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자불 몽둥이 하나 들고 그것만 가지고 살아라
오직 자불 몽둥이 하나 들고 그것만 가지고 살아라
  • 노덕현 기자
  • 승인 2020.06.03 13: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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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딧물에 속지 말고 자기의 콩씨에게만 집중하라

질문 : 선원에서 마음공부를 하다 보니 처음에는 환희심이 나고 체험도 되는 것 같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지금은 미지근해서 변화도 못 느끼고, 제가 공부가 돼 가고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뭔가 좀 빨리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답변 : 그 마음을 공부하는 데 너무 이렇게 서둘지 마세요. 바빠서 서두르면 사람이 좀 뭐라고 할까요. 좀 방황이 되죠. 그러니깐 방황하지 마시고 어떤 거든지, 우리가 똥을 누든지 잠을 자든지 뭐, 밥을 먹든지 누구하고 만나든지, 보든지 듣든지 하여간에 일거수일투족 다, 생각을 안 하든지 하든지, 그것도 다 주인공이 하는 거예요.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서
어떻게 마음을 쓰느냐에 따라서 그 마음에 입력이 되고
그게 현실로 나오는 것입니다.
마음공부를 좀 빨리할 수 없을까요

그러니깐 거기서 안 하고 하고가 없으니까 그저 여러분들은 한생각 잘해서 굴려라 이거죠. “한생각을 잘해서 굴리면 잘 생각한 대로 그대로다. 그대로 법이다.” 이러는 거죠. 그래서 이 마음공부 하는 데 어떡하면 마음공부를 빨리할 수 있을까 그러지 않는 게 좋겠죠.

진짜로 내 껍데기를 이렇게 추려서 달아 보면 얼마나 되겠어요? 그러나 속 내부를 전체 달아 본다면 근수가 많이 나가겠죠. 그거나 똑같아요. 우리가 보이는 껍데기를 가지고만 말한다면 그 아무것도, 소용이 없는 게 아니라 에너지가 부착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것도 못 하죠. 그러나 이 사람은 어디까지나 이 모습이, 모두가 수레바퀴처럼 돼 있다면 항상 그냥 더하고 덜함도 없이 짧게 구르든 길게 구르든 하여튼 쉬지 않고 굴러가는 것만은 사실이죠.

굴러가는데 말입니다, 그 수레바퀴는 굴러가는데 이 차이가 없이 모습은 자꾸 변하기는 변하되 금세 금세 화해서 돌아가는 거, 찰나찰나 화해서 돌아가는 거, 그거를 진짜로 믿는다면 그대로 자기가 공한 도리를 알고, 공한 도리를 알면 여러분들이 애탄지탄할 게 없이 ‘함이 없이 24시간 굴렀구나. 함이 없이 굴렀구나. 함이 없이 보고 듣고 말하고 움죽거렸구나. 함이 없이 식구들하고 싸웠구나. 함이 없이 웃었구나. 함이 없이 성냈구나.’ 이렇게 그냥 모두가 함이 없다는 것만 알면 죄가 붙을 일도 없고, 유전성이 생길 일도 없고, 영계성이 생길 일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요. 업보성이 거기 붙을 일도 없고. 이것 괜한 소리가 아니에요.

사람이 어떤 짓을 하고 산다고 하더라도 마음이 편안하다 편안하다 하면 편안하다는 데 다 거기 흡수돼서 돌아가죠. 가정살이가 다 흡수돼서 돌아가요. 그냥 거저 편안한 게 아니거든요. 여러분들 오시면은 얼굴에 기미가 꼬이고 이렇게 얼굴에 그냥 벌써 저거 하면 아주 애탄지탄하고 사시는 게 완연히 나타나거든요. 그래서 그 기미 좀 벗기고 살라고 그러면, 어떤 때 보면 기미가 다 벗겨져 가지고 왔어요. 그것이 내부에서부터 외부로 나타나는 거죠.

이게 여러분들이 이렇게 사시니까 말이지, 이거는 이쪽의 우리 생명들이 살고 있는 법만 그런 게 아니에요. 우주간 법계가 다 그렇죠. 우리가 이 잘못돼 돌아가는 거는 왜냐하면 수없이 우리가 살아오는 그 습 때문에, 관습, 습, 착 그것 때문에 어째 볼 수 없이 툭툭 그냥 그냥 그런 말도 나오고, 그런 생각도 하게 되고, 못 한다 한다가 나오고 이런 거죠.

살면서 ‘감히 이거는 법에도 그렇고 모든 게 이게, 이게 도대체 할 수가 없어.’ 이렇게 생각을 한다면 정말 길고 할 수가 없이 되는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이거 사람이 살아나가는 덴 이 법이, 이 유의 법이 있기 때문에 이건 도저히 될 수가 없다.’ 이렇게 인정을 하시는 거예요. 그러면 그렇게 인정하시는 대로 그대로밖에는 안 돼요. 넘어갈 수가 없어요. 그러나 ‘무의 법이다, 허공을 걷는다’ 이럴 땐 가고 옴이 없이 넘어설 수 있다. 이런 문제를 놓고 본다면 그거는 ‘하지 못 한다, 한다’도 거기 붙지 않아요. 그냥 여러분들이 결정을 짓는 데에 묘미가 있다는 얘기죠. 인제 수없이 이 공부를 해 오신 분들도 있고 뭐, 30년씩 이렇게 하신 분도 있고 그렇게 되지마는 말입니다. 근데 30년이고 10년이고 간에, 단 몇 년이고 간에 이게 우리가 습과 착이 없어야 돼요.

우리가 수없이 모습을, 짐승의 모습과 미생물의 모습으로부터 수없이 바꿔 가면서 진화돼서 이렇게 인간까지 올라왔는데 마지막 인간까지 올라와서도 인간의 구실을 못 하고 착으로 이렇게 하고, 번뇌로 그냥 가고, 습관으로 가고 이런다면 이 내 모습 하나 벗어 놓을 수가 없으니까 다른 거야 뭐, 더 말할 것도 없죠. 그러니깐 세세생생의 수레바퀴에 이렇게 말려서 구르다 보니깐 세세생생이 가더라는 거예요.

우리가 이렇게 항상 보죠. 물에서 고길 잡아서 산 채로 그냥 척척 잘라서 회를 쳐서 먹는 거. 닭도 그렇고 모든 게 다요. 그것은 그대로 그렇게 모습을 해 가지고 나왔기 때문에 그대로 그렇게 사는 거예요. 그렇지만 진화된 인간이 볼 때는 그것이 ‘저건 맛있겠다.’ 이렇게 볼 수 있는 사람도 있고, ‘저건 아니야.’ 이러는 사람도 있을 테고, ‘저렇게 산 거를 턱턱 자르지 않아도 그냥 먹을 수 있을 텐데….’ 하는 사람도 있고, ‘저거 그냥 입맛이 딱 떨어진다.’ 이렇게 하는 수도 있고, ‘그 마음은 우리 사는 거나 마찬가지구나. 빠르고 더딜 뿐이지.’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도 있고, 여러 가지가지죠.

그 하나하나 생각하시는 데에 따라서 우리가 차원이 주어지죠. 또 행이 주어지고 습이 주어지고 그 습도 함이 없이 주어지죠. 그래서 ‘습이 없기 때문에 붙을 게 없다’ 이렇게 나가죠. 그러니 여러분들이 지금 이 소리를 알아듣고 평균하게 그냥, 보통 우리네가 정신계와 물질계가 항상 둘이 아니게 돌아간다. 그러니깐 정신계다 물질계다 할 거 없이 그냥 그대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게 그대로 법이다. 생각을 잘하면 안 붙고 모든 게 평등하고, 생각을 못하면 줄줄이 줄줄이 붙는다 이런 거죠.

생각하면 아주 간편하고 그냥 한 발짝 떼 놓는 게 천 리를 한 발짝 떼 놓는 거나 같아요. 이해가 안 가시게 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잘 간파하셔서 잘, 우리가 생각 한번 하고 그 생각이 음파를 통해서 파장이 돼서 우주간 법계가 다 알게 되고 이렇게 하는 거를 아셔야 된다 이러는 겁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이 아니라 여러분들 아닌 여러분들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의 모습이 배라면 그 배를 끌고 가는 선장은 바로 모습 아닌 선장이다 이런 소립니다. 여러분들이 아닌 여러분들이지 여러분들이 아니란 얘깁니다.

그 속에는 공생이면서 공심이면서 공체, 공용, 공식으로서…, 우리가 살아나가는 이 진리 속에서 본다면 정말, 정말 볼 수 없는 그런 문제들이 한두 건이 아니죠.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만 사실 수 있다면 다 건지고도 남아요. 그래서 “이 손을 한데 모으는 것이 십대 제자가 있어야 모든 제자들을 건진다. 미생물 하나 버리지 않고 건질 수 있다.” 그렇게 말하신 게 바로 부처님이 일대사의 인연을 맺으셔서 미생물 하나 버리지 않았다 이겁니다.

이게 말이라는 게 그냥 우리가 나 아닌 나가 알아서 그냥 결정하는 말하고 내 껍데기가 그냥 두서없이 말하는 거하곤 천지 차이죠. 즉 말하자면 나 아닌 나가 말하는 것은 에너지 아닌 에너지 창고에서 에너질 꺼내 쓸 수도 있는 문제지만, 이 허공이 다 에너지 허공이라고 해도 되죠. 허공뿐만 아니라 모두가 50%는 에너지고 50%는 그 에너지를 감당할 수 있는 색신이다 이거죠. 우리가 이렇게, 얼른 쉽게 말해서 사람을 모습을 보고 이름을 짓고 말을 하고 이렇게 하지 말라고 하는 거죠. 그 모습을 보고 이름을 짓고 생각을 한다면 그거는 엉뚱나가게 잘못 나갈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항상 “거기다가 놓고 관해라. 알지 못하는 거 거기다 놓고 관해서 거기서 그냥 떨어지게 해라.” 허허허. 아니 정말, 정말 그거는 한 번에 거기다 놓고 해서 장풍이 맞으면 그냥 한 아름에 하나로 그냥 떨어지니깐요. 떨어지는 사이가 없으니깐 모르시겠지만 말이에요.

이거는 우주 간 모든 법계에 어느 누구도 다 동시에 한마음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누구도 거부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여러분 아닌 여러분, 항상 나라고 하지 마시고 나 아닌 나 그게 바로 자기 불성이자 주인공이에요. “불성이자 주인공이죠.” 하는 말이 별성이자 주인공이에요. 이게 하치 않은 말 같지만 여기에서 잘 묘미 있게 하신다면 정말 도구를 쥘 수 있는 그런 위치가 되는 것입니다.

다가오는 모든 고통 잘 극복하려면

질문 : 요즘은 시국이 이러니 우리들 마음 또한 매우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고집멸도 사성제를 설하셨는데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고통을 어떻게 하면 지혜롭게 잘 극복할 수 있을까요.

답변 : 여러분들한테 줄창 말씀드렸지만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나간다면 팔자 운명이다 뭐 어쩐다 이런 얘기들을 하고들 살겠지만, 이 마음공부를 하고 가시는 분들에 한해서는 이 마음을 다스리는 것도 자기고, 마음을 허탕하게 쓰는 것도 자기입니다. 이 마음공부를 하다 보면 옳고 그른 거, 하지 않아야 될 거, 해야 될 거 이거를 다 알고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마음 자체를 쓰는 대로 고다, 고가 아니다 하는 것이지 고가 따로 없는 것입니다, 본래는.

그런데 고라고 하는 것은 오히려 자기가 자기를 승화시키는 길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막다른 데를 들어가 보지 않았으면, 그 처참하고 갈 길이 없어서 쩔쩔매고 이렇게 해 보질 못했으면 그런 게 앞으로 또 닥치면 기가 막히거든요. 그러니깐 모든 것이 자기 경험이고 또 경험에 의해서 끄달리지 않게 되고, 끄달리지 않음으로써 편안하게 이끌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늘이 무너져도 그 눈도 깜짝거리지 말라고 그랬죠. 그 마음이 모두 하는 짓입니다. 마음이 고통을 가져오는 것이고 마음이 고통을 가져오지 않는 것입니다. 고통이 있어서 하늘이 무너진다, 뭐 그, 일본에도 그렇고 외국에도 그렇고 지진이 나서 그 야단들을 할 때도 있었습니다, 많이. 수만 명이 죽고 그런 때도 있었지만, 그러한 일이 닥친다 하더라도 고통은 하나도 없단 얘깁니다. 그 즉시에 죽는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고통이 고통이라고 하니깐 고통이지 고통은 없는 것이 고통입니다. 그러니까 없고 있고를 모두 둘로 보지 말라고 하는 겁니다. 선도 악도 둘로 보지 말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 그것을 고통으로 생각하지 마시고, 여러분 하나가 고통으로 생각 안 하시는 반면에 수많은 생명들이 고통으로 생각을 안 하고 길을 찾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됩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이 음파를 통해서 다 통하게 돼 있거든요. 지금 마음공부 하는 분들이 얼마 되질 않아서 그렇지 마음공부 진짜 하는 분들이 많이 계신다면 그 허공에도, 즉 말하자면 모든 두루두루 음파를 통해서 살게 되는 거죠. 진화를 하게 되고 모두 그렇게 되는 거죠.

그러니깐 얼마나 여러분들의 그 마음이 중요한지 깊이 아마 이다음에 생각하실 것입니다. 이다음에가 아니라 지금 말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도 그런 생각 하시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모두 진화력을 가지게 되고 또 진화를 하되 어떠한 불신한 걸로 하지 않고, 모습이 아주 보기 싫은 걸로 하지도 않고, 잘 모습을 해 가지고 나오고, 마음을 잘 해 가지고 나오고, 또 둘 아니게 착하게 길을 잃지 않고 여여하게 살게끔 나올 것입니다. 그러니 이 마음 하나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고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항상 주인공에다 기쁘게 놓으세요.

갱년기라 몸도 마음도 힘들어요

질문 : 요즘은 제가 갱년기라고 하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몸이 예전 같지가 않고 여기저기 통증이 생기다 보니 괜히 두렵고 우울해집니다. 육신에 대한 집착이 커서 그런 것일까요?

답변 : 그러니까 여러분은 이렇게 태어나기 이전의 자기를 무시하는 거예요. 태어나기 이전 자기는 정신계의 자기고, 지금 현실에 보이는 물질적 세계는 바로 자기가 형성시켜서 놓은 자체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자기 나무가 자기 뿌리를 무시하겠습니까. 병이 낫고 안 낫고, 일이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그거는 자기한테 그대로 보배로서 있는 건데….

그거를 진짜 알아서, 둘 아닌 도리를 알고 ‘낫게 하든지 낫지 않게 하든지 둘이 아닌 까닭에 너만이 할 수 있지 않아. 지켜 주는 것도 너고, 이끌어 주는 것도 너고, 해결사도 너고, 죽이는 것도 너고 살리는 것도 너야. 너만이 할 수 있어. 너만이 함이 없이 할 수 있고, 너만이 보이지 않으면서도 보이게 할 수 있고….’ 지금 보이는 나와 안 보이는 너가 둘이 아닌 까닭에 항상 내가 보이면 자기도 보이고 내가 안 보이면 자기도 안 보이고, 이렇게 돼 있는 건데, 그렇게 밀접하게 돼 있는 건데도 불구하고 이거는 어떤 때 들어 보면 아주 얼토당토않은 그런 말씀들을 하거든요.

어느 분이 어디가 어떻다고 어떻다고 이렇게 그냥 치명적인 말을 병원에서 들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여기 온 지 얼마나 됐느냐?” 하고 어떤 땐 물으면요, “3년이나 4년 됐어요.” 그런 사람이 있어요. 그러면 “그렇게 됐다면 이렇게 되지도 않았을 텐데 어찌 그래?” 그러면은 씽긋이 웃고선 “오기는 그렇게 왔으나 몇 번 오지는 않았어요.” 이러는 겁니다.

그러니깐 넘기가 어렵더라도 좀 실천을 해 보고 죽고 사는 거 그까짓거…. 아니, 그렇다고 해서 굶으라는 것도 아닙니다. 어렵게 살라는 것도 아니에요. 거기다 집착을 하고 살지 말라 이거죠. 오직 몽둥이 하나 들고 그것만 가지고 살아라 이거죠. 오직 몽둥이 하나 들고. 이게 바로 주장자며 불성입니다. 자불입니다. 그래서 “자기 나무는 자기 뿌리를 믿어야 공덕이 있는 것이지, 자기 뿌리를 믿지 않고 저 큰 나무 이름이나 형상을 찾아 돌아다니는 거는 그거는 공덕이 하나도 될 수 없느니라.” 했거든요.

이 마음공부 하는 도리는요, 한번 인연을 만나는 게 천 년에 한 번 만나기 어렵다는 겁니다, 이 마음공부 하는 게. 이 옷 벗고 옷 속에 그 곤충의 세계를 다 벗어 버리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이런 말입니다. 그런데 항상 그 보기 흉하고 그런 곤충 속에서 우리는 헤어나지 못해야 합니까?

부처는 못 된다 하더라도…, 비천상 보셨죠? 은비까비? 금비까빈가 은비까빈가, 그런 것처럼 그저 이것도 이 모습으로도 됐다가 저 모습으로도 됐다가, 이거를 건지려면 이 모습으로도 되고 저거를 건지려면 저 모습으로도 되고 이렇게 해 가지고선 다 건지고 가지 않습니까. 이렇게 하다 보면 벌써 과거, 지나간 과거고 또 앞으로 올 미래고 현재에 살아가는 이 현실이고 다 무효가 되는 겁니다. 그게 이름이 과거, 미래, 현재 이러지 이 지구가 돌아가는 자체에 이름은 없습니다. 이름은 없어요. 항상 끊어지지 않고 돌아가기 때문에 이름도 없죠. 그런데 사람은 가르치기 위해서 과거니 미래니 현실이니 하고 이렇게 해 놓고 질서를 지키고 살기 위해서 또 이러니저러니 말을 해 놓고….

하여튼 모든 거를 다 벗어나기 위해서는 꼭 ‘둘이 아니라는 것’을 아셔야 됩니다. 이 보세요. 공에다가 그냥 모두 집어넣으면, 공을 집어넣으면 뭐가 남습니까, 거기. 공에다 공을 집어넣는데 그 얼마나 빨라요, 글쎄. 사람들이 그냥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 가지고 그냥…. 그까짓 거 한 번 죽지 두 번 죽느냐. 너 있으면 나 있고 나 있으면 너 있고 모두가 둘이 아닌데 말입니다. 세울 것도 없고, 찾을 것도 없고, 볼 것도 없고, 알 것도 없고 모든 게 그런데, 모두가 둘이 아닌데…. 이 컵과 컵이 둘이 아니라면 한 컵이, 자기 컵 하나가 자기 컵을 깨트리겠습니까? 마주쳐야 깨트려지지. 그걸 명심하세요.

고2 학생인데 공부하기가 싫어져요

질문 : 저는 학생회 학생인데요, 학교에 가기 싫을 정도로 사람들에 대해서 불만이 많은데, 그런 문제가 있음을 알면서도 고쳐지지 않는 제 자신이 너무 괴롭습니다. 마음이 안정이 되지 않으니 공부하기도 싫어지고 방황하게만 되는데 어떻게 해야 저의 마음을 잡을 수 있을까요.

답변 : 우리 학생도 많이 봐 왔겠지만 우리가 지내다 보면 참 가난하고 이를 데 없이 불쌍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등록금을 못 내서 학교를 못 다니는가 하면, 공부가 하기 싫어서 못 하는 사람이 있고, 공부를 안 해서 부모들이 속을 썩는 사람들도 많죠. 그러나 학생들이 공부하기가 싫은 것만은 아니에요. 자기가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속의 업식이 다 ‘싫어해라, 싫어해. 그건 해서 뭘 하니?’ 하고 자꾸 하니까 거기 따라서 그냥 더불어 같이 공부하기가 싫어지는 거죠.

그렇다고 업식이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라 자기의 몸속에 다 저장되어 있는 거거든. 악업 선업이 다 내 안에 있는 거니까, 자기한테 콩씨도 붙어 있고, 자기한테 진딧물도 붙어 있고, 자기한테 벌레도 있는 거지, 다른 데 있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그 “진딧물에 속지 말고 자기의 콩씨에게만 집중해라.” 이러는 겁니다. 그런데 어디 그런가? 자기 마음에서 모든 것이 나오는 거니까 자기 마음에서 진짜 나오는 건 줄 알고, 생각해 보지도 않고, 이게 나쁜지 좋은 건지 생각지도 않고 그냥 막 저지르는 것뿐이에요. 물론 생각해 본다고 하겠죠.

그런데 잘못되게 하는 마음이 많아서 잘못되는 방향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서, 어떻게 마음을 쓰느냐에 따라서 그 마음에 입력이 되고, 그게 현실로 나오는 것이죠. 들이고 내고 들이고 내고 이렇게 살아나가는 거기 때문에 그 입력이 되는 대로 현실로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 과거에 우리가 잘 몰라서 그러한 입력을 못 했을 때 입력이 된 그 부분을 어떻게 지우면서 새로 입력할 수 있나를 생각해야 되지 않을까요? 그러려면 바로 지금 현재 살아가는 어느 부분이 부족한가를 알아서, 예를 들어서 공부가 하기 싫으면 ‘너만이 공부하는 것을 재미있게 할 수 있어!’ 이러고 입력을 한단 말입니다. 그러면 공부하기 싫게 했던 입력이 없어짐으로써 공부를 재미있게 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그 뜻을 알겠어요? 배우는 사람이니까 알겠지요.

그래서 과거에 입력됐던 그 모두를, 누적된 모두를 지금 현실에 한생각을 좋게 바란스를 맞춰서 ‘내가 지금 무엇을 하나.’ 잘 생각해서, 나를 리드해서 물리가 터지게 하는 것도 너다 이거야. 물리가 터져야 잘못된 부분을 고칠 테니까. 지혜롭게 살게 하는 것도 너고, 아픈 것을 낫게 하는 것도 너고, 시험을 보게 하는 것도 너니까 잘 보게 하는 것도 너다. 일거수일투족을 다 그렇게 관(觀)해 보세요.

잠이 와서 공부가 안 된다 할 때도 잠을 안 오게 해서 공부를 하게 하는 것도 너고, 하기 싫다 의욕이 없을 때 의욕이 있게 하는 것도 너라고 관해서 거기다 입력을 하면 앞서 입력된 것이 없어지면서 새 입력으로서 현실에 나온다 이거예요.

모든 것을 그렇게만 한다면 불평하는 마음이 없어지고 학생의 모습이 더없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모든 것을 자유스럽게 이끌어 갈 수 있게 항상 이끌어 주는 내 안의 주인공을 감사하게 생각하게 될 거예요. 그러니 영원한 나의 친구이자 나의 길잡이인 주인공을 진실하게 믿고 모든 것을 맡기고 살아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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