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부처 오신 세상 그리다?

하생경-성불경-상생경 순으로
미륵부처 관련 경전들 성립돼
도상은 상생서 하생으로 조성
당 말기 ‘하생경’만 묘사하기도
고려불화 하생경 도상 3점 존재

그림1. 성당 시기에 조성된 돈황 막고굴 445굴 ‘미륵하생경변상도’의 모습. 미륵부처가 세상에 나투면 어떤 세상이 만들어질 지를 묘사했다.

 

지난 연재에서 미륵보살이 계시는 아름다운 도솔천에 가기에는 아직 이번 생에 할 일도 해야 할 일들도 많아서, 미륵부처가 오시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예로부터 아주 많은 왕과 위인들이 자신이 곧 미륵의 현신이며, 인간사의 모든 고통과 환난을 없애고 풍족한 세상을 가져올 것이라 하였다.

미륵부처님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열반 후 56억 7000만 년이 지난 뒤 사바세계에 내려오신다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사람은 절대 살아서는 미륵부처님을 뵐 수 없다는 계산이 나온다. 무엇이든 ‘빨리빨리’를 외치는 현 시대에 맞추어 미륵부처님도 좀 일찍 와주셔서 중생들을 구원하고 제도해 주시지 않을까하는 욕심도 내어본다. 

소위 ‘미륵삼부경’이라 칭하는 미륵과 관련된 경전을 성립순서로 보면 3세기 경에 〈불설미륵하생경(佛說彌勒下生經)〉과 〈불설미륵대성불경(佛說彌勒大成佛經)〉이 그리고 455년에 〈불설관미륵보살상생도솔천경(佛說觀彌勒菩薩上生兜率天經)〉이 성립되었다. 

그런데 현존하는 미륵 관련 불화를 살펴보면, 수대(隋代, 581~618)에 그려진 〈미륵상생경변상도〉를 돈황석굴(敦煌石窟) 417굴·419굴·423굴·433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후 미륵상생과 미륵하생이 한 화면에 표현되다가 초당(初唐, 618~712)시기 329굴의 사례처럼 미륵상생도상에 비해서 하단의 미륵하생도상이 더 큰 면적을 차지하게 된다. 그리고 중당(中唐, 766~835)과 만당(晩唐, 836~907)시기에 이르면 〈미륵상생경변상도〉는 형식화 되거나 〈미륵하생경변상도〉만을 묘사하게 된다. 즉 현존하는 벽화는 ‘미륵삼부경’의 성립순서와 반대인 것으로 보아서, 민중의 바램과 신앙의 대상은 초반에는 내세를 꿈꾸나 결국은 현세구복을 선택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미륵하생경변상도’의 도상학적 근거가 되는 〈불설미륵하생경〉에서 이야기하는 미륵부처가 출현한 풍족하고 안락한 세상이 어떤 모습일까. 경전의 내용을 살펴보자.

①“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길 먼 장래 이 나라 경계에 시두(翅頭)라는 성이 있어 그 동서가 십이유순이고, 남북이 칠유순인 데다가 토지가 비옥하고 인민이 치성하여 거리마다 줄을 이룰 것이며, 그때 성 안에 수광(水光)이란 용왕이 있어서 밤에는 향비를 퍼붓고 낮에는 맑게 개고, 또 엽화(葉華)라는 나찰(羅刹) 귀신이 있어서 그 소행이 법을 따르며 바른 교훈을 어기지 않을뿐더러 매번 인민들이 잠이 든 뒤에 더럽고 나쁜 온갖 부정한 것을 제거함과 동시에 항상 향이 나는 액을 땅에 뿌리므로 그 땅이 매우 향내가 나고 깨끗하리라.”

②“그때 염부제(閻浮提) 안에 곡식이 풍부하고 인민이 치성하고 모든 값진 보물이 많고, 마을끼리 서로 가까워 닭 울음소리가 마주 들리며, 이때엔 나쁜 꽃이나 과일나무의 시들고 더러운 것도 저절로 소멸되는 반면 그 밖의 감미로운 과일나무로서 향기롭고 좋은 것만이 다 땅에 자라난다.”

③“그때 저 왕에게 수범마(修梵摩)라는 대신이 있는데, 왕이 어릴 때부터 같이 좋아하는 사이라 왕이 매우 사랑하면서도 존경하는가 하면, 또 얼굴이 단정하여 크지도 작지도 않고 살찌거나 여위지도 않고, 희지도 검지도 않고, 늙지도 젊지도 않다. 이때 수범마의 아내 범마월(梵摩越)이란 여인도 역시 여인 중에 가장 뛰어나고 미묘하여 천제(天帝)의 덕이 많은 비와 같은가 하면, 입에서는 우발라꽃(優鉢羅華)과 연꽃의 향내가 나고, 몸에서는 전단향(뽲檀香)의 향내가 나는 등 부인으로서의 여든네 가지의 태도가 영원히 다시는 없으며, 또 병이나 어지러운 생각도 없으리라. 그때 미륵보살이 도솔천에서 그 부모의 늙지도 젊지도 않음을 보고 곧 내려와서 오른쪽 옆구리로부터 출생하리니, 내가 오늘날 오른쪽 옆구리에서 출생한 것과 다름없이 미륵보살도 그러하리라. 도솔천의 여러 하늘들은 각각 외치기를, ‘미륵보살이 이미 내려가 신령하게 출생하였네’라고 할 것이며, 이때 수범마는 곧 아들의 이름을 미륵이라 지을 것이며, 미륵보살은 32상(相)과 80종호(種好)로써 그 몸을 장엄해 몸이 황금빛이 되리라. 그때는 사람들의 수명이 매우 길고 아무런 걱정이 없으므로 모두 8만 4천 세의 수명을 누리며, 여인은 나이 오백 세가 된 뒤에 시집을 가리라.”

④“그때 미륵의 맨 처음 법회에 8만 4천 사람이 아라한을 얻으며, 이때 양거왕(?곏王)이 미륵이 이미 불도를 이루었음을 듣고 곧 미륵불의 처소에 이르러 법을 듣고자 하므로 때에 미륵불은 왕에게 초선(初善)ㆍ중선(中善)ㆍ경선(竟善)의 깊고 깊은 이치를 설법하리라. 그때 대왕은 다시 다른 태자를 세워 왕으로 삼는가 하면, 이발사(剃頭師)에게 값진 보물을 주고 또 다양한 보배를 여러 범지(梵志)들에게 주고는 8만 4천 대중을 데리고서 미륵불 처소에 이르러 사문이 되기를 구하여 다 도과(道果)를 이룩해 아라한을 얻으리라.”
“미륵불이 두 번째 법회 때에 94억 사람들이 다 아라한을 얻으리니, 이들 역시 내가 남긴 교법의 제자로서 네 가지 일의 공양을 행하므로 그렇게 되는 것이며, 또 미륵의 세 번째 법회 때에 92억 사람들이 다 아라한이리니, 이들 역시 내가 남긴 교법의 제자이니라. 그때 비구들의 성명을 다 자씨 제자(慈氏弟子)라고 일컫기를 마치 나의 오늘날 성문들을 다 석가의 제자라고 일컫는 것과 같으리라.”

위와 같은 경전의 내용을 적극적으로 도해한 가장 이른 사례는 성당기의 돈황 막고굴 445굴의 북벽에 그려진 벽화이다.〈그림1.〉 화면의 윗부분 중앙에 하생경 내용 ①의 청량하고 향기로운 시두성의 풍경과 ②의 풍요로워서 어떤 값진 보물도 탐내지 않는 염부제가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오른쪽 윗부분에서 ③미륵이 수범마의 아내 범마월의 오른쪽 옆구리로 탄생하는 장면을 확인할 수 있으며, 화면 왼쪽 아래에는 중생이 8만 4천 세의 천수를 누리고, 여인이 오백 살에 혼례를 올리는 장면 등이 자세히 표현되어 있다. 중앙에는 ④미륵의 세 차례의 설법장면이 왼쪽에서부터 순서로 1~3회의 설법장면과 이에 교화된 왕과 왕비 그리고 문무백관들이 머리를 자르고 사문이 되는 장면이 화면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며 그려져 있다. 그림에는 이외에도 경전에서 말하는 칠보와 보물이 넘쳐나는 보배창고, 일곱 번 수확하는 장면 등 사람의 상상력으로 할 수 있는 이상향을 모두 담고 있어, 미륵이 하생한 세상이 진정한 유토피아가 아닐까한다.  

그림2. 일본 묘만지가 소장 중인 고려불화 ‘미륵하생경변상도’의 모습. 하단에 반야용선이 추가된 점이 눈길을 끈다.

고려불화에도 미륵하생경의 내용을 도해한 ‘미륵하생경변상도’가 세 점 현존하고 있다. 고려 14세기 지은원(知恩院)본 및 1350년 친왕원(親王院)본은 서로 거의 같은 화면 구성이며, 1294년 묘만지(妙滿寺)본은 하단에 반야용선이 첨가되었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이다. 

추측하면 기년명이 없는 지은원본은 1350년에 제작된 친왕원본과 초본을 공유했을 가능성을 높다고 할 수 있다. 화면의 구성은 중앙에 가장 큰 의좌상의 미륵삼존을 중심으로 주위에 제석천, 범천, 십대제자, 십이신장 등을 나누어 배치하였다. 또한 미륵삼존 아래에는 미륵불에게 귀의하고 머리를 깎는 왕족들이 표현되어 있다. 묘만지본에는 이들의 옆에 금니로 각각 ‘자씨부수범마(慈氏父修梵摩)’, ‘자씨모범마월(慈氏母梵摩越)’이라 기록하고 미륵의 부모임을 밝히고 있어, 지은원본과 친왕원본에서도 머리를 깎는 미륵의 부모를 그린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하단에는 미륵불이 하생할 시두성의 생활상을 묘사하였으며, 가마를 메고 가는 사람들, 한 번 씨를 뿌려 일곱 번 추수하는 풍족한 추수 장면, 칠보가 떨어져 흩어져 있어도 아무도 욕심내지 않는 모습 등 경전에 묘사된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그림 2.〉

이처험 중국과 고려 모두 미륵하생경의 내용을 매우 충실히 도해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려 묘만지 소장의 ‘미륵하생경변상도’의 하단에 반야용선이 추가된 부분이 주목되며, 좀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궁금증이 해결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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