셈 베르메르스 교수, 반야연구원 국제학술대회서

회통사상, 사대부의 세계관
‘孝’ 수양할 교법으로 인정
고려 후기부터 佛·儒 분리

불교와 유교의 회통 사상이 신라 후기부터 고려까지 지배층들의 정식적인 이념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셈 베르메르스(Sem Vermeersch, 사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는 6월 2일 (사)반야불교문화연구원(원장 지안)이 통도사 반야암에서 ‘융합과 회통, 동아시아 불교의 전통과 토착화’를 주제로 개최한 국제학술대회에서 이 같이 주장했다.

셈 베르메르스 교수는 ‘한국불교사에서 유불회통과 혼합’이라는 주제발표에서 신라 후기부터 고려시대까지의 문헌자료를 통해 당시 시대의 회통담론에 대해 분석했다.

셈 베르메르스 교수는 <삼국사기>에 수록된 최치원의 ‘난랑비서(鸞읠碑序)’에 쓰여진 ‘이는 삼교(三敎)를 포함하고 뭇 백성들과 접하여 교화한다’는 등의 구절에  주목했다.

그는 “최치원은 불교, 유교, 도교가 나름의 역할이 있지만, 신라에는 삼교를 통합하는 풍류도가 있다고 했다. 이는 삼교가 따로 움직이지만 신라에는 이를 통합하는 풍속이 있다는 의미”라며 “삼교를 통합하는 방식은 사실상 중국의 호법론을 인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최치원은 자신이 지은 진감선사비에서 여산 혜원(334~416)이 논(論)한 “여래가 주공, 공자와 드러낸 이치는 다르지만 돌아가는 바는 한 길”이라는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최지원의 사상은 고려시대 정권의 사상적 바탕이 됐고, 회통사상도 그대로 이어졌다. 고려의 왕부터 관료까지 유교적 덕목의 양성이 불교에게 맡겨졌다. 특히 고려시대에는 효 사상이 불교를 통해 교양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에 대해 셈 베르메르스 교수는 고려 현종이 선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조성한 헌화사비를 예로 들었다. 현화사비 본문에 따르면 현종이 아버지의 무덤을 옮긴 후 사리가 기이하게 나타났고, 중국 황제가 현종의 효행에 감동해 대장경을 베풀었다고 전한다.

셈 베르메르스 교수는 “임금의 덕행이 주변 사람, 나아가 우주에게까지 응답을 일으킨다는 감응의 작동법”이라며 “현종의 충신 채충순이 집필한 현화사비 음기에는 더욱 명확하게 효를 불교와 유교의 근원으로 설명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불교와 유교가 분리된 것은 고려 후기 성리학이 소개되면서부터”라며 “하지만 많은 지식인들이 불교의 부패를 비판하면서도 여전히 불교를 애착하며 효나 다른 덕목을 닦기 위해 우수한 교법이라고 믿었다”고 밝혔다.  

셈 베르메르스 교수는 신라 후기부터 고려시대의 지배층을 관통하는 사상을 ‘유불회통’으로 봤다. 그는 “신라 후기에서 고려시대 까지의 유불회통(儒佛會通) 담론은 지배층의 정식이념”이라며 “고려 후기 ‘신흥’ 엘리트를 대표하는 이색도 불교를 깊이 존엄하고, 마음 닦는 법으로 유교보다 우세하다고 생각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회통사상은 적어도 일부 사대부에게는 지배적 세계관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제9회 반야학술상 공모도
한편, (사)반야불교문화연구원은 제9회 반야학술상을 오는 7월15일까지 공모한다. 응모 대상은 최근 3년간 불교학 및 불교문화 관련 연구업적이 뛰어난 중견급 이상의 연구자이며, 수상자 1명에게는 1000만원의 연구지원금이 수여된다.

추천 및 응모방법은 (사)반야불교문화연구원 홈페이지(http://www.banyaresearch.org)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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