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본질 가리는 미혹의 꿈
美, 본질 가리는 미혹의 꿈
  • 남혜경 전문코치
  • 승인 2019.08.26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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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두 살 지은의 다이어트 생존기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사내아이를 곧잘 이겨먹는 지은은 인기가 많아 친구들을 우르르 몰고 다니는 동네 대장이었다. 그런 지은이 자신의 존재에 처음으로 불안을 느끼는 순간이 왔다. 초등학교 6학년 시절, 전학생 미경이가 세련된 서울말씨와 옷차림으로 동네 아이들의 관심을 단박에 가져가버렸다.

외모지상주의 사회서 현상
무리한 다이어트로 고통받아
본질·목표를 다시 생각해야

“그 아이가 입은 원피스가 양품점에서 동이 났어요, 모두 그 아이를 따라하고 싶어 하는 거죠.”

남자아이 뿐 아니라 여자 아이도 날씬하고 스타일이 좋은 친구를 동경하고 더 따른다고 느낀 지은은 그때부터 외모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지은이는 화려한 미모는 아니지만 특별히 열등감을 가질 외모는 아니었다. 그녀의 가장 큰 결점은 (본인이 생각하기에) 비교적 큰 골격과 통통하게 살집이 있는 몸매였다.

교복을 입는 중 고등학교 시절이 되자 외모가 더욱 두드러지는 시기가 되었다. 같은 제복이지만 입고 난 태는 제각기 달라 작은 얼굴과 흰 피부의 날씬한 여학생이 눈길을 끌고 인기를 얻었다. 그런 평판은 그 세계에서 유용한 무기이고 힘으로 여겨졌다.

작은 사회의 리더로 당당했던 지은은 성장하면서 여자의 경쟁력은 외모에서 나온다고 단정하게 되었다. 공부도, 체력도, 말싸움도 아닌 미모가 1순위라고 판단한 지은의 승부욕은 몸매 가꾸기로 나타났다. 미모가 권력이라는 성급하고 결함이 많은 가치관을 굳히고 자신이 추구해야 할 첫 번째 과제로 고집하게 된 나이가 겨우 열여덟이었다.

날씬한 여성이 멋진 인생을 산다는 미혹

지은의 다이어트 인생은 부모의 그늘을 벗어나는 20대에 본격적으로 드라마틱하게 펼쳐졌다.

외모에 무관심하면 곧 게으르고 무감각한 여성으로 보였다. 몸매를 보기 좋게 유지해야 자기 관리를 잘하고 유능한 여성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화려하고 성공한 삶을 사는 여성의 모습을 비춰주는 미디어의 영향도 컸다, 지은의 눈에 보이는 멋진 여성은 죄다 날씬했다. 초등학교 6학년 이후로 외모에 신경 쓰고 그 세계만을 바라본 지은에게 다양한 가치의 다른 세상을 살펴볼 여유나 기회는 없었다. 청소년기에 시작된, 미혹의 세계는 편협한 외길이었다.

지은은 고기만 먹는 황제 다이어트부터 생식을 주로 하는 현미 다이어트까지 섭렵하며 아침마다 체중계에 올라서서 그날 섭취해야 할 음식물을 정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녀가 느끼기로는 물만 먹어도 체중이 불어나는 체질이었다. 조금 방심해서 전날보다 500그램 이상 늘어난 수치가 확인되면 불안과 자책에서 종일 벗어나지 못했다. 초기에 섭생 조절과 함께 시작한 웨이트트레이닝은 자주 끊겼고 지나친 체중 감량으로 끈기 있게 운동하기가 벅찼다. 운동은 꾸준히 오래 해야만 조금씩 변화가 나타나지만 다이어트는 단시간에 체중감소의 변화를 보여준다. 일단 몸무게를 줄여야 한다는 그녀의 강박은 과도한 다이어트에 매달리게 했다.

체중이 불었다고 판단되면 외출을 삼가하고 더 강력한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문제는 지나친 식욕의 억제가 건강한 절식보다는 거식과 폭식의 반복이 된다는 점이었다. 그녀가 최근에 가장 효과를 본 다이어트는 간헐금식이었다. 최소 18시간에서 길게는 30시간까지 금식을 한다. 하루 한 끼를 먹거나 심하게는 이틀에 한 끼를 먹는 셈이다. 하루 한 끼를 먹는 간헐 금식으로 첫 주에 3킬로그램까지 줄어들던 체중은 차차 그 차이가 줄어들었다. 줄기는 했지만 기간에 비례한 수치는 아니었다.

뼈를 깎는 노력으로 했던 금식의 효과가 줄어들자 그녀의 강박은 점차 심해졌다. 이틀간 물 밖에 먹지 않다가 금식의 시간이 지나면 식사를 하는데 한 끼 식사에 굶주림을 채우다보니 엄청난 폭식을 하게 되었다. 금식하는 동안 떠올린 많은 음식을 모두 사놓은 후 정해놓은 시간 안에 입속으로 우겨넣듯 허겁지겁 삼킨다. 30분 안에 케이크 한 판과 치킨 한 마리를 먹고는 불안해져서 목구멍을 손가락에 집어넣어 토하기도 했다.

이러다보니 금식하는 동안에는 체중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외는 거의 활동을 할 수 없었고 폭식 후에는 토하고 약 먹고 그 후유증으로 외출이나 사회활동을 하기가 힘들었다. 화장품회사 영업 사원이던 그녀는 세 번의 이직 끝에 실직자가 되었다.

체중계 수치만 바라보고 사는 날들

이제 지은이는 스스로도 무엇 때문에 다이어트를 하고 살을 빼는지 모를 지경이 되었다.

처음에는 날씬하고 유능하고 매력 있는 여성이 목표였으나 체중감소라는 단 하나의 목표에 빠져, 사회생활도 망치고 불안과 흥분의 상태를 오가는 가벼운 조울증 증세까지 보이게 되었다.

체중이 늘었다 싶으면 불안하고 초조하고 자신에 대한 혐오로 우울하다가 체중이 줄고 정해놓은 목표에 가까워졌다 싶으면 흥분이 되어 세상 모든 일이 쉬워 보였다. 이대로라면 그럴듯한 인생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성과 합리로 생각하면 고작 몸무게가 줄거나 늘었다고 해서 인간으로서 가치까지 매기는 자신이 한심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겠지만 이미 눈앞에 보이는 사소한 수치의 함정에 빠진 지은에게 건전한 사고가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늘고 기분 변화가 심해지면서 습관성 음주벽도 생겼다. 불안해지면 술을 마셨고 취기가 오르면 또 폭식을 한 후 게워내는 일이 잦아졌다. 피부는 거칠어지고 눈동자는 흐릿해졌다.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보지 않은 지가 1년이 넘었다.

지은이 10여 년간의 다이어트 인생 끝에 얻은 건 만성위염과 식도염, 우울증 초기라는 진단이었다. 의사는 균형 잡힌 식사와 규칙적인 생활에 따른 다른 즐거움을 갖기를 권유했다. 여러 번 그런 권유를 받았으나 지은의 시선은 돌아가지 않았다. 살만 빼며 그다음은 무엇이든 저절로 이루어질 것 같았다.

폭식 후 토해내는 식습관을 계속하면 위암이 될 수도 있다는 의사의 강력한 경고 후에 지은은 근본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위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통장 잔고가 바닥을 보여 다시 돈을 벌어야 하는 절박한 상태가 되었다. 얼굴을 보기만 하면 그 꼴이 뭐냐고 잔소리를 늘어놓는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러 가기는 싫었다. 혼자의 힘으로 변화가 힘들다고 여긴 그녀의 코칭 미션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6개월의 미션, 단순한 목표 2가지

이런 경우의 코칭은 다이어트의 성공보다는 애초의 목표를 분명하게 하는 게 우선이다.

1. 인생의 목표

2. 다이어트가 인생의 목표가 된 이유

3, 앞으로 하고 싶은 일과 다이어트의 상관관계

4. 체중 감량 이후 1년 이내에 얻고 싶은 변화

어처구니없게도 지은은 이 근본의 질문 4가지에 쉽게 답을 생각해낼 수가 없었다.

다이어트를 시작하게 된 동기와 거기서 얻으려는 구체적인 목표, 본인이 원하는 변화는 모두 체중감량뿐이었다. 살을 빼고 몸매가 날씬해지면 뭘 하겠다는 건지 그 다음 단계가 없다는 데에 그녀는 새삼 놀라고 아득해졌다.

지은은 날씬한 몸매에 관심을 갖게 된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최근 폭식과 거식, 습관성 음주에 이르는 체중 감소의 집착을 갖기까지 내면의 변화와 욕망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6개월 간 이루어야 할 구체적인 미션은 두 가지였다. 체중계를 버리고 몸무게를 재보지 않는 것과 하루 두 끼 시간을 정해 식사하기.

지은이 관점을 돌린 시선은 단순했다.

1. 체중을 빼자! 에서 체중을 잊자! 로.

2, 음식을 피해야 할 살덩이의 원흉이 아니라 흡수해야 할 필요 물질로 바라보기.

지은의 미션은 험난한 과정을 거쳤다. 체중계를 쓰레기통에 버린 다음날 쓰레기통을 뒤져서 다시 찾아왔고, 뒷날 다시 버렸다. 며칠 후 온라인쇼핑으로 새 체중계를 샀으며 택배를 받고 포장을 뜯지 않은 채로 다시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하루 두 끼 먹기는 사흘 만에 무너졌고 다시 금식과 폭식, 이틀 후 다시 두 끼 먹기에 도전 하는 식이 반복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체중계 바늘이 눈에 어른거리지만 체중계에 올라가지 않고 한 달의 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다. 두 달이 지나자 가끔 폭식은 하지만 저녁 6시에 밥 반 공기를 먹는 규칙은 반드시 지키게 되었다. 지은이 사는 원룸에는 날짜별로 지켜야 할 규칙이 빼곡히 적힌 다이어리가 온 벽에 붙어 있다. 다이어리의 맨 윗줄에는 이 문장이 씌어 있다.

‘살을 뺀 후 할 일이 무엇인가?’

자신이 파묻힌 집착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아는 일은 단순하면서도 어렵다. 무명의 미혹은 본질을 가린다. 미혹이 있는 마음을 알아차리면 본질에 한 걸음 다가서게 된다.

본질 아닌 것을 본질로 생각하고,

본질을 본질 아닌 것으로 보는 사람들은

본질에 이르지 못한다.

잘못된 생각의 영역에 머무르기에.

본질을 본질로,

본질 아닌 것을 본질 아닌 것으로 알면

그들은 본질에 이른다.

바른 생각의 영역에 머무르기에. 〈법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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