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삼계화택(三界火宅)

문 밖에서 내 집이 불타고 있는 것을 본 아버지는 어떻게 행동할까? 옛날에 큰 부호가 문 밖에서 열린 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니 집안 사면에 불이 나 활활 타고 있는데, 집안에는 아이들이 놀이에 정신이 팔려있다. 아이들을 구하는 것이 매우 급하다. ‘나는 힘이 세니 옷상자에, 또는 책상자에 아들들을 담아서 들고 나오자’고 생각해본다. 그러다가 ‘좁고 유일한 문을 통해 나오다가 아이들을 불구덩이에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큰일이다’는 생각에 미치게 된다.

‘아이들에게 이 집이 한창 불에 타고 있어 무섭다는 말을 일러 주고, 지금 빨리 뛰어나오지 않으면 불에 타서 죽는다고 하리라’고 생각하여 “빨리 나오라”고 소리쳤다. 아버지는 애가 타서 좋은 말로 타이르고 달랬지만, 어린 자식들은 장난에만 정신이 팔려서 믿지도 않고 놀라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아 나오려는 마음이 전혀 없었으며, 또 불이 어떤 것이며 집은 어떤 것이며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어 가는지도 모르고 다만 동서로 내달리고 놀면서 아버지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내 이제 방편과 수단으로 자식들로 하여금 이 화재를 면하게 하리라’고 생각한 아버지는 여러 자식들이 장난감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외쳤다. “양이 끄는 수레[羊車], 사슴이 끄는 수레[鹿車], 소가 끄는 수레[牛車]들이 지금 대문 밖에 있으니, 너희들이 이 불타는 집에서 빨리 나와 가져라. 너희들이 달라는 대로 나누어 주겠노라”

자식들은 앞을 다투어 불붙은 집에서 뛰쳐나와 “아버지께서 주신다던 양이 끄는 수레, 사슴이 끄는 수레, 소가 끄는 수레를 지금 주십시오”라고 말하였다. 대부호는 세 가지 약속한 수레 대신에, 온갖 보배로 장식된 흰 소가 끄는 큰수레[白牛車]를 모두에게 나누어주었다.

이상은 〈묘법연화경〉 제3 비유품에 나오는 삼계화택의 비유 중 일부이다. 여기에서 양거(羊車), 녹거(鹿車), 우거(牛車)는 각각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의 삼승(三乘)을 말한다. 화택(火宅)에서 무사히 탈출한 아이들에게 약속한 이 세 가지 수레 대신에 붓다께서 주신 수레는 백우거(白牛車)이다. 백우거는 일불승[一佛乘, Skt. eka-buddha-y?na. 부처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오직 하나의 궁극적인 가르침]을 말한다.

세 가지 수레 대신에 백우거를 주셨다는 비유의 뜻은, 붓다께서 〈묘법연화경〉을 설하기 이전에는 성문·연각·보살의 삼승(三乘)에 대한 여러 가지 가르침을 설하였지만 그것은 방편에 지나지 않으며, 결국은 모두 일승(一乘)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이를 회삼귀일(會三歸一)이라 표현하고, 이는 〈법화경〉 28품 가운데 앞 14품의 요지를 드러낸 말이다.

일체 세간의 아버지[四生慈父]인 붓다께서는, 여러 가지 두려움과 쇠함과 고뇌와 근심과 무명과 어둠이 영원히 다하여 남음이 없으며, 한량없는 지견과 힘과 두려움 없음을 성취하였고, 큰 신통력과 큰 지혜력이 있으며, 방편과 지혜의 바라밀다를 갖추어 대자대비에 항상 게으름이 없으며, 항상 선한 일로 일체를 이익 되게 하신다.

“그러므로 (붓다께서는) 썩고 낡은 삼계(三界)의 불타는 집에서 태어나셔서 중생들을, 나고 늙고 병들고 죽으며, 근심하고 슬퍼하며 고통하고 고뇌하며 어리석고 어둠에 가린 3독(毒)의 불에서 제도하려고 교화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하느니라.”

〈妙法蓮華經 T0262_.09.0013a16-18〉

〈묘법연화경〉에서 삼계[三界, 중생이 생사왕래(生死往來)하는 욕계·색계·무색계]가 무엇으로 불타고 있다고 하였는가? “생노병사우비고뇌(生老病死憂悲苦惱)와 삼독의 불[三毒之火]로 타고 있다”고 하였다. 이는 초기 핵심경전의 하나인 〈연소경(燃燒經)〉의 내용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연소경〉의 뼈대에 풍부하게 살을 붙인 것이 〈묘법연화경〉의 삼계화택(三界火宅)의 비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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