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부처님을 기다리며…

석존 입멸 56억여 년 후 도래
도솔천서 보살, 하생에는 부처
상생경서 하생경으로 도상 변화
한반도 전래 후 민중 신앙 정착?

돈황 막고굴 423굴의 '미륵경변상도' 벽화. 수나라 시기에 조성됐다. 도솔천에 머무르는 미륵불릐 모습을 묘사한 '상생경'이 도상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추대로 가면 미륵이 사바세계에 도래하는 '하생경'도상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지난 연재에서 불자로서 큰 욕심을 내어 부처님께 수기를 받아 다음의 먼 생에서는 부처로 태어나길 바란다고 했었다. 그러나 감히 흉내도 낼 수 없을 정도의 보시와 공덕을 수반하는 서원에 대해서 알고 나니 성불은 꿈도 꾸지 못하겠다. 그래서 차선으로 생각한 것이 이생에서 선업을 많이 쌓은 불자가 생을 마치면 갈 수 있는 곳인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가 주재하시는 극락정토(極樂淨土)와 미륵여래가 주재하시는 도솔천(兜率天)을 탐해 보려고 한다. 

먼저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륵을 미륵여래, 미륵부처님, 미륵보살, 미륵불, 자씨보살(慈氏菩薩) 등으로 칭하면서 왜 부처와 보살이라는 명칭을 혼용해서 쓰는지 궁금해 한다. 

‘미륵’은 산스크리트어 ‘Maitreya’를 음역한 것으로, 한역으로 자씨(慈氏), 자존(慈尊)이라 한다. 미륵이 가장 먼저 언급된 경전은 현존 가장 오래된 불전으로 알려진 〈집경(經集, Suttanipata)〉이다. 이 경전에서 미륵은 바바리(波婆梨, Bavari)의 열여섯 제자 중의 한 명인 메떼야(Metteya)라는 실존 인물로 등장하며, 석가모니 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이후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았다고 한다. 

미륵은 도솔천에 상주하면서 도솔천에 있는 천인들을 교화하고 있으시다. 그리고 다가올 미래에 즉 석존께서 입멸하신 후 56억 7천만 년이 지난 뒤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시어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하여, 세 차례의 설법으로써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龍華三會). 그래서 석존의 업적을 돕는다는 뜻으로 보처(補處)의 미륵이라 하며, 도솔천에서의 미륵은 보살의 모습으로서, 이 땅에 하생하여서는 부처의 모습으로 나타나시는 것이다.

지금 이 시간 미륵보살의 정토인 도솔천은 어떤 모습일까? 정말 청량한 바람이 풀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유리개울과 천녀들의 노랫소리가 가득한 곳일까? 도솔천의 모습에 관해서는 〈불설관미륵보살상생도솔천경(佛說觀彌勒菩薩上生兜率天經, 이하 상생경)〉에 아주 자세히 나와 있다. 〈상생경〉은 유송(劉宋)시대에 저거경성(沮渠京聲)이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 투르판(吐魯番, 高昌)에서 가져와 455년에 종산(鍾山)의 죽원사(竹園寺)와 정림상사(定林上寺)에서 번역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투르판이 〈상생경〉의 편찬지라는 연구도 있다. 

〈상생경〉에 의하면 도솔천은 천신 뇌도발제의 발원과 오백 만억 천인의 천관(天冠) 공양으로 도솔천궁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정음성을 비롯한 다섯 천신이 도솔천의 하늘에서 도솔천궁을 아름답게 장엄하며 유리 개울에는 연화 화생하는 천녀 및 기악 천녀가 있다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고 있다. 또한 보배를 공양하는 시방의 백천범왕과 오백억 옥녀가 도솔천을 더욱 성스럽게 하며, 연화대좌 위에는 가부좌한 미륵보살이 수많은 천신들에 둘러싸여 있다고 적혀있다. 

도솔천의 정경을 묘사한 현존 가장 이른 사례는 수대(隋代, 581~618)에 그려진 돈황 막고굴 417굴·419굴·423굴·433굴의 ‘미륵상생경변상도’이다. 화면 구성을 보면 보관을 쓴 미륵보살이 영락과 보배로 장식된 도솔천궁의 연화좌에 가부좌 또는 교각좌를 취하고 있으며, 그 좌우에 협시보살 및 기악보살·비천이 묘사되어 있다. 

이 가운데 막고굴 423굴과 막고굴 433굴은 미륵보살이 도솔천에 머무르는 장면과 미륵부처가 하생하여 용화수 아래에서 설법하는 장면이 하나의 화면에 표현되어 있다.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상생경〉과 〈하생경〉의 내용을 하나의 화면에 도해하였으며, 〈상생경〉의 배경인 도솔천의 정경이 더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미륵과 관련된 경변상도의 구성은 당대(唐代)에 들어오면, 초당시기(初唐, 618~712) 막고굴 329굴의 벽화처럼 상단의 상생경변상 도상에 비해서 하단의 하생경변상 도상이 더 큰 면적을 차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중당시기(中唐, 766~835)를 거쳐 만당시기(晩唐, 836~907)에 이르면 ‘미륵상생경변상도’는 형식화 되거나 ‘미륵하생경변상도’만을 묘사하게 된다. 

돈황 지역을 통해서 볼 때 도솔천에 태어나길 바라는 미륵상생 신앙이 반영된 ‘미륵상생경변상도’의 수가 점차 줄어든 반면에, 미륵이 이 땅에 내려와 중생들을 구제해 주길 바라는 미륵하생 신앙을 반영한 ‘미륵하생경변상도’가 유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죽어서 도솔천에 가길 바라기보다 지금 이 순간 눈앞에 직면한 어려움과 고통을 구원해 줄 미륵부처를 기다리는 심정은 1200년 전의 사람들과 현대인이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9세기 이후 중국 및 중앙아시아에서 쇠퇴한 미륵상생 신앙은 12세기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앞서 돈황지역의 벽화들에 도해된 도솔천의 정경들은 〈상생경〉에서 언급한 정황들을 뚜렷하게 묘사하고 있다고 볼 수 없는데, 투르판의 북쪽 천산 위구르왕국시기의 불교 사찰로 알려진 북정(北庭) 서대사(西大寺)의 ‘미륵상생경변상도’는 〈상생경〉의 내용을 그대로 그림으로 자세히 옮겨놓았다.

이 그림은 회랑을 가로로 길게 표현하여 상하 네 개의 장면을 구획하였고, 각각의 구획마다 중앙에 위치한 이층의 문루 및 단 위에 무릎을 꿇은 뇌도발제, 정음성, 백천범왕 등의 뒷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각 단 위의 무릎 꿇은 인물을 중심으로 공양천인, 기악천인, 보수(寶樹), 전각, 연화화생하는 천녀와 연못 등이 좌우대칭을 이루어 묘사되어 있다.

이처럼 〈상생경〉의 내용을 치밀하게 도해한 사례는 서대사보다 조금 늦은 시기에 서하(西夏)에서 1189년에 판각한 ‘관미륵보살상생도솔천경판화’와 문수산 만불동(文殊山 万佛洞) ‘미륵상생경변상도’에서도 찾을 수 있다.

기존의 연구에서 서대사의 ‘미륵상생경변상도’의 영향을 받아서, 서하에서 밑그림이 거의 같은 ‘미륵상생경변상도’를 제작한 것으로 보았는데, 이는 서대사가 상생경의 편찬지로 짐작되는 투르판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불교가 전래된 삼국시대 초기부터 미륵신앙이 크게 성행하였으며, 웬만한 마을에는 미륵이라 불리는 돌부처가 거의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민중 속에 깊이 뿌리내려 현재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불화의 경우 〈상생경〉과 관련된 그림은 현존하지 않으며, 〈하생경〉 및 하생신앙과 관련된 그림들이 고려시대부터 제작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처음부터 한국에서 미륵하생 신앙만 유행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고려시기에 제작된 몇몇 ‘미륵하생경변상도’를 통해서 한국인들 역시 이 땅에 미륵부처가 오시기를 간절히 기다렸음을 짐작하게 한다.

〈상생경〉의 내용 중에 “중생들이 그들의 나쁜 업을 깨끗이 하고, 부처님을 생각하고, 부처님 법을 생각하고, 승가를 생각하고, 도솔천을 생각하고, 계를 생각하고, 보시를 생각하는 육사법을 행한다면, 반드시 도솔천에 태어나서 미륵보살을 만날 것”이라고 도솔천에 태어나는 방법이 구체적으로 적혀있다. 

이렇듯 방법은 알지만 행하기 어렵고 또한 아직은 이생에서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일들도 많으니, 필자 역시 미륵보살이 이 땅에 내려오셔서 108가지의 환난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주시길 두 손 모아서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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