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이참사참(理懺事懺)

‘이참사참(理懺事懺)’은 이치적으로도 참회하고 행동적으로도 참회한다는 뜻이다. 잘못된 점이 있으면 마음과 생각으로도 참회(理懺)하고 실천적 행동적으로도 참회해야만(事懺) 진정한 참회가 된다는 뜻이다.

불교에서는 참회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참회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빈다는 뜻이다. 동시에 다시는 그와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각오가 담겨 있다. 잘못을 뉘우쳤다고 하더라도 반복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참회가 아닌 것이다.

이참사참(理懺事懺) 등 참회는 ‘개과천선(改過遷善)’의 반성적 의미를 갖고 있다. 따라서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뉘우치고 반성하고 동시에 개과천선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입으로만 참회하는 구참(口懺)이고, 겉으로만 참회하는 ‘눈가림 참회’라고 할 수 있다. 잘못이나 실수를 반복한다면 자신의 인성만 점점 악화시켜서 더 큰 실수나 파계 등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불교에서는 참회의 방법으로 주로 부처님 앞에 108배를 하는 ‘108참회’를 많이 한다. 또 3천배도 있다. 108배, 3천배를 하면서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성찰한다. 그런데 겉으로는 108배, 3천배를 하면서 마음속으로는 ‘두고 보자’라는 식도 있다. 그것은 악을 기르는 것이다.

인도불교에서는 매달 보름날(15일)과 그믐날(30일)에 대중들이 모두 모여서 계율을 한 조목씩 읽고 그것을 범한 사람은 대중 앞에서 고백, 참회하는 의식이 있다. 이것을 ‘포살(布薩)’이라고 한다. 또 ‘자자(自恣)’라고 하여 안거(安居, 결제)가 끝나는 날 저녁에 그동안 자기가 한 말이나 행동 가운데 잘못된 것이 있는지 주위 사람들에게 묻고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는 의식도 있다.

‘지과필개(知過必改)’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허물, 단점, 잘못을 알았다면 반드시 고쳐야 한다는 말인데, 이런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무지해서 모르는 사람도 있고 알아도 자존심 때문에 고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성장, 발전하지 못한다. 60살이 되어도, 80살이 되어 죽을 때가 되어도 똑같다. 이런 사람은 태어나면서 부터 포맷이 잘못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참회는 잘못된 마음을 정화하는 작업이다. 나쁜 마음을 정화하여 착한 마음으로 고치는 기능이다. 정수기가 물을 정화하고 정화조가 화장실을 정화하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불교에서 말하는 명상이나 참선, 위빠사나 등 수행의 목적도 마음(번뇌심)을 정화하는 데 있다. 증오심이나 분노 등이 정화되지 않는다면 그런 수행은 아무런 의미나 가치가 없다. 수행자가 스스로 마음을 조절하지 못한다면 그런 수행자는 일반인만도 못하다. 그래서 위빠사나 수행에서는 먼저 자비송(자비스러운 싯구)을 외운다. 자비심이 마음을 정화해주기 때문이다.

참회가 없는 수행은 ‘허상’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참회를 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참회하는 순간, 시기와 질투, 분노, 증오, 등 좋지 못한 생각 등 악심(惡心)들이 정화되고 순화된다. 마음이 악에서 선으로 바뀌어 진다. 그것이 ‘개과천선(改過遷善)’이다.

<천수경>에는 참회게가 있다. “내가 지난날 지은 모든 악업, 모두 ‘탐ㆍ진ㆍ치’ 때문이었네. 신구의로 지은 죄를 지금 모두 참회합니다”라는 싯구는 깊이 마음으로 새겨야 할 싯구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1817~1875)의 참회록이 있다. 자신의 젊은 날을 참회한 기록인데,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지난날을 생각해 보니 너무나도 나쁜 삶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죄 없는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간음을 하기도 하고 도둑질도 하는 등 갖가지 나쁜 짓을 했는데, 그는 깊은 죄의식에 사로잡혔다. 그리하여 ‘도대체 인생은 무엇인가?’ ‘나는 왜 사는가?’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이런 생각들이 걷잡을 수 없이 마음속을 파고들었다. 그는 통렬하게 반성하고 오열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이런 삶을 살았단 말인가?’

톨스토이는 참회록을 통해 통렬하게 반성하고 새롭게 거듭난다. 그리고 30년이 넘도록 이 반성을 토대로 ‘참되게 살기’, ‘바르게 살기’에 올인했다. <전쟁과 평화> 등 명작을 많이 남길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의 삶에 대한 깊은 참회와 성찰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참회와 반성은 철저한 자기비판과 성찰에서 출발한다. 치열한 참회에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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