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참회의 정치

어느 정부위원회의 회의에서 특정 안건에 대해 팽팽하게 두 그룹으로 나뉘어 좀처럼 의견이 모아지지 않았다. 고심하던 위원장이 위원의 발언을 모두 녹음하여 회의록을 작성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다. 특정 집단에 편향된 발언을 이어가던 위원들이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지 않은 것이다. 녹음 이전과 이후가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결국 아주 쉽게 의견이 모아져서 회의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정부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았던 분의 고백이다.

모 대학교에서도 이와 매우 유사한 사건이 있었다. 어떤 쟁점 사항을 놓고 두 그룹이 치열하게 다투었다. 하다못해 회의 내용을 녹취하기로 하고 녹음을 하였는데 녹음 후 녹취록이 한 그룹의 마음에 안 들었나보다. 처음에는 1차 녹취록을 위원들에게 발송하였는데 그 다음에 일부 내용을 수정하였다. 결국은 문제가 있으니 녹취록이 없는 것으로 하자고 아예 녹음 등 모든 정보와 자료를 삭제했다. 다시 토론은 원점으로 돌아가 싸움이 해결되지 않았다. 만약 녹취가 보관되고 공개된다는 것이 확실했다면 그 이후 토론은 달라졌을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외부에 공개된다고 하면 사람은 아무래도 자기 말에 책임을 져야 하고 비난을 염두에 두기 때문에 말에 조심을 하게 된다. 틀린 말, 왜곡된 말, 억지 주장은 줄어든다. 물론 정치 토론을 보면 억지와 거짓말이 판을 치지만 더 많은 사람에게 공개 될수록 이러한 현상은 줄어든다. 온 국민에 공개되는 토론이나 회의에서는 가장 발언에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안거가 끝나고 대중이 모여서 안거 동안의 잘못을 참회하는 ‘자자(自恣)’에서 공개의 극치를 볼 수 있다. 이러한 참회는 스스로 하는 참회도 있지만 다른 사람이 지적해서 하는 참회도 있다. 대중에게 자신의 잘못을 물으면 다른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기 때문이다. ‘자자’에서는 세존부터 일어나 안거하는 동안 당신이 잘못하신 것이 없는지 대중에게 물었다. 경전에 의하면 한 번, 두 번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세 번 물으셨다고 하니 존경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세존 다음으로 사리푸트라가 여래와 대중에게 허물이 없었는지 물었다고 경전에 기록되어 있다. 법랍이 높은 비구부터 낮은 비구까지 모든 구성원이 참회하고 허물을 점검 받았다. 참으로 불교민주주의가 자유와 평등을 지향한다는 사실을 이 사례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붓다의 잘못부터 공개하고 모든 대중 구성원의 잘못이 공개되는 ‘자자’는 공개민주주의의 극치이다. 다른 안건과 달리 인간의 잘못이라는 주제는 가장 민감하고 마지막까지 감추어지는 내용이다. 허물까지 공개하는 승가는 더 이상 감출 것이 없다는 상징이기도 하다. 출가자가 잘못을 행했을 경우 거기에 해당하는 견책이 주어진다. 또한 잘못을 참회하면 세존이나 상대 비구가 용서하고 다시는 그러한 행위를 범하지 말 것을 가르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이러한 자자는 대중의 일부만이 모여서 하는 행사가 아니라 모든 대중이 빠짐없이 참석하여 치르는 정기적인 행사였다.

허물의 지적은 상가의 화합을 깨뜨리는 게 아니라 화합을 견고하게 하며 상가의 이익을 해치는 게 아니라 잘못을 고침으로서 상가에 이익이 되게 한다. 다만 허물의 지적은 자비로 하고 남의 허물을 들을 때도 자비의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 허물은 몸, 입, 뜻으로 지은 모든 허물이 해당되므로 거짓말은 물론이거니와 성내는 말까지도 들추어졌다. 이른바 허물을 들추는 데는 성역이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정치, 정책, 행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면 부패가 최소화되고 비효율이 감소하는 등의 효과가 있다. 무엇보다도 국민을 위한 행정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가 없다. 어떤 경우에는 단순히 정보를 공개하는데 그쳤는데도 그 효과는 놀라울 정도로 크다. 그러다보니 공개라는 가치는 정치와 행정에서 아주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정보공개가 법적으로 제도화되어 있지만 아직도 미흡하다. 법적으로 보장된 최소한의 권리마저 제대로 보장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예를 들어 어떤 정보는 부처가 자발적으로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어떤 국민이라도 공개하지 않은 부처에게 정보를 공개해달라고 요청하라 수 있다. 부처는 공개요청을 받으면 사생활 침해와 국가기밀 누설에 관련되지 않는 한 일정 기간 내에 공개해야 한다. 만약 공개를 거부할 때는 명백하게 이유를 밝혀야 한다. 다른 부처에서는 홈페이지에 자발적으로 공개할 정도로 아무 문제가 없는 정보인데도 부처에 따라서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공개를 꺼리는 경우가 있다. 이런 부처에 정보 공개 요청이 들어오면 거부할 타당한 이유가 없다. 이런 경우에 정보공개 요청자에게 담당 공무원이 전화를 해서 정보공개요청 자체를 없던 것으로 하고 싶으니 협조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정보공개요청이 있으면 일정 기간 내에 답변을 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아예 처음부터 정보공개요청이 없었던 것으로 처리하려는 것이다.

영국에서는 의회의원들의 상세한 지출내역을 인터넷에 공개해야 한다. 어떤 의원이 몇 월 며칠 몇 시에 어떤 식당에서 식사했다고 공개했는데 그것을 본 시민 한명이 마침 그날 그 시간에 자기가 그 식당에서 밥을 먹었는데 그 의원이 식사하지 않았다고 언론에 밝혀 그 의원이 곤경에 처한 적도 있다. 우리나라도 업무추진비를 모두 홈페이지에 상세한 지출내역까지 공개하도록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아무리 공익에 필요하다고 해도 사생활을 침해하고 국가기밀을 누설하는 공개는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하지만 공개로 얻는 공익이 어느 정도의 사생활 침해보다 더 클 경우 공개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핀란드에서는 모든 국민의 세금액수가 공개된다. 즉 옆집 사람이 세금을 얼마 납부했는가를 알 수 있다. ‘옆집 사장님은 돈 많이 버는 데 왜 이렇게 세금을 적게 내지?’라고 의문을 가진 이웃이 옆집 사람을 불성실 세금 신고로 고발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세금 정보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공개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보는데 시기상조일 수도 있지만 늦었다고 볼 수도 있다.

불교민주주의는 이처럼 공개 민주주의이지만 또한 토론 민주주의이기도 하다. 토론을 하는 사이란 알고 보면 좋은 사이다. 악화된 관계는 대부분 토론을 할 수 없을 정도의 관계이다. 천재의 독단보다 평범한 여러 명이 토론한 결과가 더 지혜로울 수 있다. 특히 정치, 정책, 행정 문제는 더욱 그러하다.

상가의 회의인 갈마(哲磨)에서는 상가 운영의 모든 구체적 사안에 대한 공개와 논의가 이루어졌다. 누구든지 이의를 제기할 수 있고 의견을 발표할 수 있었다. 갈마를 주제하는 갈마사가 대중 구성원 모두에게 의견을 물었기 때문이다. 모두 찬성과 반대 의견을 표명할 수 있고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었다.

인도의 강국이었던 마가다국은 밧지국을 정복하고 싶어서 세존에게 의견을 묻는다. 세존은 마가다왕의 사신이 한 질문에 직접 답하지 않고 아난존자에게 질문하고 답을 받아 냄으로서 간접적으로 마가다왕에게 의견을 전달한다. 세존은 밧지국 사람들이 자주 모여 토론하는 것을 높이 평가하였다.

연기법에 의하면 정치, 정책, 행정은 모두 한 두 가지 요인과 조건의 결합으로 발생하지는 않는다. 수많은 요인과 조건이 연기하여 오직 임시적으로만 발생하기 때문에 수시로 변하며 그에 대한 판단 또한 수시로 변할 수밖에 없다. 수많은 요인과 조건 중에서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그나마 일부에 불과한데 이것마저도 소수가 독점하고 국민에게 알리지 않으면 정치, 정책, 행정은 부패하고 비효율적이며 국민을 위하기보다는 소수를 위한 정치, 정책, 행정으로 전락한다.

수시로 변하는 요인과 조건을 소수의 사람만이 관찰하고 연구하는 것보다 다수의 사람이 관찰하고 연구하는 게 더 좋다. 모든 것이 공개되면 모두가 참여하고 연구할 수 있다. 처음에는 다소 속도가 느리고 비효율적으로 보일지라도 길게 보면 공개되고 모두가 참여하는 민주주의가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다. 모두에게 공개되어 모두가 논의에 참여하면 최종 결론에 대한 반발이 최소화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결론이 발표되면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않은 다수는 반드시 반발하게 되어 있다.

연기법에 의하면 나와 너는 별개가 아니고 나와 세상 또한 별개가 아니다. 따라서 닫힌 사회는 연기법에서 존재할 수 없는 사회이며 설사 존재한다고 해도 바람직하지 않다. 닫힌 세상이 아닌 열린사회는 공개되고 공개된 뒤엔 모두가 토론하는 사회이다. 보다 더 좋은 사회를 위해 칼 포퍼는 열린사회를 이야기했다. 과학과 기술의 세계에서는 한 명의 천재가 도약을 이루어낼 수 있지만 정치, 정책, 행정의 영역에서는 한 명의 천재가 수많은 사람의 집단지능(collective intelligence)을 이길 수 없다.

집단지능을 집단지성이라고 번역하기도 하지만 IQ를 지성지수라고 하지 않고 지능지수라고 하듯이 집단지능이라고 번역하는 게 맞다. 오늘날 인터넷에 의해 수많은 평범한 시민의 지혜가 하나로 모아져 집단의 IQ가 높아졌다. 정치, 정책, 행정은 몇 명의 천재에 기대는 것보다 댓글을 달며 좋은 글을 퍼 날리는 평범한 시민들의 집단지능에 의존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국민의 인드라망이 비록 법계의 지혜를 밝히지는 못할지라도 정치, 정책, 행정의 어둠에 희망의 빛을 비출 수는 있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