, 평방은 곧 하내(河內)의 소속인데, 관백이 왕래할 때 차 마시는 곳이었다...중략...  평방의 옛 이름은 다점(茶店)이다. 집집마다 강 언덕에 누각을 세웠으니, 이른바 청루대제(靑樓大堤)다. 창가(娼家)의 젊은 여자들이 두셋씩 떼를 지어 누각 위에 서서 부채로 사람을 불러 차 마시기를 청한다.(初更時到平方。平方卽河內所屬。而關白往來時茶屋也。中略...平方舊名茶店。家家起樓於江岸。所謂靑樓大堤也。娼家少婦。二三爲햠。立於樓上。以扇招呼。請入進茶)’

윗글은 17세기 일본의 다점을 언급한 것인데, 고려 시대 다점과는 다르게 유곽 형태로 변질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아마 일본도 차 문화 도입 초기에는 고려와 비슷하게 다점을 운영했겠지만 점차 그 형태가 변화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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