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귀족·승려, ‘용봉단차’ ‘백차’ 선호
왕실 귀족·승려, ‘용봉단차’ ‘백차’ 선호
  • 박동춘 (사)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
  • 승인 2020.05.08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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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고려시대 유행한 차
승원, 차문화 향연 이끈 공간
차수요 확충 위해 ‘다소’ 운영
전문인력 배치돼 차 본격제작
고려시대 최고급 단차 유행해
만드는 법·특징 ‘다시’에 담겨
백차를 만드는 과정 중 절구에 찧어낸 차를 동이에 갈아내는 모습.
백차를 만드는 과정 중 절구에 찧어낸 차를 동이에 갈아내는 모습.

고려시대 승원은 차 문화의 향연이 벌어진 공간이었으며, 이를 이끈 건 수행승들이었다. 특히 고려 시대 사찰 주변에 형성된 다촌(茶村)은 전라도와 경상도 일부 지역에 분포되었을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는 아열대 기후에서 자라는 차나무의 속성 때문이다.
고려는 다소(茶所)를 설정하여 세금을 거두어들였다. 다소가 어느 시기부터 설치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군현을 통해 세금을 거두어들이면서 특수한 운영 단위를 따로 설정한 것과 맥을 같이 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다소가 향, 부곡과 소, 장, 처 등으로 분류해서 특정한 물품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목적을 지닌다는 점에서, 다소의 설정은 왕실 귀족, 관료 문인들의 차수요 확충을 위한 것이라 하겠다.

한편 다소는 차를 만드는 전문 인력들이 배치되어 왕실 귀족이 즐기는 차를 만들었다. 다소와 관련하여 참고할 수 있는 문헌은 조선 초에 편찬한 〈세종실록지리지〉가 있다. 이 문헌에 의하면 작설차를 토공(土貢)으로 올린 지역은 경상도 경주부, 밀양 도호부, 울주, 진주목, 함양군, 고성현, 하동현, 산음현, 진해현 등인데, 밀양의 엄광사에서 작설차가 난다고 하였다.

그런데 토공으로 작설차를 올린 곳은 경상도보다 전라도 지역이 훨씬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주부에서는 고부군, 옥구현, 부안현, 정읍현이고, 나주목에서는 나주목 영암군, 영광군, 강진현, 무장현, 함평현, 남평현, 무안현, 고창현, 흥덕현, 장성현 등이 있고, 남원 도호부에서는 순창군, 구례현, 광양현 등이 있다. 특히 장흥도호부에는 다소가 13곳이 있다고 하였고, 장흥도호부에 속한 담양도호부, 순천도호부, 무진군, 보성군, 낙안군, 고흥현, 동복현, 진원현  등에서 차를 공납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조선 초기까지 다소(茶所)가 있었던 곳은 장흥도호부에 속한 요량, 수태, 칠백유, 정산, 가을평, 운고, 정화, 창거, 향여, 웅점, 가좌, 거개, 안칙곡 등이고, 동복현 와지다공리에도 다소가 있었다는 것이 확인된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언급된 토공 지역은 고려 시대에도 차를 생산하던 주요지역으로, 사찰을 중심으로 다촌과 다소가 분포되었던 지역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려말선초(麗末鮮初)까지 차 주산지는 전라도였고 특히 장흥도호부가 주요한 작설차 토공 지역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조선 전기에는 이미 경상도 지역 일부에서 차가 생산되지 않았던 정황을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의 〈다원(茶園)〉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다.

‘나라에 바치는 차가 우리 군에서는 생산되지 않는다. 그런데 해마다 백성에게 차를 부과한다. 백성들은 차를 사 올 돈을 가지고 전라도에서 사 오는데, 대략 쌀 한 말에 차 한 홉을 사 왔다.(上供茶 不産本郡 每歲賦之於民 民持價 買諸全羅道 率米一斗得一合)’

윗글에 따르면, 이미 고려가 멸망한 지 100여 년이 지난 후, 차를 토공으로 올렸던 경상도 지역에서는 차가 이미 생산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차의 주요산지였던 전라도 지역에서는 차가 생산되었을 뿐 아니라 유통도 되고 있었는데, 그 값이 싸지 않았던 듯하다. 아무튼 다소와 관련된 흔적은 조선 전기까지도 남아 있었다.

다시 고려시대 차 문화로 돌아가, 그 시대를 풍미했던 차는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살펴보자.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최고품의 차를 생산했던 시기는 12세기이다.
북송에서도 황제용 차를 생산하는 어원이 특별 관리되어 용봉단차(龍鳳團茶)처럼 최상급의 단차(團茶)를 만들었다. 이런 차의 제다 기법은 송나라를 내왕하던 승려나 사신, 그리고 송 황실에서 고려 왕실에 하사된 차를 통해 그 기술을 연구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고려 왕실 귀족, 승려는 물론 일부 관료 문인들까지도 송에서 유행하던 용봉단차나 백차(白茶)가 유행하였다.

그렇다면 고려에서 유행했던 단차(團茶)란 어떤 차일까. 단차라는 명칭은 차의 모양이 다식처럼 둥글게 생겼기 때문에 단차라고 한 것이다. 바로 둥근 모양이란 뜻이다. 10세기 이후는 단차의 시대였다. 송이나 고려가 이 같은 유형의 차를 즐겼는데 최고급 단차는 어떻게 만드는 것일까. 북송 때 조여려(趙汝礪)의 〈북원별록(北苑別錄)〉에는 단차의 공정 과정을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는데, 대략의 공정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단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최상급의 차 싹을 얻어야 한다. 이는 매 발톱처럼 작은 차 싹으로 만들고 용봉단차는 매 발톱, 혹은 매 부리만한 차 싹의 속대만을 사용하는데, 이것이 수아(水芽)이다.

고려 문인의 다시(茶詩)에도 매 부리, 노란 움 같은 어린 차 싹을 언급한 바가 있는데,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운봉에 주석하신 장로 규 선사에게(雲峰住老珪禪師)>에서 “시냇가 차 싹, 이른 봄에 싹 터 황금 같은 노란 움이 눈 속에서 돋았네(故敎溪茗先春萌 抽出金芽殘雪裏)”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또 이연종(李衍宗)의 <박충좌(朴忠佐)가 차를 보냈기에 감사하여(謝朴恥菴惠茶)>에도 “용암 벼랑과 봉산 기슭 산승 따라 대숲에서 매 부리 같은 어린 차 싹을 땄네. 화전에 차를 덖어보니 최고의 품질이라(龍巖巖畔鳳山麓 竹裏隨僧摘鷹觜 火前試焙云最佳)”라고 읊은 바가 있다.

다시 백차(白茶)를 만드는 공정을 살펴보면, 수아나 매 부리, 노란 움처럼 여린 차 싹을 딴 후, 차 싹에 붙어 있는 백합(白合: 차 싹을 싸고 있는 겉잎)이나 줄기를 모두 따 낸 차 싹을 시루에 넣어 증기로 쪄낸 다음 자다(樂茶) 공정을 거친다. 자다(樂茶) 라는 공정을 거치는 연유는 쪄낸 차 싹의 물기와 엽록소를 제거하기 위한 공정이다. 그 과정을 〈북원별록〉에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차 싹을 다 익힌 것을 다황(茶黄)이라 한다. 여러 차례 물을 뿌려 (익힌 차 싹을)식힌다. 바야흐로 소착에 올려놓고 물기를 제거하며 또 대착에 넣고 고를 짠다. 먼저 면백으로 싸고 죽순 피로 묶은 연후 대착에 넣고 누른다. 한 밤중에 이르러서 꺼내 고르게 주물러서 다시 대착에 넣는데 이것을 번착(翻榨)이라 한다.(茶既熟 謂之茶黄。須淋洗數過[欲其冷也] 方上小榨以去其水。又入大榨出其膏。先是包以布帛 束以竹皮 然後入大榨壓之 至中夜 取出揉匀 復如前入榨。謂之翻榨)’

윗글에 따르면, 다 익힌 차 싹은 과황을 거쳤다. 과황을 거친 차는 물을 뿌려 뜨거운 열기를 식혀야 한다. 만약 차를 뜨거운 상태로 두면 누렇게 변질되어 생기를 잃는다. 그런 폐단을 방지하기 위해 물을 뿌려 열기를 식히는 것이다. 만약 열기로 인해 차 싹이 누렇게 변하면 생기가 사라짐에 따라 싱그러운 차의 맛과 색이 변한다.

일창(창 모양의 여린 잎) 형태의 찻잎.
일창(창 모양의 여린 잎) 형태의 찻잎.

이런 차는 최고급의 등급에 들어 갈 수가 없기 때문에 먼저 소착과 대착이라는 공정을 거치는데, 소착은 차 싹의 물기를 제거하기 위함이고, 대착은 엽록소를 제거하기 위한 공정이다. 소착과 대착을 거친 차는 번착을 거치는데, 이는 차를 부드럽게 하기 위한 조치이다. 이런 공정 과정은 하룻밤을 넘지 않아야 하는 까다로운 과정이므로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

백차의 공정에서 소착, 대착, 번착의 과정을 거친 차는 엷은 녹빛과 흰빛을 띠는데, 마치 마른 대나무 잎과 비슷한 상태가 된다. 그다음에는 빛바랜 대나무 잎처럼 생긴 차를 절구에 넣고 찧어 낸 후, 다시 물동이처럼 생긴 동이에서 공이로 갈아낸다. 차를 갈 때, 가는 공정에서 마찰 때문에 차가 마르게 되면 다시 물을 조금 친 후, 다시 갈아 고운 가루 상태가 될 때까지 갈아야 하는데, 이때 차에 물을 치는 것을 배수(拜水)라고 한다. 조여려의 〈북원별록〉에는 황실 공납용 승설백차(승설백차) 같은 황제용 차는 16번 정도 배수를 거쳤고, 소용봉단은 4번, 대용봉단은 2번 정도 배수하며 갈아낸 차이다. 따라서 10번 이상 배수를 거친 차야말로 함부로 얻을 수 없는 차였다. 그러므로 고려 왕실이나 귀족, 승원에서 열린 명전(茗戰) 놀이에 사용되었던 차는 10배수를 거친 차가 진상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다시 〈북원별록〉의 ‘차 만들기(造茶)’에서 배수 후의 공정 과정을 살펴보니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무릇 연분(차를 가는 동이)에서 처음 꺼낸 차를 흔들어야 하는데, 이는 표면을 고르게 하기 위함이다. (이런 상태의) 차를 주무르는 것은 (차가)부드럽고 찰지게 하기 위함이다. 그런 연후에 틀에서 찍어내 덩이를 만들어 뜸에서 과황을 거친다, 그러므로 그 모양은 네모난 것, 꽃 모양, 대용단, 소용단이 있다. (凡茶之初出研盆 蕩之欲其匀 揉之欲其膩。然後入圈制銙 隨笪過黃有方故 銙有花銙 有大龍 有小龍)’

윗글에 따르면 백차를 만드는 공정에서 절구에 찧어낸 차를 다시 동이에서 갈아내는 과정이 있는데, 종래의 대소용단 같은 단차는 고를 짜내는 공정이 없을 뿐 아니라 배수도 2번 정도를 거쳤을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백차는 16번의 배수를 거친다고 하니 단차보다는 훨씬 더 많은 공력이 필요했음이 드러난다.

그리고 과황이라는 공정을 거친다고 하는데, 대체로 잎차를 만들 때 과황은 차 잎을 찌거나 덖는 과정을 말한다. 그러나 백차의 공정 과정 중에 과황이란 이미 틀에서 찍어낸 덩이차를 뜨거운 불에서 건조하는 과정을 말하는 것으로, 이 과정 중에 뜨거운 수증기를 통과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아마 찍어낸 차에 남아 있는 풋내를 줄이기 위한 조치이며 다른 한편으론 단차의 표면을 윤택하게 만들기 위한 공정이라 여겨진다. 황제용 최고급 차를 만드는 공정 과정인 과황은 가장 섬세한 주의가 요구되는 공정이다. 어찌 보면 백차의 완성은 과황에서 결정된다고 할 만큼 중요한 과정이라 하겠다.

<(사)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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