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형식 타파한 ‘喝’ 외친 선지식

황벽·대우 등 선지식 만나 깨달음
하북 임제원 주석하며 제자 양성
번뇌 벗어난 자유, 禪語로 개념화
〈임제록〉 후대 ‘어록의 왕’ 칭송해

임제선사탑인 징영탑(澄靈塔). 임제 입적 후 세워졌다. 8각 9층탑으로 높이는 30.7m이다.

임제의 행적과 기연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는 밥을 먹어야 하고, 정신적으로도 충족되어야 한다. 그 정신의 충족이란 무엇으로 주식을 삼는 걸까? 필자는 ‘자유’라고 생각한다. 역사 이래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 어느 나라나 투쟁과 혁명이 있었다.

물론 자유는 인간으로서 기본 가치를 찾고자 한 것이지만, 불교에서는 번뇌로부터 벗어난 해탈, 정신적 자유를 말한다. 이 자유를 선어(禪語)로 멋지게 개념화한 선사가 임제 의현(臨濟義玄, ?~867)이다. 임제는 관념적인 전통이나 사상적 권위, 형식과 타성의 굴레에서 과감하게 벗어난 인간 해방을 부르짖었다.

임제에 의해 개산된 임제종은 선종 5가 가운데 위앙종에 이어 두 번째로 산문을 열었다. 임제종은 조동종과 함께 오늘날까지 종지(宗旨)가 이어지고 있는 선종이다. 백양사에 주석한 서옹 스님이 생전에 주창하던 ‘참사람’ 운동은 임제의 사상에서 비롯되었다. 

임제가 선풍을 펼치는 시기는 사회적으로도 혼란한 시대였다. 당대 안사의 난(755~763)과 회창파불(845~847)이 거듭 발생해 사회적으로 혼란이 가중되면서 인간의 삶까지 피폐해졌다. 또한 문화적으로는 한유(768~824)·이고(?~844) 등을 주축으로 유교에서도 인간 본질에 관한 탐구가 전개되던 시기이며, 정치적으로도 권력이 수도권의 황제 중심에서 지방 호족들의 권력으로 이동되었던 시대에 임제는 활동하였다. 

임제는 조주(曹州)의 남화(南華, 현 산동성) 사람으로 호는 임제, 휘(諱)는 의현이다. 임제는 어려서부터 특이한 성품에 효자였다고 한다. 출가해 처음에는 불교학 연구에 몰두했으나 불도의 길에는 교학으로 미칠 수 없음을 통렬히 깨닫고 선에 전념하였다. 스승 황벽을 만나 간명직절한 기연(機緣)으로 깨달음을 이루었다. 또한 임제의 깨달음에 빼놓을 수 없는 선사가 있는데, 대우(大愚)이다.

황벽이 상당(上堂)해 법을 설하는 중, 깊은 산속에서 홀로 수행하고 있는 대우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임제는 대중에 머물다가 스승 황벽의 말을 듣고, 대우를 찾아뵙기로 하였다. 임제는 대우를 찾아가 말했다.

“스승님의 가르침을 받고자 왔습니다.”

그날 밤 임제는 대우 앞에서 이제까지 알고 있는 경전의 내용을 마음껏 말했다. 대우 스님은 침묵으로 일관하더니, 다음날 아침 임제에게 말했다.

“멀리서 찾아온 자네를 생각해서 어젯밤에는 자네의 말을 들어주었네. 그런데 자네는 예의도 모르고 허튼 소리만 계속 지껄이더군.”

대우는 말을 끝내자마자, 몽둥이로 몇 차례 때려 문밖으로 내쫓았다. 임제는 황벽에게 와서 그대로 이실직고를 하니, 황벽이 말했다.

“대우는 자네에게 훌륭한 선지식이네. 이 기회를 놓치지 마라.”

이 말에 임제가 또 대우를 찾아갔으나 대우는 “염치도 모르고 또 왔네”라고 하면서 몽둥이로 또 두들겨 팼다. 임제가 황벽에게 돌아와 말했다.

“대우 스님의 몽둥이질 속에서 깨닫게 해주신 은혜는 백겁 만겁에도 갚을 수 없습니다.”

얼마 후, 임제가 또 대우에게 찾아가니 이전과 마찬가지로 몽둥이를 들었다. 임제도 이번에는 몽둥이를 막아내면서 대우를 넘어뜨렸다. 대우 스님은 임제의 이런 행동을 보고 말했다.

“내가 산속에서 일생을 쓸모없이 보내나 했더니, 오늘에서야 제대로 된 제자를 하나 얻었군.”

임제는 대우로부터 세 번이나 찾아가 세 번의 몽둥이질을 받아 가면서 깨달음을 얻었다. 이런 근기가 있어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법이다. 임제는 황벽과 대우의 기연으로 활안(活眼)의 종사로 선종사에 우뚝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또 한 명의 임제의 스승이 있는데, 진주 보화(鎭州普化, 860~874)이다. 보화는 반산 보적(盤山寶積, 720~814)의 제자로서 생사해탈의 전형을 보인 인물로 풍광(風狂)의 선사로 알려져 있다. 보화의 풍광이 담긴 행동과 언어는 임제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보화가 열반에 들기까지 임제와 가까이 지낸 도반이다. 임제의 법맥을 정리하면, 6조 혜능-남악 회양-마조-백장-황벽-임제이다.  

임제는 깨달은 이후 황벽 문하에서 얼마간 머문 뒤 여러 곳을 행각하다가 하북성(河北省)의 진주(鎭州) 임제원(臨濟院)에 머물렀다. 임제라는 법호도 그가 머물렀던 임제원에서 비롯된다. 선사는 선풍을 펼치며, 수많은 제자들을 길렀다. 임제는 867년 입적했는데, 시호는 혜조(慧照), 탑호는 징영(澄靈)이다.

인혹(人惑)
임제의 선사상은 이 같이 정리된다. 임제는 전통이나 권위를 부정하고 청정한 자성을 지닌 자신만을 자각하기 위해 인혹을 물리쳐야 한다고 하였다.    

“도를 닦는 사람들이여! 그대들이 법다운 견해를 얻고자 한다면 결코 사람을 미혹되게 하는 것(人惑)을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안에서도 밖에서도 무언가 마주치는 것은 모두 끊어 죽여 버려야 한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친척을 만나면 친척을 죽여야 비로소 해탈할 수 있다. 일체 사물에 걸리는 바 없이 철저한 해탈자재(解脫自在)의 경지를 얻는 것이다.” -〈임제록〉

유교주의 국가에서 스승을 죽이고, 부모를 죽이라는 표현은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오해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부모ㆍ친척ㆍ부처ㆍ조사 등에 얽매이지 않는 주체성을 강조하기 위해 쓰인 강한 어조일 뿐이다.

수행자는 모름지기 ‘진정(眞正)한 견해’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관념, 즉 조불(祖佛)의 가르침은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주체성을 확고히 지니게 되면, 반드시 해탈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임제는 인혹과 관련해 출가에 대해서도 ‘출가는 구도하고자 하는 일념으로 부모와 친척을 떠나는 것이요, 출가한 이후에도 부처나 아라한의 권속에 들어간다면 그것은 출가 이전보다 못한 것이니 참된 출가는 인혹을 철저히 끊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임제의현 진영. 우리나라 고창 선운사 조사전에 있다.

자유(自由)      
임제는 자유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오늘 불법을 배우는 구도자들은 무엇보다도 진정견해(眞正見解)를 깨닫지 않으면 안된다. 만약 그대들이 진정한 견해를 얻는다면 생사에 오염되지 않으며 거주(去住)의 자유를 누릴 것이다. 다시 특별한 진리를 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위대한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다.” 

이 구절에서 임제가 의도하는 바는 삶과 죽음에 물들지 않는 진인(眞人)이 거주의 자유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진정견해’란 〈임제록〉에서 자주 반복되는 말로서 수행의 결과를 의미하며, ‘거주’란 인간의 삶과 행위를 총결하는 표현이다.

임제가 말하는 자유는 존재 가치를 결정해 가면서도 현실 그대로에 적응하면서 그 자리에서 느끼는 진실된 자각이다.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고 서는 곳마다 진리의 땅이 되게 하라(隨處作住 立處皆眞)’는 뜻이며 현실긍정의 입장을 나타내기도 한다. 

참사람, 무위진인
다음은 어느 누구나 차별 없는 참사람이 있다고 하는 무위진인에 대해 살펴보자. 무위진인(無位眞人)·무의도인(無依道人)·무의진인(無依眞人) 역시 인간의 본원적인 자유를 추구하고 실천하는 인간 존중 사상과 일치한다. 무위진인에서 ‘인(人)’이란 지금 목전에서 그의 설법을 듣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부처이며 조사임을 말한다.

따라서 무위진인은 어떤 계위에도 속하지 않으며 분별심이나 차별의 위상(位相)이 없는 참사람으로 인간 누구에게나 본래부터 내재해 있는 절대 주체를 말한다. 즉 불성(佛性)·법성(法性)·자성(自性)·주체(主體) 등 그 자체를 말한다. 또한 마조의 즉심(卽心)과 같은 의미로도 볼 수 있다.   

임제가 법을 설했다.  “여기 빨간 몸 덩어리(赤肉團) 안에 한 차별 없는 참사람이 있어서 항상 여러분의 면문(面門)을 통해서 출입(出入)한다. 아직 보지 못한 사람은 똑똑히 보고 보아라.”

그때 한 승려가 나와서 물었다. “어떤 것이 차별 없는 참사람입니까?”

임제가 선상(禪床)에서 내려오더니 그 승려의 멱살을 잡고 말했다. “이르라, 이르라.”

잠시 후 그 승려가 무엇이라고 대답하자, 임제는 그를 밀치며 말했다. “이 무슨 똥 막대기 같은 무위진인인가!”
-〈임제록〉

‘적육단’이란 사람의 심장을 가리키는 말로서 여기서는 인간의 육신을 말한다. 무위진인은 일정한 모습이나 형태가 있지 않으면서 스스로 그 빛을 발하고 있는 존재이다. ‘무위진인이 무슨 똥막대기인가’라는 구절은 임제가 무위진인을 설하면서도 벌써 말로 표현된다면 어긋나는 것이니 일정한 틀에 고정화하지 말라는 경계이다.

붓다가 깨닫고 나서 보니, 중생들이 깨달을 성품을 지니고 있으면서 인식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탄식한 것처럼, 임제도 제자들이 불성을 구족하고 있으면서도 부처임을 알지 못하는 것을 일러주기 위해 과격한 행동으로 연출하였다. 

이와 같이 살펴본 대로 임제 선사상에 전반적으로 흐르는 근간 및 특징이 몇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임제 사상에 일관(一貫)하는 점은 혁신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현실의 인간에 대한 절대적인 존엄성이 강조되어 있다.

둘째는 전통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현실적인 삶에 입각한 불법을 주장하면서 철저히 자신만을 믿는 신념이다. 이는 ‘마음이 부처’라는 철저한 자각의 종교임을 강조하는 선사상으로 하북의 무인(武人) 사회에 영향을 미쳤던 요인이다. 

셋째는 임제의 제자 교육은 당시나 현재에 이르기까지 선종사에서 임제의 제자 교육방법은 훌륭한 교육법으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임제할 덕산방’이라는 말이 일반화되어 있을 정도로 임제는 제자를 교육할 때, 소리를 지르는 할(喝)을 행했던 대표적인 선사이다. 〈임제록〉은 선사상의 이론을 체계적이며, 통쾌하게 설해져 있어 후대에 ‘어록의 왕’이라 불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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