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스트코칭을 마무리하며

풍경 하나

한밤중에 물구나무를 서본 적이 있나요?

두 팔을 땅에 대고 거꾸로 몸을 세우는 물구나무, 구도자의 자세로 불릴 만큼 쉽지 않은 자세입니다.

벽에다 다리를 기댄 후 차츰 발을 떼는 훈련을 하면서 꼿꼿하게 서보는 방법이 있는데 요즘은 동네마다 있는 생활체육 공원에 물구나무를 서게 하는 운동기구가 있어 쉽게 해볼 수 있습니다. 팔을 땅에 바로 붙이지는 못하지만 다리를 하늘을 향해 똑바로 세우고 얼굴을 땅바닥 가까이로 대는 이 자세는 의외로 몸과 뇌에 신선한 느낌을 줍니다.

위하수 증세로 가끔 위통을 겪다가 의사의 조언에 따라 물구나무를 해보았습니다. 종일토록 직립하는 몸속에 뭉쳐서 버티고 있던 내장이 순간 그 꼬임을 풀고 편안해하는 기분이 전해집니다. 꽉 찬 보자기를 풀어주어 제대로 숨을 쉬는 듯한, 한 순간 명징하게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을 맛본 후 자주 하게 되었습니다.

한밤에 공원에 나가 해본 적이 있었지요. 기구에 발을 고정하고 머리가 밑으로 천천히 내려갈 때 겨울나무의 마른 가지와 이파리가 한 무리씩 눈에 들어오면서 그 사이로 별이 보입니다. 나무를 올려다보지 않고도 별과 함께 떠있는 나무의 몸이 나에게로 옵니다. 서 있거나 걸을 때 보지 못하던 풍경입니다. 머리와 다리의 자리를 바꿔 거꾸로 했을 뿐인데 미처 보지 못해 모르던 것을 알게 되는 순간입니다.

인생 새 장 여는 3가지 풍경
관점바꿔 인생이면 읽어내기
사랑으로 베푸는 일 행하기
생 껴안고 충실히 살아가기

이런 순간을 ‘관점 바꾸기’라고 합니다. 익숙한 시각과 방향에서 벗어나서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죠. 거꾸로 보아야 그 실체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을 손에 쥐게 됩니다.

추운 밤 별을 보며 물구나무를 하고 있는 그 시간에 존재의 생생함을 느끼게 됩니다. 팔이나 다리에 적절한 힘을 주고 머리의 각도를 알맞게 유지하려 애써야 하기 때문에 온 정신을 몸에 집중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 몸 각 부위에 어떤 느낌이 오는지 집중하게 됩니다.

요가에서는 물구나무를 도립선(倒立禪 거꾸로 선 자세의 명상)이라 하여 최상의 명상 자세라고 하지요. 거꾸로 선 상태에서 오래 있으면 뜨거운 머리가 아래로 가고 차가운 발이 위로 가는 수승화강(水昇火降)의 상태를 이룬다고 합니다. 뜨거운 불이 위로 가고 물은 아래로만 가는 평소의 서있는 상태와는 반대가 되어 불이 물을 데우는 생명력의 조화를 이루게 된다는 것입니다.

풍경 둘

이 해가 가기 전에 새로운 가족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몇 해 전부터 손녀 아이가 소원하던 강아지를 입양하기로 했습니다. 손녀에게 제1양육자의 임무를 다하겠다는 다짐을 받긴 했지만 결국에는 제 손을 가장 많이 타지 않겠습니까? 그다지 살갑지 않은 성격이라 엄두를 못 내었는데 묵은 나이 덕인지 해보겠다는 마음이 들더군요. 손녀의 간절함에 대한 응답이기도 하지만 생명을 살리고 키우는 일에 부쩍 관심이 동한 덕이기도 합니다.

동물 가족을 들임으로써 생기는 수고와 번잡함과 비용을 면밀히 따져보았는데 생명을 사랑함으로써 얻는 만족과 새로운 에너지가 더 크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힘들다고 겁을 주는 지인도 있었고 가족으로 사랑하다가 먼저 떠나보낸 경험으로 그 상실감을 생각하라며 경고하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반려동물을 키워본 사람은 장점이 더 많다고 말하는 반면 키워보지 않은 이는 어렵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더군요. 여러 곤란을 겪어도 동물과 한 가족이 되는 충만함을 알게 되면 그럴 가치가 충분하다는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끝까지 완강하던 남편의 반대는 손녀가 애교 섞인 친필 편지로 물리쳤습니다.

주변에 수소문을 해 드디어 생후 두 달이 안 된 강아지를 데려오게 되었습니다. 이름을 먼저 지어두었습니다. ‘홍시’입니다. 이쁜 과일 이름 중에서 고르다가 입에도 붙고 부르기 좋은 이름이어서 1차 후보로 택했습니다. 어떤가요? ‘홍시야~’하고 부르면.

딸아이와 손녀와 함께 홍시가 입을 옷과 머물 집, 데리고 가야할 곳 등을 공부하며 사랑을 시작하는 일을 너무 두려워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웃에서는 쉽게 하는 일에 유난히 요란을 떤다는 느낌도 가져봅니다. 새로운 돌봄과 사랑을 시작하는 데에 망설임과 인색함이 있었다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사진으로 본 강아지의 눈망울이 말을 걸어오는 듯합니다. 한께 살아갈 기족으로 자신을 데려가기 원한다고요, 다시 글을 연재한다면 홍시와 가족이 된 후의 우리 식구의 변화를 써볼 생각입니다.

풍경 셋

50-60대의 지인에게 반드시 보라고 추천하는 영화가 있습니다.

프랑스의 국민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주연한 영화 〈다가오는 것들〉이라는 영화를 보신 적이 있나요?

철학교사인 주인공은 평화롭고 안정된 삶을 살고 있는 50대의 중년 여성입니다. 어느날 학문의 동지였고 친구 같았던 남편이 새로운 사랑이 생겼다며 떠나고 혼자서 힘들게 자신을 키워온 어머니도 여의게 됩니다. 우리 나이에 올 수 있는 상실과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진지하면서도 서정적으로 보여주는 품격 있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파스칼의 팡세부터 알랭 드 보통의 행복론까지, 관조하고 성찰하는 인생철학을 논하는 장면이 공감을 주면서 배경으로 흐르는 음악이 몰입을 더하게 합니다.

그녀가 남편과 여름휴가마다 함께 지내던 시골집에서 자신의 짐을 챙겨 차를 타고 떠날 때 슈베르트의 〈물 위에서 노래함〉이 물 흐르듯이 나옵니다. 프랑스 시골의 풍광과 함께 흐르는 슈베르트의 음률은 고적하고 쓸쓸하면서도 아름답습니다. 여러 버전이 있지만, 영화 속에 흐르는 영국의 성악가 이안 보스트리지의 음성으로 이 노래를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슈베르트 가곡을 탁월하게 해석한다는 평을 듣는 가수입니다.

독일의 18세기 시인인 슈톨베르크(Stolberg) 의 노랫말을 음미하면서 들으면 한 방울 눈물이 떨어질지도 모릅니다. 조금 길지만 그 느낌을 온전하게 전하기 위해 다 인용합니다.

슈베르트의 〈물 위에서 노래함〉 / 슈톨베르그 시

거울처럼 비추는 물결의 빛 가운데

백조처럼 흔들리며 미끄러지는 작은 배

아, 기쁨으로 은은히 빛나는 물결 위에

내 마음도 그 배처럼 미끄러져 가네

배를 에워싸고 물결 위에서 춤추네

서쪽 숲의 나무들 위에서

붉은 햇살이 정답게 손짓하니,

동쪽 숲에서 나무 가지들 아래

창포가 붉은 빛을 받고 살랑거리네.

내 영혼은 붉은 햇살 속에서

하늘의 기쁨과 숲의 안식을 들이마시네

아, 시간은 이슬의 날개를 달고

흔들리는 물결 위로 사라져 가는구나

시간은 내일도 빛나는 날개로

어제와 오늘처럼 사라지겠지

마침내 나도 고귀하고 찬란한 날개 달고

변화하는 시간을 떠나서 사라지겠지

시간을 따라 우리 모두 사라지겠지만 고귀하고 찬란한 날개를 달고 사라진다니 의미없는 소멸만은 아닙니다. 중년에 혼자가 된, 영화 속 그녀의 삶도 손주라는 새로운 탄생이 있고 혼자라서 온전한 자유도 있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껴안고 충실하게 살아가면 죽음 앞에서도 존재감을 남기며 사라지지 않을까요?

불법을 따라 가고 싶은 길

올 한 해 동안 했던, 가장 알찬 일이 부디스트코칭 연재입니다. 덕분에 공부도 수행도 모자랐던 제가 불교 철학과 정신을 인내심 있게 공부하면서 코치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보다 단단하게 새워볼 수 있었습니다.

고객이 들고 온 코칭 이슈를 불법을 따르는 마음으로 함께 듣고 묻고 답을 찾았습니다. 사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다보니 사전에 동의를 구했지만 개인사가 지나치게 밝혀질까 조심스러웠습니다. 실제로는 더욱 드라마틱한 사연이 많았지만 많이 빼고 부분 윤색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막막했다가 제멋대로인 생각이 하나씩 줄을 서고 글이 글을 불러 조금씩 알알을 채워 한 편이 완성되는 그 과정은 힘든 가운데 상쾌한 카타르시스이기도 했습니다. 열심히 읽는다는 독자의 메시지나 모자람을 넌지시 알려주는 지인의 충고도 힘이 되었습니다.

불자로서 코치로서 어떤 길을 가야 할지 붓다의 지혜를 공부하기 위해 올 한 해 동안 정진한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을 합니다.

불법을 따르는 방편으로 앞으로 제가 가고 싶은 길을 위의 3가지 풍경으로 옮겨보았습니다.

관점을 바꿔 보이지 않는 인생의 이면을 읽어낸다.

사랑을 시작하고 베푸는 일에 겁먹거나 인색하지 않는다.

내 앞의 생을 그대로 껴안고 충실하게 살아간다.

지난 1년 간 부디스트코칭이 읽는 분에게 소박하나마 작은 울림이라도 주었다면 더 바람이 없겠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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