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식’, 파계인가?
‘육식’, 파계인가?
  • 현불뉴스
  • 승인 2020.05.18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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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닦음의 길 6

출가자가 육식을 하면 계율을 어기는 것일까? 이는 오래 전부터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던 것이었다. 육식은 생명을 해치지 말라는 불살생계에 어긋나지 않느냐는 문제제기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찰에서는 대부분 육식을 하지 않는다. 요즘은 채식 위주의 사찰음식이 건강식으로 주목을 받고 있으며 육식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비건(vegan)이라고 해서 고기와 생선은 물론 우유나 달걀 등 동물성 원료가 들어간 모든 식품을 먹지 않는 철저한 채식주의자도 관심을 끌고 있다. 열악한 환경에서 사육되는 동물들의 권리도 보호되어야 한다는 주장 또한 심심찮게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인지 육식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이전보다 많아진 것 같다. 그렇다면 불교의 역사에서 고기는 금지된 음식이었을까?

붓다가 활동하던 당시 육식이 계율로 금지된 것은 아니었다. 몇 가지 조건만 갖추면 고기는 먹어도 되는 음식이었다. 그 조건이란 동물을 잡는 모습을 눈으로 보지 않고(不見), 나를 위해 잡았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며(不聞), 나를 위해 잡았다고 의심되지 않는(不疑) 음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삼종정육(三種淨肉)이라 하는데, 세 가지 조건을 갖춘 청정한 음식이면 먹어도 좋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붓다가 육식을 허용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당시 출가한 사문에게 걸식은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편이었지만 하심(下心), 즉 자신을 낮추는 중요한 수행이었다. 얻어먹는 사람이 어떻게 우쭐하는 마음을 낼 수 있겠는가. 상대가 주는 음식이 고기인지 아닌지, 맛이 있는지 없는지 가리지 않고 그저 주는 대로 받는 것이 수행자의 자세였던 것이다.

그런데 당시 붓다에게 육식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력하게 반발했던 인물이 있었다. 바로 붓다의 사촌인 데바닷타였다. 그는 평생을 붓다에 대한 콤플렉스로 고통 받으며 살아온 인물이다. 그는 세 번에 걸쳐 붓다를 죽이려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로 끝나고 비참한 최후를 맞기도 하였다. 그가 바로 붓다에게 육식을 금하고 이를 어길 경우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주창한 것이다. 이 문제 때문에 한때 승단이 분열되기도 했지만, 붓다는 데바닷타의 제안을 수용하지 않았다. 수행자 각자의 판단에 따라 보고(見) 듣고(聞) 의심스러운(疑) 고기가 아니라면 먹어도 좋다고 결정했던 것이다.

이런 흐름에 변화가 생긴 것은 대승불교에 이르러서였다. 인도의 대중종교로 성장한 힌두교에서는 육식보다는 채식을 선호하였다. 특히 인도의 신분제도인 카스트에 철저한 바라문들은 고기를 취급하는 천민들과의 접촉을 기피하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천한 신분과 부딪치는 것 자체를 부정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불교계에서는 육식을 금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외면할 수 없었고 결국 이를 받아들이게 된다.

불교 내적으로도 육식을 금지하는 논리가 필요했다. 이때 활용된 근거가 불살생계는 물론이고 ‘모든 중생은 불성을 갖추고 있다(一切衆生 悉有佛性)’는 〈열반경〉의 가르침이었다. 모든 생명은 불성을 지닌 고귀한 존재이기 때문에 자비의 마음을 지녀야 하는데, 어떻게 살생을 하고 고기를 먹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범망경〉의 48경계(輕戒) 가운데 세 번째 조항에서도 육식은 자비의 종자를 끊는 행위이기 때문에 먹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대승에서는 육식을 금하는 분위기지만, 남방에서는 초기불교의 전통에 따라 육식을 허용하고 있다. 대승에서도 육식을 전혀 안 하는 것은 아니다. 수행자 개인에 따른 편차가 어느 정도 있는 편이다. 육식의 허용 여부는 문화적 차이에 따른 현상이지 옳고 그름의 차원에서 다룰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육식의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동물만 생명이 아니라 식물도 살아있는 생명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채식 역시 살생을 하고 있는 셈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생명을 해치지 않고서는 한순간도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일이다. 어떤 음식을 먹더라도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대중공양 전에 합송하는 것처럼 ‘한 방울의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스며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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