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일타 스님 5

 

 

〈서신 1〉

격조
망각의 직전에 다시 거각함은 항신의 법칙이라 했는데 답이 늦다 책망은 아니 했겠지. 아버님과 더불어 집안 두루두루 무양호아 이곳 산색은 불이문하고 천승은 상도이 한데, 송풍이 폭염을 가리워 복중 무고하나 대학생 수련대회 160여 명 때문에 조금은 씨름판입니다.
수놓을 붓글씨는 죽어라하고 연습 중이니 10년 안에는 꼭 써줄 테다. 성급하게 쓰면 졸작이라 못쓴단다. 부디 여유와 지족과 심사의 미덕으로 영원한 행복 도모할 것을 빌고 바라고 원하며 방석 받고 안좌하여 일찍 답서하노라. 중추절 가야산 퇴설(눈무더기)

그 해에 손뜨개질로 방석을 만들어 인연 있는 스님들께 선물을 했었다. 일타 스님께도 보내드렸는데 스님께서 방석을 받으시고 나서 보내신 서신이다.
평소 같으면 선물을 받으시고 바로 답장을 하셨을 텐데 이 서신은 선물을 받고나서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 보내셨다. 스님께서는 선물에 대한 인사를 바로 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계속 걸려있었던 것 같다. 서신 첫 머리의 ‘격조’라는 말에서 스님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을 터. 이래저래 설명 없이 ‘격조’라는 말 한 마디가 여러 말을 대신한다. 부처님이 들어 보이신 한 송이 연꽃처럼 스님은 ‘격조’라는 말로 대신하셨고, 나는 구구절절 많은 말에서보다 더 많은 뜻을 읽을 수 있었다.
인연에 시간이 쌓인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특히 큰스님들과의 인연에 시간을 쌓는 것은 그 자체가 공부였다. 서신의 글 한 자에 마음이 한 참을 머물고, 그 고요한 시간에서 마음은 깊어간다. 비록 한참 만에 받은 서신이지만 서신이 있기까지 스님은 늘 내게 안부를 준비하고 계셨고, 그렇게 내게 온 답장에서 나는 그 동안의 마음을 볼 수 있었다. 인연이 깊어간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서신 2〉

대원성 보살아,
삼륜(三輪)이 청정한 보시공덕을 아니 받을 수 없었지만 집수리가 거의 끝났기에 안심찮은 마음 가득하다. 지금 방안에는 도배를 하고 있고 밖에는 콩만 한 쪽 대문과 목욕탕을 세우고 나무 깐을 꾸리면 아주 끝나는 것이다. 푸른 산색(山色)은 문전에 가득하고 시냇물소리 귀결에 종쟁한데 차(茶)를 끓여 마시며 솔잎 씹는 맛 세상에 일등 가는 그 맛 아닌가! 더불어 오는 날을 기다리면서 이만 줄인다.  -6. 16 해인사 스님.

일타 스님이 지족암 계실 때다. 보수불사가 있었는데 연꽃모임 회원들이 불사에 동참했다. 불사가 거의 끝나갈 때 주신 서신이다. 이때도 마음이 조금은 급하셨던 것 같다.
고마운 마음을 하루라도 빨리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불사가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서신을 주신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불사가 모두 끝난 후 천천히 주셔도 될 일이지만 스님의 마음은 급했던 것이다.
그렇게 스님은 써야할 마음 앞에선 하루가 여삼추였던 것이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쓴다는 것은 세상을 나누어 갖는 일이다.

일타 스님(왼쪽)과 대원성보살이 함께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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