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닦음의 길 8

몇 해 전부터 불교대학에서는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을 ‘참회, 발원의 날’로 정해서 108배와 명상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한 달간의 잘못을 참회하고 다가오는 달을 새로운 마음으로 맞이하자는 의도에서 시작하였다. 조계종에서 제작한 〈나를 깨우는 108배〉 영상에 맞춰 절을 하다보면, 때로는 눈물을 흘리는 학인들도 보인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성찰에서 나오는 참회의 눈물이자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는 거룩한 눈물이기도 하다. 선하고 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거기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붓다 당시에도 여러 참회의식들이 있었다. 아무리 수행이 잘 된 사문이라 해도 수백 조항에 달하는 계율을 모두 지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계율은 범(犯)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역설도 등장하였다. 중요한 것은 계율을 어겼을 때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하는 데 있다. 계율을 범하고도 참회하지 않는다면, 몸과 마음이 무거울 뿐만 아니라 깨침의 길을 가는 데도 방해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붓다는 스스로 참회할 수 있는 몇 가지 장치를 마련해두었다. 자자(自恣)와 포살(布薩)과 같은 참회의식이 바로 그것이다.

자자란 안거(安居)가 끝나는 날 대중들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는 의식이다. 붓다 당시 비가 많은 우기에는 일정한 장소에 모여서 집중수행을 하였는데, 이를 안거라고 한다. 이러한 전통은 지금까지 전승되어 우리의 경우 4월 보름부터 7월 보름까지는 하안거(夏安居), 10월 보름부터 이듬해 1월 보름까지 동안거(冬安居)를 실시하고 있다. 자자는 안거 동안 저지른 잘못을 참회함으로써 업장(業藏)을 털어내고 마음을 가볍게 하는 의식이다.

〈율장〉에는 붓다가 제자 500여 명과 함께 자자를 행하는 장면이 나온다. 의식이 시작되면 가장 어른인 붓다가 대중들에게 자신의 말이나 행동에 잘못이 있으면 지적해주길 바란다고 말한다. 그러면 대중들은 지적을 하거나, 아니면 침묵을 지킨다. 침묵은 잘못한 일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붓다의 참회가 끝나면 차례대로 5백 명의 비구들이 같은 방식으로 의식을 이어간다. 그 당시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청정 승단이 잘 유지되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자자 이외에도 포살이라는 의식이 있었다. 이는 매월 1일과 15일에 승가의 구성원이 모여서 계율을 잘 지켰는지 점검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 공개적으로 참회하는 의식이다. 포살이 시작되면 대중들은 계율을 함께 외우고 사회자는 대중들에게 조금 전에 합송(合誦)한 계율을 범한 일이 없느냐고 묻는다. 예컨대 거짓말을 한 적이 있는지 물으면, 그런 일을 행한 비구는 대중들 앞에서 참회하면 된다. 사회자가 세 번 질문할 동안 대답이 없으면, 잘못한 대중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다음 항목으로 넘어간다.

재가자의 경우 포살일이 되면 사찰을 방문하여 예불에 참여하고 법문을 듣기도 하였다. 재가자를 위한 포살의식도 별도로 있었는데, 매월 8일과 14일, 15일, 23일, 29일, 30일 여섯 번에 걸쳐 진행했다고 전한다. 이날에는 여덟 가지 계율(八齋戒)을 잘 지켰는지 점검하고 참회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8재계란 재가자가 지켜야 하는 5계(戒)에다 ⑥넓고 화려한 평상에 앉지 않고 ⑦머리를 꾸미지 않고 춤추거나 노래하는 것을 보지도 듣지도 않으며 ⑧ 정오가 지나면 먹지 않는다는 등의 세 항목이 더해진 것이다.

중국 고전인 〈중용〉에 “은밀한 것보다 잘 보이는 것이 없고(莫見乎隱), 미세한 것보다 잘 드러나는 것이 없다(莫顯乎微)”는 구절이 나온다. 아무리 은밀하고 작은 일이라도 양심(良心)에 비춰보면 모두 알 수 있는 법이다. 스스로 행한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부끄러운 행동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래서 가장 잘 보이고 잘 드러난다고 한 것이다. 〈중용〉에서 홀로 있을 때 행동을 삼가는 신독(愼獨)을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참회란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만은 알고 있는 잘못을 고백하는 일이다. 그 용기 있는 고백이 과거의 잘못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창조하는 에너지로 작동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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