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한송이 꽃이라네

글 그림 진광/조계종출판사 펴냄/2만2천원

조계종 교육부장 진광 스님은 수행자와 함께 여행가란 이력을 붙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세계 여러 나라를 만행했다. 내가 개인적으로 스님을 안 것은 25년 전. 친한 회사 선배의 속가 친구로 소개 받았다. 그때부터 스님은 좀 특별했다. 결제때는 선방서 가부좌를 틀다가, 어김없이 해제가 지나면 걸망지고 떠났다. 그것도 드넓은 세계로. 처음에는 단순히 바람쐬러 가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진광 스님의 해외 순례는 그 이후로도 지금까지 30여 년 동안 계속되고 있다. 이번 책은 특히 2013년부터 교육원 순례를 7년간 기획하고 진행한 저자의 서화집이다.

저자, 2013년부터 7년간 순례 기획
수좌 때 부터 130여 개국 만행 순례
순례 순간 간직코자 펜화 그림 시작
짧지만 깊은 울림준 이야기 ‘인상적’

촌철살인의 짤막한 글과 투박하지만 담박한 펜화 속에서 한 순간도 무심히 흘려 보내지 않겠다는 구도자의 시선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여행을 ‘구도의 길’이자 ‘깨달음의 길’로 삼은 진광 스님에게 시방세계는 곳곳이 꽃밭이요, 하나의 큰 꽃이다. 말 그대로 저자는 해외 순례를 통해 ‘세계일화’의 안목을 키운 것 같다. 이렇게 그동안 순례 중에 보고 느낀 것들을 그림으로 그리고 글로 정리하며 저자는 운수납자의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왔다. 늘 일탈과 파격을 꿈꾸고 불가능한 꿈을 꾸면서 그것을 실현시키며 살아가고자 한다고 저자는 서문에서 밝힌다. 삶의 화두는 언제나 길과 희망, 그리고 깨달음과 회향이라는 게 진광 스님의 생각이다.

2013년부터 교육원 소임을 맡아 교육원 순례를 맡아온 진광 스님은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의 터줏대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방 정진 시절부터 만행 삼아 순례하며 세계 130여 개국을 여행한 행운을 누린 까닭에 이른바 ‘밥값’겸 ‘재능기부’를 하고자 해외 순례를 처음 기획한 것이 벌써 7년째다. 그동안 스님이 국내외 순례를 갈 적마다 새롭게 보고, 듣고, 경험하며 느낀 것들을 벼 이삭을 줍는 마음(滯穗遺秉)으로 한데 모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매년 해외 순례를 기획하고 동행하며 스님은 작은 수첩이나 다이어리 등 여백이 있으면 가리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틈틈이 순례 중에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 일기장이 무려 열 권이 넘는다. 그 안에 담긴 그림 한 점 한 점에는 짧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깨달음의 순간을 날카로운 펜 끝에 담아낸 스님의 그림은 어느 것 하나 아깝지 않은 것이 없다. 수백 장의 그림을 한 점 한 점 추려 모으고 글을 다듬어 한 권의 책으로 묶는 작업 또한 스님이 걸어온 순례의 역사를 아우르는 작업인 만큼 쉽지는 않았다.

진광 스님은 “화가나 눈 밝은 이가 본다면 실소를 금치 못할 정도로 졸렬하고 황망할 것이다. 나 또한 한없이 부끄럽고 욕되기만 하다”며 “그렇게 그리고 모은 서화집이 그러나 홀로 즐길 뿐이지 남에게 보여줄 만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라고 스스로를 낮추지만 얼핏 보기에도 스님의 그림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펜화가인 김영택 화백은 스님의 그림을 “1998년 인도 배낭여행부터 그리기 시작한 그림 실력이 20여 년이 넘는 동안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면서 ‘그림치’의 그림이라고 놀리면서도 “이 그림치의 그림을 계속 보노라면 지식과 가식의 벽이 허물어지고 천진무구한 어린이 세계로 이끌려 들어가는 듯”하다고 이중섭과 장욱진 화백의 그림이 떠오른다고 극찬할 정도다.

진광 스님 순례기는 한마디로 해외 순례의 산 역사라 할 만하다. 책 속에는 각각의 순례지에서 만난 그림 같은 풍경들뿐 아니라 스님이 처음 해외 배낭 여행을 가게 된 계기부터 인도, 중국, 일본은 물론 부탄, 실크로드, 티베트 수미산 등 혼자서는 찾아가기 어려운 불교 유적들을 순례하며 경험한 이야기, 미국과 러시아, 기독교 문명을 대표하는 이스라엘 등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정을 나눈 이야기들이 가득 들어 있다.

아프리카의 구두닦이, 잔지바르섬의 흑인 청년 미셸, 러시아 딸내미 소피, 모로코 무슬림 여행자 등 만나는 이들의 애환과 즐거움을 미소와 자애의 마음으로 만난 스님에게는 열린 마음으로 누군가와 교감하는 그 순간도 수행이 된다. 그래서 자연과 문화를 마주하고 오감으로 소통하는 스님의 순례길은 독자들에게는 곧 깨달음의 계기가 된다.

1998년 해인사 선원 하안거 중에 화엄사 우석 스님이 인도 배낭여행 이야기를 하며 “스님은 아마 못 갈걸”하는 한마디에 해외 배낭여행을 결심한다. 도반 스님의 한마디가 여행의 시작이 된 셈이다. 2014년 순례 길에는 세월호 참사 소식을 접하고 전날 묵었던 소도시에서 국화를 모조리 사 모은다. “염병할 놈의 세상”이라 분통을 터뜨리며 눈물의 추모재를 봉행하는 모습도 손에 잡힐 듯 스님의 펜 끝에서 되살아난다. 아프리카 빅토리아 폭포, 러시아 바이칼 호수, 돈황 막고굴, 티베트 카일라스 성산, 페트라 알카즈네성전, 예루살렘 통곡의 벽, 이집트 룩소르, 고비사막 가욕관……. 스님에게는 가는 곳마다 성소요 성지이며 상상의 천국이다. 500여 쪽이 넘는 두툼한 두께에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단 몇 쪽을 보더라도 절로 빨려 들어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된다.

학창 시절 한 번도 미술이나 예술 방면에 소질을 드러내거나 칭찬을 받아본 적이 없는 스님이 이같이 그림책을 펴내는 ‘무모한’ 일을 벌인 것은 오로지 순례길의 소중하고 의미 있는 아름다운 순간들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픈 마음에서이다. 아울러 불자가 아니더라도 불교를 쉽게 이해하고 함께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작은 선물이기도 하다. 또 누구나 이렇게 나름대로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책을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스님은 책을 묶어 펴낸 이유를 밝힌다.

▲저자 진광 스님은?

강원도 홍천서 태어나 양구서 자랐다.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1993년 겨울에 충남 예산의 덕숭산 수덕사로 입산해 법장(法長)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원담 노스님을 3년간 시봉하다 전국 선원서 20여 안거를 성만했다. 1998년부터는 해제철마다 전 세계를 배낭여행하면서 이후 130여 개국을 유력(遊歷)했다. 2010년 아프리카 여행 후 귀국해 조계종 교육원 불학연구소 사무국장으로 임명됐으며, 그 후 10년여간 연수국장, 교육국장, 교육부장 등 소임을 보며 수도승으로 살고 있다. 2012년 경주남산불적답사를 시작으로 2013년부터 해외 순례를 기획하고 진행하였다. 7년간 2300여 명 스님들이 순례에 동참했다.

2016년부터 〈불교신문〉 논설위원으로 ‘천수천안’과 ‘수미산정’에 칼럼을 써오고 있으며, 2018년에는 〈법보신문〉에 ‘동은·진광 스님의 사소함을 보다’를 1년간 격주 연재했다. 2020년부터 〈현대불교신문〉에 ‘진광 스님의 길 위의 풍경들’을 격주로 연재중이다. 저서로는 〈나는 중이 아니야〉와 교육원 이름으로 나온 〈순례, 세상을 꽃피우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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