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이야기] 19. 우리는 어떻게 인식하는가
[연기 이야기] 19. 우리는 어떻게 인식하는가
  • 김성규 영남대 의대 교수
  • 승인 2019.09.27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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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明, 스스로를 속박하는 행위

우리 눈에 보이는 대상이 ‘색’
이로 인한 부정사유로 ‘치’ 생겨
‘애’, 치심 추구하는 욕망 산물
바른 사유가 正見하는 요인
그림. 강병호
그림. 강병호

색을 연하여 생긴 부정사유는 어리석음, 치를 낳는다. 바로 색·성·미·향·촉·법에서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대상은 색이라 한다. 색으로 인하여 생긴 부정사유가 치를 낳는다. 치가 곧 무명이다 치심으로 추구하는 욕을 애라고 한다. 애가 짓는 행위를 업이라 한다. 거꾸로 다시 우리가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해 놓은 것이다.

무엇이 존재하는가
부처님께서는 불교란 무엇인가를 물었을 때 ‘12처가 불교다’라고 말씀하셨다. 12처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바로 나와 대상이다. 예를 들어 지금이 부처님 당시라고 생각하자. 불교가 무엇인지, 진리가 무엇인지 부처님께 물었을 때, 부처님이 인식시킨 출발점은 “내가 있다”였다. 나라는 존재는 6근으로 이루어졌으며 6근이 인식할 수 있는 대상이 바로 색·성·향·미·촉·법이다.
나를 중심으로 안·이·비·설·신·의가 있고 내가 인식할 수 있는 대상인 색·성·향·미·촉·법의 6경이다. 우리는 눈으로 볼 수 있고 귀로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코로 냄새를 맡을 수 있고, 혀로 맛을 느낄 수 있다. 몸으로 감촉을 느낄 수 있고, 법은 의지로써 ‘의’에 의해서 존재하는 것들을 인식할 수 있다.

내가 있다는 것은 바로 인식을 통해서 아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대상을 통해서 귀로 들리는 소리를 통해서 내가 있다 를 인식한다. 나로부터 출발했을 때 모든 것은 6근과 6경을 통해서 인식이 되는 것이다. 즉 우리의 출발점은 인식으로부터 시작해 보라는 것이다. 인식으로부터 출발했을 때 죄를 지었다 착한 일을 했다하는 이런 행위를 두고 만약 인간을 신이 만들었다면 모든 책임은 신에게 있는 것이며, 신을 접어두고 인식으로부터 출발했을 때 인식은 부처님께서 설명한 가장 위대한 ‘의’로써 모든 행위의 책임은 의에 있는 것이다.

출발의 시작점은 ‘나’
인식으로부터 출발했을 때 죄악이라든지 죄악에 대한 책임은 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 있다. 모든 것의 출발은 자신의 의지인 ‘의’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내용이다. 모든 죄의 근원은 내게 있기 때문에 누가 내 죄를 사해 주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의 의지와 뜻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모든 것은 내가 짓고 내가 받는 것이다.

여기서 인연과의 법칙이 나오게 된다. 결국 존재는 인식이며, 인식으로부터 모든 것이 출발한다. ‘있다’고 했을 때 무엇이 있는가는 눈을 통해서 보이기 때문에 있는 것이다. 눈을 통해서 무엇인가 보이기 때문에 있다고 생각한다. 대상이 있어서 보이는 것이 내용이 된다. 그러니까 눈을 통해서 무엇인가가 보이기 때문에 있다고 생각한다. 눈을 통해서 나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이다.

소리가 들리니까 내가 존재하고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이다. 신체의 접촉을 통해 나의 존재를 인식하고 촉감을 느낄 수 있으므로 나는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누구냐, 무엇이 존재하느냐고 했을 때 인식이 존재하기 때문에 인식을 통해서 내가 있는 것이다.

12처엔 법칙이 있는가
나는 보고, 듣고, 냄새를 맡고, 맛을 보고, 촉감이 있기에 느낀다. 이것이 바로 나인 것이다. 그래서 12처설은 나를 이루고 있는 여섯 가지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체인 안·이·비·설·신의 6근과 대상이 되는 6경의 경계인 색·성·향·미·촉·법을 합하여 12처가 된다.

예를 들어 동물들 중에 네 발 달린 동물도 있고 눈이 없는 동물도 있을 것이고 소리를 듣지 못하는 동물도 있을 것이고 또 촉감만 느낄 수 있는 동물도 있을 것이다. 인간은 5근으로 세분화되어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의식할 수 있는 능력 여섯 개와 인식할 수 있는 능력체 보이는 대상인 여섯 개는 6경으로 합해서 12처이다. 12처의 존재 법칙이 연기법칙인 것이다. 이것을 바탕으로 인식이 나온다. 

부지런히 애쓰고 노력하라
오늘은 부처가 되는 가장 소중한 12처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한번 생각해 보자. 공부가 재미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구도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공부가 하기 싫지만 조금씩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을 ‘정진’이라고 했다. 부처님께서 마지막 열반에 드실 때 제자들에게 한 말씀이 끊임없이 애쓰고 노력하라고 부탁하였다. 노력하는 만큼 빛나고 아름다운 삶이 된다. 그 결과가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인생을 백 년으로 볼 때 조금은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고 더 벗어날 수 있지만 수십억 겁의 눈으로 볼 때는 아무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노력하고 애쓰는 것이 결국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다. 우주를 아름답게 하는 광명이 되는 것이며, 끊임없이 애쓰고 노력하는 것 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

6근과 6경의 활동영역
부처님께서 중부 니까야 경전과 잡아함 334경에서는 12처를 6근이라 하지 않았다. 6근을 설명하기까지는 상당히 시간이 걸린다. 제일 먼저 인식시키려고 한 것은 5근이다.

기본적으로 안근, 이근, 비근, 설근, 신근은 서로 다른 다양한 경계와 행처(行處)가 있어서 다른 것의 활동 영역을 인식하지 못한다. 즉, 눈을 통해서 보기만 하지 눈을 통해서 듣지는 못하는 것이다. 냄새를 맡을 수가 없다. 자기 나름대로 경계가 있어서 자기가 인식할 수 있는 부분만 인식한다. 눈은 보이는 작용을 하고 귀는 들리는 작용을 한다. 눈으로 소리를 못 듣는다. 다른 영역은 인지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설명이다. 바로 눈으로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이와 같이 5근의 의지체는 무엇이며 활동영역을 인지하는 자는 누구인가? 이렇게 부처님께서 묻는다. 분명히 5근은 인식 할 수 있다.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묻는다. 5근은 누구든지 인식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 5근인 눈은 볼 수만 있고 귀는 들을 수 있는 능력만 있고 코는 냄새 맡을 수 있는 능력만 있고 몸은 촉감을 느낄 수 있는 능력만 있다고 설명한 후 5근의 의지처는 무엇인가? 그들의 활동영역을 인지하는 자는 누구냐고 묻는다.

분명히 눈을 통해서 본다. 모든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 눈을 통해서 인지하는 자 누구인가? 6경에 대한 이해를 제자들에게 인식시키는 것이고 5근은 무엇에 의지하는지 5근의 뿌리를 설명하였다.

“존자여 5근의 의지처는 의이며 의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5근의 의지처는 의이며 의가 그들의 활동 영역인 것이다. 눈만 있어서 대상을 보면 아무 것도 인식을 못한다. 눈은 보는 작용만 갖고 있지 보는 작용에 대한 인식능력은 없는 것이다. 그러면 누가 인식하느냐 바로 의가 하는 것이다.

여기서 불교의 가장 위대한 탄생이 이루어진다. 5근을 통섭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의이다. 이 5근을 통섭하고  5근의 활동영역을 인지하는 5근의 의지처를 부처님은 ‘의’라고 설명하셨다. 5근을 넘어서 6근이 인식된다. 5근은 그들의 활동영역을 인지할 뿐이다.

‘존자들이여, 안근, 비근, 이근, 설근, 신근은 무엇에 의지하여 머무는가’라고 부처님이 묻는다. 5근은 수명에 의지해서 머문다. 즉 내가 죽으면 5근도 없다. 바로 5근은 살아있는 것에 의지하여 머문다. 결국은 살아있기 때문에 5근이 있고 5근이 뿌리가 되어 6근에 의해서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안(眼)은 무엇인가
잡아함경 334경의 내용들은 미시적 내용이고 거시적 내용으로 우리의 이해를 돕고 있다.
‘안(眼)은 인이 있고 연이 있고 속박이 있다.’ 여기서 안, 즉 눈이란 무엇인가? 인연과를 생각하면 된다. 어떤 것이 안의 인이 되고 연이 되고 속박이 되는가? 바로 안은 업이 인이 되고 연이 되고 속박이 된다. 나의 전생에 생긴 업에 의해서 눈이 생긴다는 것이다.

업은 인이 있고 연이 있고 속박이 있다. 어떤 것이 업의 인이 되고 연이 되고 속박이 되는가? 업은 애가 인이 되고 연이 되고 속박이 된다.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뿌리는 애욕이다. 이것은 손으로 만져지는 것을 통틀어 애욕이라 한다. 이 몸뚱이를 이루는 근간은 애를 짓기 때문에 업을 짓게 된다.

애는 인이 있고 연이 있고 속박이 있다. 어떤 것이 애의 인이 되고 연이 되고 속박이 되는가? 애는 무명이 인이 되고 연이 되고 속박이 된다. 바로 무명 때문에 애가 생긴다. 애욕이 생기는 것이다. 무아와 무상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무명이므로 이것에 의해 바로 애욕이 생기게 된다.

무명은 인이 있고 연이 있고 속박이 있다. 어떤 것이 무명의 인이 되고 연이 되고 속박이 되는가? 무명은 부정사유가 인이 되고 연이 되고 속박이 된다. 팔정도에서 ‘바르게 보라’고 하는 ‘정견’, 이 같은 정견을 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나온 것은 ‘바르게 생각하라(正思惟)’다.

무명이 왜 생기는가? 정사유를 못하는 부정사유 때문에 무명이 생긴다. 바르게 생각하면 무명을 깨칠 수가 있다. 바르게 생각하지 못하면 무명이 된다. 여기서 무명을 깨트리는 것은 정사유부터 시작된다.

부정사유는 인이 있고 연이 있고 속박이 있다. 어떤 것이 부정사유의 인이 되고 연이 되고 속박이 되는가? 색을 연하여 생긴 부정사유는 어리석음, 치를 낳는다. 바로 색·성·향·미·촉·법에서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대상은 색이라 한다. 색으로 인하여 생긴 부정사유가 치를 낳는다.  치가 곧 무명이다 치심으로 추구하는 욕을 애라고 한다. 애가 짓는 행위를 업이라 한다. 거꾸로 다시 우리가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해 놓은 것이다.

의지적 작용과 필연적 반응
모든 것을 12처라 했을 때 12처에 6근은 의지적 작용의 속성을 갖고 있으며, 6경은 필연적 반응의 속성을 갖고 있다. 의지적 작용이란 우리는 보려 하고, 들으려 하고, 촉감을 느끼려고 하는 의지적 반응의 속성을 갖는 것은 6근이며 6경은 필연적 반응의 속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인연과를 이야기할 때 나는 인이고 연은 나를 둘러싼 대상이다. 결국 내가 원하는 쪽으로 이끌어갈려고 하는 의지적인 작용을 하고 의지적 작용에 의해서 주위에 있는 대상은 필연적으로 반응하는 속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내가 깨끗하고 맑은 생각을 갖고 있으면 주위가 맑게 따라오고 내가 탁하고 악한 생각을 갖고 있으면 주위는 탁하고 악하게 된다. 이것이 인이고 연이고 그것들이 합당한 과를 낳게 된다. 12처인 6근과 6경이 합해서 연기를 태동시키고 기본내용이 나온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부처님께서 6근 6경에 대해서 삼법인의 속성을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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