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석정 스님

 

 

寂滅無性不可取, 善住山房 石鼎 漏

                                                 李大圓性 佛子

석정 스님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18호 불화장으로서 한 시대 최고의 불모였다. 위의 글은 어느 날 우리 집에 오셨을 때 주신 글이다. 스님은 생전에 우리 집에서 가까운 곳에 사셨기 때문에 나는 스님을 자주 뵐 수 있었다. 특히 일타 스님, 지관 스님, 법정 스님께서 오실 때면 석정 스님이 계셨던 선주산방에서 함께 뵙는 일이 많았고, 종종 집으로 모셔 공양을 올리기도 했었다.

어느 해, 우리 집 마당에 표주박이 열렸는데 일타 스님과 석정 스님이 오셔서 작은 박에 글과 그림을 주시고 가셨다. 석정 스님은 위의 글을 주시면서 박에 달마를 그려 주셨고, 일타 스님은 ‘관일체법공(觀一切法空)’이라는 글을 박에 써주셨다.

스님과는 가깝게 산 이유로 따로 서신으로 주고받을 일은 없었다. 위의 글은 스님께서 말씀 대신 주신 글 중 하나다. 글은 몇 글자 되지 않지만 그 뜻과 의미는 그 어떤 글보다 깊고 넓다. 문장은 다름 아닌 <대방광불화엄경> ‘세주묘엄품’ 중에 있는 게송의 한 구절이다. 그날, 나는 스님께서 주신 글 한 줄로 많은 공부를 했다.

불신보변제대회(佛身普遍諸大會)
충만법계무궁진(充滿法界無窮盡)
적멸무성불가취(寂滅無性不可取)
위구세간이출현(爲救世間而出現)

“부처님의 몸은 대회에 두루 계시어, 법계에 충만해서 끝까지 다함이 없다. 적멸은 자성이 없어서 취할 수 없으나 세간을 구제하기 위하여 출현하신다”

‘세주묘엄품’의 게송은 화엄회상에 무수히 많은 보살들이 출현해 부처님을 찬탄하는 게송이다. 스님은 왜 많고 많은 부처님 글 중에서 위의 글을 주셨을까. 생각해보니 늘 부처님을 그리며 살았던 스님으로서 가장 당연한 글이었다. 그렇게 스님은 늘 부처님을 손으로 마음으로 그리며 살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을 나에게도 나누어 주신 것이다. 많은 게송의 문장 중에서 가장 아끼신 문장을 주신 것이라 생각했다. 부처님의 참모습을 글로 그려주신 것이다. 늘 부처님 그늘에서 살고 있지만 그날은 특히 부처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스님은 따뜻하고 인자했다. 말이 없는 모습에서도 따뜻함은 넘쳤고, 어쩌다 주시는 말씀에서는 인자함이 넘쳤다. 한 번도 화를 내시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말씀은 조용한 미소로 하실 때가 더 많았고 말씀을 내실 때는 정다운 마음으로 하셨다.

이른 나이에 출가하신 스님은 12살 때부터 부처님을 그리기 시작했다. 스님의 붓 끝에는 늘 부처님이 마르지 않았다. 스님과의 인연으로 인해 나는 과분한 그림들을 과분하게 받았다. 그렇게 받은 스님의 그림들을 대할 때마다 스님의 깊은 불심과 원력이 다시 가슴을 데운다. 감사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오랜 세월을 불모로 살다 가신 스님은 생전에 부처님 말고는 마음에 둔 것이 없었다. 원적에 드실 때에는 육신마저 미련 없이 회향했다. 스님은 생전의 의지대로 자신의 육신을 동국대 경주병원에 기증했다. 다시 스님의 글 속에서 스님을 만난다.

석정 스님(중요무형문화재 제118호 불화장·왼쪽)과 대원성 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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