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보유전] 6. 지장보살도와 삽살개
[성보유전] 6. 지장보살도와 삽살개
  • 이상근/ 불광출판사 편집주간
  • 승인 2020.03.20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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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보살과 삽살개 함께 있는 이유는?  

지장전·시왕전 합쳐진 ‘명부전’
민중들 명복 비는 공간 절실

지장보살·시왕 배치가 일반적
도상 ‘금모사자’ 한국 삽살개
지장보살의 화신 김교각 스님
中유학에 데려간 것이 기원돼

사찰에서 가장 복잡한 전각 중 하나가 ‘명부전(冥府殿)’이다.

지장보살의 협시는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다. 다시 그 좌우에 열 분의 시왕이 있고 시왕 사이사이에는 시봉을 드는 동자가 또 열 명 배치된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시왕을 대신하여 심판을 하는 판관 2명, 기록과 문서를 담당하는 녹사 2명이 있고 문의 입구에는 장군 2명이 마주보고 지키고 섰다. 시대에 따라 도교의 장군상이 금강역사상으로 교체된다. 모두 29체의 존상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죄인을 잡아다 대령하는 졸리(卒吏)까지 있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되면 31체다. 

물론 모든 사찰의 명부전이 이런 형식을 유지하고 있는 건 아니다. 명부전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지장전처럼 지장보살과 도명존자 그리고 무독귀왕만 모시고 있는 사찰도 많다. 또 시왕 옆의 동자는 생략된 경우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첫 번째 시왕과 두 번째 시왕 옆에는 동자가 없어 동자가 총 여덟 명 모셔진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 사찰 거개가 그렇듯이 역사나 습합 또는 우여곡절로 모셔진 존상이나 위치가 제각각이다.  

명부전, 왜 복잡해졌을까?
우리나라에서 명부전이 이렇게 복잡한 구조를 갖게 된 건 고려 말을 넘어서 조선시대 들어와서다. 엄밀히 얘기하면 명부전이 복잡해진 게 아니라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명부전이 사찰에 들어선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명부전은 두 전각이 합쳐진 ‘통합 전각’이다. 바로 지장전과 시왕전이다. 지장전에 모셨던 불상과 시왕들이 하나의 전각에 더부살이를 하면서 전각이 복잡해졌다.

조선시대에는 억불의 시대였고 재정 역시 넉넉하지 않았다. 있던 전각도 없애야 할 판이었는데 새로 지어서 그 수를 더 늘릴 수가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일정한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는 지장전과 시왕전이 합쳐진 것이다.

그렇다고 이 전각을 짓지 않을 수도 없었다. 찾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전쟁과 대기근이 징검다리처럼 지나간 자리에는 제 명을 다하지 못하거나 억울하게 죽어나간 사람들이 많았다. ‘명복’을 비는 공간이 절실히 필요했다. 

헷갈리는 시왕의 배치 
중국에서 지장신앙이 대유행 한 건 7세기부터로 알려져 있다. 정권 교체가 잦았던 시기에 정토 신앙과 연계돼 몇 차례 대유행을 한다.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명한 지장보살도들은 10~11세기의 것들이 많다. 

이것들을 중심으로 살피면서 그 안에 담겨 있는 흥미로운 역사를 하나 짚어보자. 

먼저, 프랑스 기메동양박물관에 있는 〈지장시왕도〉다. 부처님 좌우에 책상을 앞에 두고 시왕들이 앉아 있다. 부처님의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① 진광왕(秦廣王) ② 초강왕(初江王) ③ 송제왕(宋帝王) ④ 오관왕(五官王) ⑤ 염라왕(閻羅王) ⑥ 변성왕(變成王) ⑦ 태산왕(泰山王) ⑧ 평등왕(平等王) ⑨ 도시왕(都市王) ⑩ 전륜왕(轉輪王) 순이다. 

망자는 49일까지 7일 단위로 전생에 지를 죄를 심판받게 되고(①~⑦) 또 100일 되는 날, 그리고 소상과 대상에 각각 평등왕(⑧)과 도시왕(⑨) 그리고 전륜왕(⑩)에게 심판을 받게 된다. 

10세기 둔황에서 발굴돼 지금은 영국박물관에 있는 〈지장보살과 시왕도〉도 역시 마찬가지다. 기메박물관 소장의 〈지장시왕도〉와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고 느낀 독자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는 전각이나 불화의 시왕 배치와 다르다. 우리는 지장보살의 왼편으로 ①→ ③→ ⑤→ ⑦→ ⑨, 지장보살의 오른쪽으로 ②→ ④→ ⑥→ ⑧→ ⑩ 의 순서로 배치하기 때문이다. 

여하튼 비슷해서 알기 어렵다거나 헷갈리는 경우는 ⑤염라왕을 찾으면 된다. 염라왕은 장신구나 가지고 있는 도구(?)가 다르다. 하나는 책 모양의 관을 머리에 이고 있는 모습이다. 망자의 잘못을 일일이 적어놓은 책이라고도 하고 혹은 〈금강경〉이라고도 한다.

여하튼 책 모양의 관을 쓰고 있다. 이는 기메박물관 소장 불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 망자를 업경대에 비춰 살펴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영국박물관 소장 불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분이 지장보살의 왼쪽을 기준으로 세 번째에 있는지 다섯 번째에 있는지에 따라 시왕을 시계방향으로 배치했는지, 좌우로 배치했는지 알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조선 시대 〈지장시왕도〉를 보면 머리에 책을 쓴 염라왕이 부처님의 왼쪽 세 번째에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그림에서는 1번에서 10번 시왕이 시계 방향으로 배치된 게 아니라 지장보살의 좌측은 홀수로 우측은 짝수로 배치된 걸 알 수 있다. 

사자가 아니라 삽살개
그런데 시왕의 배치만큼이나 더 이상한 게 하나 있다. 기메박물관 소장 그림이나 영국박물관 소장 그림 옆에 이상한 동물이 하나 앉아 있다. 불교미술을 전공한 사람은 이를 두고 ‘금모사자(金毛獅子)’라고 한다. ‘금색털을 가진 사자’쯤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이 동물은 ‘사자’가 아니라 ‘개’다. 그것도 우리나라 경주에 뿌리를 두고 있는 삽살개다. 지장시왕도에, 그것도 왜 중국에서 그려진 그림에 삽살개가 있을까? 이야기의 전말은 이렇다.
그림 속 지장보살은 신라의 왕자이기도 했던 실존 인물 김교각 스님이다. 스님의 법명이 ‘지장’이었고 중국에서는 이분을 ‘지장보살’ 혹은 지장보살의 ‘화신’으로 인식하고 있다. 10세기 이후에 그린 불화의 지장보살은 모두 김교각 스님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김교각 스님이 신라에서 중국으로 넘어갈 때 가지고 간 여러 물건이 있다. 오차송이라는 소나무 종자, 황립도라는 볍씨, 금지차라는 신라 차, 그리고 흰 삽살개 한 마리다. 이 개는 선청(善聽 혹은 체청諦廳)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 개는 김교각 스님이 입적할 때까지 충실히 스님을 따르고 지켰다고 한다. 그래서 9세기 이후 중국에서 그려진 지장보살도에는 대개 이 선 청이 한켠에 자리잡고 있다. 고려 말~조선 초 우리나라에서 그려진 지장보살도에도 분명히 개의 모습이 등장한다.

귀신 쫓는 삽살개
그런데 왜 삽살개였을까? 삽살개는 진돗개, 풍산개 등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토종견이다. 옛날 사람들은 개가 액(厄)을 막고 죽은 이의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해 주는 길잡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이유로 김교각 스님이 자신의 애견을 데려 간 건지는 몰라도 어쨌든 지장보살의 이미지와도 잘 맞아 떨어진다.  

이밖에도 민간에서는 삽살개 근처에는 귀신이 얼씬도 못한다고 믿어왔다. 또 삽살개는 얼핏보면 어수룩해 보이지만 주인에게 몹시 충직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영특하다고 소문이 나 있다. 

이제는 그림 속의 동물이 사자가 아니라 ‘삽살개’라는 것을 아는 불자들도 많다. 지난 몇 십 년 사이에 중국 성지순례가 활성화 되면서 지장성지인 구화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그곳 박물관에 관람하면 김교각 스님의 이야기뿐 아니라 그림에 함께 있는 것이 ‘개’라고 분명히 밝혀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불교미술사를 강의하거나 저술한 ‘교수님’들 중에는 아직도 굳이 ‘사자’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분들이 많다. 현장에 가보지도 않았고 또 ‘개’라는 상상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심지어 한발 더 나가 ‘문수보살의 화신’이라는 설명이 붙은 곳도 있다. 아마 사자를 타고 다닌 문수보살에서 착안한 모양인데 ‘남대문 문턱이 얼마나 높은지 아느냐’고 떠들고 다니는 격이다. 

그래도 얼마 전부터는 양심에 찔렸는지 슬슬 ‘사자 모양의 개’라고 설명하는 이들이 있다. 알긴 알지만 스승의 설명을 정면에서 거스를 수 없으니 말을 꼬아놓은 것이다. 

이런 ‘역사’를 모르다 보니 그리는 사람도 헷갈리는 모양이다. 문제를 하나도 안 풀면 ‘나는 틀린 게 없다’고 주장할 수 있는 법. 시왕도에 아예 사자든 삽살개든 그리지 않는 형식이 오래 계속됐다. 조선시대 〈지장시왕도〉에는 아예 개든 사자든 그려놓은 걸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물론 김교각 스님을 그려넣은 게 아니라 경전 속의 지장보살을 그려넣은 것이라고 우긴다면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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