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4일 발표… 갑사 템플스테이 등 추진

임진왜란 당시 최초 승리인 청주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승병장 기허당 영규 대사(생년 미상~1592·사진)가 공주시의 ‘8월의 역사인물로 선정됐다.

공주시(시장 김정섭)724일 정례 브리핑에서 공주시의 8월의 역사인물로 승병장 영규 대사를 선정하고 관련 기념사업을 펼치기로 했다고 밝혔다.

영규 대사는 공주 계룡면 월암리에 태어났으며, 본관은 밀양박씨, 호는 기허다. 최근 발굴된 <영규사실기>에 따르면 영규 대사는 19세에 계룡산 만정 북록(현 연천봉) 청련암에서 출가했으며, 영변 묘향산에서 서산 문하에서 20년간 수학하며 여러 범어경전과 외서를 공부했다. 공부를 마친 영규 대사는 은사의 뜻에 따라 갑사로 가서 주석하게 된다.

또한 영규 대사가 갑사에 있으면서 사제들을 도와 스스로 장작을 잡았고, 이를 쪼개 목검처럼 사용해 무예를 익혔다고 기록돼 있다.

대사의 검소함을 설명하는 대목도 있다. 기록에 따르면 영규 대사는 여름에는 베옷만, 겨울에는 솜도 넣지 않은 옷을 입었다. 이에 사중 대중들이 지나치게 검박하다고 지적하자, 대사는 옷이라는 것은 단지 몸을 덮는 것이면 족하다고 답했다.

영규 대사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병장이 되어 승병 800명을 이끌고 의병장 조헌과 함께 청주성을 수복하는 등 최초로 승병을 일으켰으며, 임진왜란 육전의 최초 승리를 이끌었다.

청주성 전투의 승리로 조정에서 영규대사에게 동지중추부사 벼슬(당상관)과 의복을 내렸으나 도착하기 전에 숨을 거두었고, 이후 승병(僧兵)이 곳곳에서 일어나는 계기가 됐다.

영규대사는 금산전투에서 부상당한 몸으로 갑사로 가다가 월암리 지금의 정려비각 부근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전해진다.

묘비는 1810(순조 10)방계 후손들이 세웠으며, 1738(영조 14) 승병장 휴정과 유정 그리고 영규의 영정을 봉안한 표충원이 건립돼 유교적 제향이 이뤄졌다. 1813(순조 13)에는 충절비가 세워졌다.

공주에는 유평리에 영규대사묘(충남도 기념물 제15), 월암리에 영규대사비(문화재자료 제56)가 있다. 대사를 제향하는 표충원(문화재자료 제52)이 갑사에 자리하고 있다.

공주시는 8월 역사인물 선정에 맞춰 영규 대사에 대한 다양한 기념사업을 추진한다.

이에 대해 공주시는 영규 대사의 뜻과 공적을 기리기 위해 최초의 승병장 영규대사의 이야기를 알아보는 영규대사와 함께하는 템플스테이830~31일 갑사에서 개최하며 925일에는 계룡면 유평리 영규대사 묘역에서 영규 대사 제향 및 추모제를 개최한다면서 영규 대사의 숭고한 정신과 애국혼을 널리 현창하고 이를 후세에 기리는 사업을 펼쳐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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