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소식으로 뉴스 도배
불안·안심에는 두려움 전제돼
대중생활 속 개인 위생은 필수

온라인에 코로나19 정보 범람
확인되지 않은 내용도 대다수
대중 두려움 조장하지 않아야

알지 못해 두려움 일어나지만
이성적인 대처법은 이미 있어
불안보다 몸의 위생에 신경을

매일같이 코로나19 확진자 숫자가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이 뉴스의 메인을 차지한다. 그리고 그런 뉴스를 접하면서 관계 당국의 대처나 상황에 대한 불안과 안심이 사람들 사이에 교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불안이든 안심이든, 거기에는 두려움이 전제되어 있음도 부정하기 힘들 것 같다. 이럴 때일수록 제대로 알고 제대로 대처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승가의 공동체 생활을 오랫동안 지향해온 우리 불교 역시 공동체의 살림살이에서 가장 기본적인 위생관리의 중요성을 잊지 않고 강조해온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마하반야경(摩訶般若經)>에는 보살마하살은 입는 옷과 침구를 더럽게 하지 않고 깨끗하게 하기를 즐기므로 병이 적으니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보살마하살이기 때문에 병이 적은 것이 아니고, ‘보살마하살이 위생관리를 하기 때문에병이 적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병이 없을 수는 없다. 인간으로서 사대육신을 가졌는데, 병이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병든 자를 위해서 적절한 대처방법이 설명된다. <금광명경(金光明經)>에는 계절을 따라 오근(五根)의 사대(四大)가 뒤바뀌어 늘거나 줄거나 함으로써 몸에 병이 나게 된다. 그러므로 병들었을 때에는, 좋은 의사에게 보여 적절한 시기에 잘 다스려 사대(四大)를 조화시키고, 병을 따라 음식을 조장하며, 약을 먹도록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수행으로 병을 다스리라고 요구하지도 않고, 기도로 병을 다스리라고 요구하지도 않는다. 병에 적절한 합리적인 대처를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어떻게 보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수행이고, 기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이나 SNS 등을 통해서 코로나19 관련 정보 역시 범람한다. 지방의 크지 않은 도시에 거주하는 필자의 경우에도 가장 많은 정보를 접하는 것은 역시 SNS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 혹은 SNS를 통해 전파되는 정보들의 경우, 정확하지 않거나 부적절한 정보인 경우도 허다하다. 그리고 정확하지 않거나 부적절한 정보는 혼란을 초래하고, 나아가 두려움을 조장하기까지 한다.

살아가면서 맞닥뜨리는 두려움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알기 때문에 일어나는 두려움이고, 하나는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두려움이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기 때문에 생겨난 두려움은 대부분 그 대처방안에 따른 행동 역시 분명하기 마련이다.

코로나 19와 관련해서 최근 증폭되는 불안감의 많은 부분들은 아는 데서기인하기보다는 알지 못함에서 기인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전염원인 바이러스는 눈에 보이지 않고, 최근 급속한 확산의 매개가 된 집단의 경우도, 사회적으로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인적 정보들을 공개하지 않아서 또 다른 불안감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가족 내부에서조차 해당 집단의 구성원인지 여부를 알 수 없다고 하니, 그 폐쇄성의 심각함이 사회 일반의 상식을 넘어선 상태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폐쇄성이 다시 한 번 사회 전반에 불안감을 증식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한다.

불교는 고래로 늘 앎에 의거한 대처를 강조해왔다.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대처는 더 큰 화를 부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앎의 영역은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역시 각각이 다르기 마련이다. 몸의 병은 의사에 의지해서 극복해야 하는 것이고, 마음의 병은 가르침에 의지해서 극복해야 하는 법이다. 마음의 불안보다 몸의 위생에 더욱 힘쓸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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