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손, 중생을 보듬다

천수관음 도상 힌두·중앙亞 기원
중국 쓰촨 와불구 천수관음 ‘最古’
천수경 등 천수관음 경전 다양해
韓 천수관음도상, 선재동자 확인
화엄경 입법계품에 근거해 조성

고려불화 ‘천수관음도’의 모습이다. 아래 〈화엄경〉의 선재동자가 확인된다.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필자가 다치거나 아플 때 할머니께서는 ‘나무관세음보살’을 무한 반복하셨다. 할머니께 누구든지 곤경에 처했을 때 관세음보살님을 찾으면 언제 어디서든 나타나시어 도움을 주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관세음보살은 만화영화의 ‘로봇태권 브이’나 ‘마징가 제트’ 비슷한 힘이 센 전지전능한 존재로 인식되었다.

종종 할머니의 손을 잡고 강원도 치악산의 작은 암자에 오르며 뜻 모를 “정구업진언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를 따라하고, 일반적인 관세음보살보다는 천개의 눈과 천개의 손을 갖추신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이 더 힘센 분이라며 천수관음을 더 좋아했었다.

유년기를 지나 대학원에 진학해 불교미술을 공부하면서, 뜻도 모르면서 〈천수경〉을 외우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웠고 한국불교와 천수관음은 매우 밀접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천수관음은 불화와 불상으로도 많이 존재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관음의 지물이나 주변의 인물들이 달라서 의문점이 생긴다.

천수관음 도상의 기원에 관해서는 기존의 두 가지 설이 존재한다. 첫째, 인드라 신이나 비슈누, 쉬바 같은 힌두의 신들이 불교적으로 변용된 도상으로 굽타왕조 이후 당시의 힌두교도가 신봉하던 여러 신들이 대량으로 불교에 유입되면서 7세기 이후 밀교에서 완성된 것으로 보는 견해이다. 둘째, 천수관음 관련 경전들이 대개 서역(西域) 즉,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성립된 것이므로 천수관음의 도상 역시 중앙아시아에서 성립되었다고 보는 견해이다.

송대에 조성된 돈황 막고굴 76굴의 ‘십일면팔비관음도’. 〈천수경〉을 바탕해 조성됐다.

천수관음이 가장 성행했던 중국의 경우 쓰촨성(四川省) 청량산(淸쏐山)의 천수관음이 가장 이른 사례로서 약 6세기 북주시대에 조성된 것이라 알려져 있고, 인도 승려 구다제파(瞿多提婆)가 당 무덕연간(武德年間, 618~626)에 그림과 경전을 진상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물론 당시의 조각이나 그림이 남아있지 않아 형상을 짐작할 수는 없지만, 이상의 기록으로 볼 때 적어도 6~7세기 무렵에는 중국에 천수관음의 도상이 유입되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중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이른 천수관음으로는 8세기 전반에서 중엽 경에 조성된 쓰촨성 와불구(臥佛溝)의 천수관음이 알려져 있다.

천수관음에 관해 언급한 경전은 △천안천비관세음보살다라니신주경(千眼千臂觀世音菩薩陀羅尼神呪經, 653년, 지통 譯) △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千手千眼觀世音菩薩廣大圓滿無킟大悲心陀羅尼經, 655년, 가범달마 譯) △천안천비관세음보살모다라니신경(千眼千臂觀世音菩薩읾陀羅尼身經, 709년, 보제유지 譯) △千手觀音造次第法儀軌(千手觀音造次第法儀軌, 8세기 전반, 선무외 譯) △金剛頂瑜伽千手千眼觀自在菩薩修行儀軌經(금강정유가천수천안관자재보살수행의궤경, 746~774, 불공 譯) △천안천비관세음보살대비심다라니경(千眼千臂觀世音菩薩大悲心陀羅尼經, 770년경, 불공 譯) △섭무애대비심다라니경(攝無킟大悲心陀羅尼經, 8세기 중반~8세기 후반, 불공 譯) △불설대승장엄보왕경(佛說大乘莊嚴寶王經, 천식재 譯)△천광안관자재보살비밀법경(千光眼觀自在菩薩秘密法經, 삼매소부라 譯) △능엄경(반자밀제 譯) 등 다양하다.

언급한 경전의 내용에 따르면 천수관음은 총 천 개의 손 중에서 8~46개의 대수(大手)를 지니며, 25~40개의 지물을 가지고 있다고 서술되어 있다. 이를 토대로 기존의 연구는 천수관음의 신체적 특징 및 지물, 권속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으며, 한국 역시 이와 같은 방향의 연구가 이루어져 왔으나 현존 작품이 거의 없기 때문인지 관음의 한 종류인 변화관음으로서 관음연구의 작은 부분을 차지해 왔다.

기존에 천수관음에 관해서는 막연하게 밀교계 관음에 속한다고 언급되어 왔지만, 중앙아시아지역부터 한국에 현존하는 천수관음을 도상학 즉 경전의 내용과 도상에 근거하여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 계열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중국 쓰촨성 와불구에 잇는 천수관음상부조.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천수관음이다.

첫째, 〈천수경〉을 도상학적 근거로 하는 천수관음이다. 〈천수경〉에는 다라니를 설하는 목적과 40수의 지물이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어 기존의 연구에서 천수관음의 도상과 가장 밀접한 경전으로 언급되어 왔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송대에 그려진 돈황 막고굴 76굴의 〈십일면팔비관음도(十一面八臂觀音圖)〉를 꼽을 수 있다. 물론 이 작품의 경우 천수가 모두 표현되거나 40수의 지물이 모두 그려져 있지는 않지만, 화면 중앙 십일면팔비관음의 좌우로 〈천수경〉에 언급된 십오종악사(十五種惡死, 열 다섯 종류의 나쁜 죽음) 중에서 △굶주려서 죽지 않는다(不令其飢餓困苦死) △군대에서 서로 죽임과 죽음을 당하지 않는다(不爲軍陣相殺死) △독약으로 죽지 않는다(不爲毒藥所中死) △몸에 나쁜 병이 들어 죽지 않는다(不爲惡病纏身死) △자신의 몸을 해쳐서 죽지 않는다(不爲非分自害死)의 장면과 방제가 남아있어 〈천수경〉에 근거하여 그려진 것임을 알 수 있다.

둘째, 8세기 전반에 한역된 〈천수관음조차제법의궤〉이다. 천수관음은 물론 밀적금강(密跡金剛)부터 마지막 28부의 권속까지 상세히 표현되어 있다. 천수관음을 중심으로 28부 권속이 모두 묘사된 대표적 사례로 9세기에 제작된 쓰촨성 단릉(丹稜) 전산(鄭山) 64호 천수관음부조가 있다.

셋째, 〈묘법연화경〉 권7 ‘관세음보살보문품’이다. 이 경전에서는 천수관음이 중생들이 겪는 고통 및 온갖 재난과 환난의 구원자로 대비심을 극대화한 존상으로 서술되어 있다. 이를 근거로 한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앞서 언급한 쓰촨성 와불구의 천수관음상이 있는데, 이 작품의 경우 천수관음의 좌우에 천수관음이 내려주는 감로를 받는 아귀와 금전을 받는 가난한 노인인 궁수가 조각되어 있어, 중생들의 고통을 구원해 주는 천수관음의 성격을 구체적으로 시각화한 것으로 보인다.

넷째, 〈화엄경〉 ‘입법계품’이다. 관음이 선재동자의 구법 여행에 등장하는 53선지식 중 스물여덟 번째 선지식으로 등장한다.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고려 14세기 〈천수관음도〉를 보면 선재동자가 바라보고 있는 관음이 천수관음으로 표현되어 있어 관음을 대신해서 천수관음이 넓게 신앙화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연화사(蓮花寺) 〈천수관음도〉, 표충사 〈천수관음도〉 등이 있다. 

다섯째, 밀교경전 태장계(胎藏界) 만다라(曼茶羅) 허공장원(虛空藏院)의 천수관음을 근원으로 하는 도상이다. 이 천수관음 도상의 경우 바수선(婆藪仙)과 공덕천(功德天)을 좌우 협시로 하고 있으며, 그 외의 다수의 권속들 역시 태장계 만다라와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다. 중국 신장성 위구르자치구 투르판 고창고성(高昌古城)에서 출토되어 현재 러시아 에르미따쉬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천수관음도〉, 돈황 막고굴 148굴의 〈천수관음도〉(8세기), 돈황 유림굴 3굴의 〈천수관음도〉 등이 이 계열에 해당한다.

이처럼 천수관음은 다양한 지물과 여러 권속을 거느린 모습으로 표현되어 왔고, 지역적·시대적 특징을 잘 반영하여 중생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현존하는 유물을 기준으로 보면 한국의 천수관음은 〈화엄경〉의 ‘입법계품’을 표현한 사례에 해당이 된다. 이러한 배경에는 한국의 중세 불교가 화엄사상이 고조되었던 시기였을 뿐만 아니라, 밀교의 도상이 적극적으로 유입되지 않았음에 있겠다.

오늘도 천수관음보살은 고통만큼 욕심도 많은 중생들의 바램을 해결해 주시려면 천개의 눈과 천개의 손도 부족하지 않으실까 염려가 되면서, 여기에 개인적인 소망을 얹어 〈천수경〉의 첫 구절을 외우며 병중 아버지의 쾌유를 빈다.
“정구업진언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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