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불교계, 韓 공동성명 제안 검토 중 입장 바꿔

양국불교 공동성명 끝내 무산
일본 제안 ‘유해봉환’은 추진
10월 15일 서울에서 첫 회의
“남 좋은 일 하게 된 일본방문”

지난 9월 초 일한불교교류협의회장 후지타 류조 스님(사진 가운데)과 만나 양국 관계 개선 방안을 논의한 한국불교대표단. 당시 일본불교계는 한국대표단이 제안한 공동성명에 긍정적인 입장을 표했다.

한일 양국 갈등상황 타개를 위해 한국과 일본불교계가 추진하던 공동성명이 사실상 무산됐다. 한국불교계가 일본을 방문해 일본불교 관계자들과 긍정적인 논의를 주고받으면서 탄력 받던 공동성명은 일본불교계의 갑작스런 태도 변화로 불투명해졌다. 게다가 일본 측이 먼저 제안한 강제징용 희생자 유해봉환을 위한 회의 테이블만 마련돼 한국대표단의 방일이 무리한 빈손외교로 전락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불교종단협의회와 한일불교문화교류협의회에 따르면 한국대표단은 지난 96~8일 일본을 방문, 일한불교교류협의회장 후지타 류조 스님을 비롯한 일본불교 주요 인사를 만나 경색된 양국 관계 개선에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 한국대표단에는 종단협 부회장 홍파 스님(관음종 총무원장)을 비롯해 사무총장 지민 스님, 상임이사 덕조 스님, 한일불교협 사무총장 향운 스님이 이름을 올렸다.

한국대표단은 방일을 마친 뒤 한국과 일본불교계가 지난 40년간 이어온 우호 교류를 기반으로, 교착상태에 있는 양국 관계 개선에 힘써야 한다는 점에 공감했다“920일까지 일본 측과 공동성명을 검토해 발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양국 불교계는 일본불교계가 2009년 여주 신륵사에 건립한 과거사참회비에 담긴 문구를 기반으로 한 공동성명 채택을 추진했다. 하지만 일본 측이 공동성명 추진에 대한 국내 종합언론의 일본어판 보도를 접한 뒤 입장을 바꿨다. “한국불교가 일본불교를 이용해 공동성명을 추진하려는 것 아니냐는 이유에서다. 일본불교계는 해당 보도에 명시된 920일 공동성명 발표는 확정된 것이 아니었다고 반발하며 불만을 표했다.

한국불교계는 전후사정을 일본 측에 설명했으나 불만이 해소되지 않으면서 결국 공동성명 무산으로 이어졌다. 이로 인해 한국불교계는 단독성명 발표도 고민했으나 큰 의미가 없다고 판단, 성명 발표 계획을 접은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일본불교를 대표하는 전일본불교회가 지난 5월 공문을 통해 한국에 제안한 강제징용 희생자 유해봉환 사업인 ()민간 징용자 유골봉환1015일 서울서 첫 실무회의를 하기로 합의하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이 추진한 공동성명은 무산된 채 일본서 제안한 사업만 다루게 됐다는 이유 때문이다.

강제징용 희생자 유해봉환은 그간 한국정부가 일본정부에 지속적으로 요청해왔지만, 일본 측이 구체적인 답변을 회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올해 양국 관계가 틀어지면서 일본불교계가 갑자기 한국불교계에 유해봉환을 제안해오자 민간을 통해 유해를 떠넘기려 한다는 의구심까지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유족들에 대한 배상판결 등 국제소송에 휘말리지 않기 위한 일본의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이와 함께 유해봉환 활동을 펼쳐온 민간단체와 강제징용 희생자 유족회도 이 같은 한일불교계의 논의에 우려를 표했다. 불교계 대화는 의미 있지만 과거사에 대한 사과와 유족의 입장 반영, 정부 간의 조율 등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제 강제징용 희생자 유해봉환추진위원회 윤승길 사무총장은 유해봉환은 희생자와 유족 중심으로 풀려야 한다. 종교계 활동은 의미 있지만 무리하게 추진해서는 안 된다일본의 사과 없이 유해를 가져오면 큰 역풍을 맞을 수 있다. 또한 국민적 여론을 수렴하고, 정부·민간단체와 협의해 민감한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단법인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양순임 중앙회장은 유해문제는 유족과 직결되기 때문에 유족의 입장이 우선적으로 반영돼야 한다. 일본에 책임이 있기 때문에 일본정부가 나서서 애도하고 사과하는 절차가 있어야 한다면서 유족들이 힘이 없다고 민간단체와 종교계 중심으로만 문제를 풀어가선 안 된다. 정부예산 받아다 사업을 추진하는 곳이 많은데 정작 유족과는 한마디 상의 없는 일이 빈번하다고 말했다.

한편 당초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상임이사회는 827공동성명을 일본에 먼저 제안한 뒤 상대방이 받아들였을 때 일본을 방문하고, 유해봉환 논의는 이번에 제외한다고 회의결과를 정리했다. 그럼에도 종단협 회장단 일부가 상임이사회 결과를 뒤집고, 성과 도출을 위해 대표단을 급파했으나 결과적으로 이득은 얻지 못하게 됐다.

이 같은 결과에 상임이사회의에 참석한 한 스님은 상임이사회 결과를 회장단이 번복했다는 통보를 받지 못했다.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하면서 우리가 제안한 건 무산되고, 상대방이 제안한 것만 추진하게 되면 성과가 없는 것 아니겠느냐고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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