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성제, 삶 속 실천해 나갈 가르침

그림. 강병호

사성제는 우주의 진리가 불교 교리로 체계화 되는 과정을 밝히는 개념이다. 삶과 더불어 수행정진 속에서 실천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 사성제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내가 부처다’ ‘내가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하루를 시작해 보자. 그렇다면 내가 부처될 수 있다는 것을 뒷받침 해줄 수 있는 생활이 따라야 한다.

부처가 되기 위해 행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되새길 것이
바로 고·집·멸·도 ‘사성제’이다


어떻게 하면 부처가 될 수 있는가? 여기서 부처님이 가르치신 실천방법이 고·집·멸·도 사성제이다. 생활 속에서 어떻게 불교를 실천하고 이해하고 체득하느냐 하는 문제가 바로 고·집·멸·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고·집·멸·도를 통해서 생활하고 수행하면 무아·무상·연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사성제란 무엇인가?
부처님께서 깨치신 것은 연기며, 사성제는 연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깨치신 것이 연기인데 최초의 가르침은 사성제를 가르쳤다. 그러므로 연기와 사성제는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다.

먼저 사성제의 가르침이 어떻게 체계화 되는지 알아보자.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허리가 아파서 병원에 간다. 허리가 아프다는 상태는 무엇인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고’가 된다. 병원에 가면 X-선 사진 촬영을 하는 등 왜 허리 통증의 원인을 찾는다.

허리가 뼈가 어긋나서 아픈지, 디스크라서 아픈지 아픈 원인을 찾아내야 한다. 그 찾아내는 과정이 바로 ‘집’이다. X-선을 찍어보니 디스크로 판명이 났다.

허리가 아픈 원인이 디스크 때문이었다. 여기서 허리가 아픈 것은 ‘고’이며, 원인은 디스크 때문이다. ‘집’, 즉 발생의 이유는 디스크인 것이다.

이제 수술, 교정 등 허리 디스크를 치료하기 위한 처방을 내려야 한다. 치료를 통해 허리가 다 나았다. 아픈 허리가 나은 것이 바로 현실적인 문제가 해결된 상태인 ‘멸’인 것이다.

아픈 허리를 수술해서 낫게 했다면 수술한 것이 바로 실천 방법인 ‘도’이다. 또 허리를 교정했다면 교정한 것이 실천 방법인 ‘도’인 것이다.

허리가 아프다는 자체가 ‘고’이다. 때문에 ‘고’는 과제의 제시이다. 어떤 문제가 나타나는 것이다. ‘집’은 X-선을 촬영해 아픈 상태, 원인을 찾는 것이다. 왜 허리가 아픈지 원인을 찾는 것이 바로 ‘집’의 발생 이유이다. 허리 아픈 것이 해결되고 극복돼 정상적인 상태가 되는 것이 ‘멸’이다. 현실적인 문제가 극복된 상태, 해결된 상태가 바로 ‘멸’이 된다. 그러면 이 ‘도’라는 것은 무엇인가?  허리를 낫게 한 것이 수술과 교정이라면 교정하는 것이 실천방법인 도인 것이다.

고·집·멸·도를 따져보니 부처님께서 2600년 전에 말씀하신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평생을 살아가면서 부처가 되기 위해서, 행복하기 위해서, 바르게 살기 위해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되새기면서 해결해야 할 것이 바로 고·집·멸·도 ‘사성제’이다. 과제의 제시, 발생의 이유, 현실의 극복, 실천방법이 고·집·멸·도인 것이다.

묘법 스님의 인과이야기
중국의 묘법 스님이 지은 〈인과이야기〉는 전생의 인과와 현생의 인과 문제를 풀어 놓은 책이다. 책 속에 이 같은 이야기가 있다. 주물공장에 다니는 어떤 성실한 사람이 있었는데 10년 전부터 무단히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그래서 X-선 사진도 촬영하고 온갖 방법을 다 해보았지만 허리가 낫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당신은 어떤 방법으로도 허리를 낫게 할 수 없으니 복대를 사용하는 수 밖에 없다고 했다. 또한 가급적이면 허리를 쓰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늘 복대를 차고 다녔다.

어느 날 우연히 묘법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스님을 찾아갔다. “스님께서는 전생의 인과를 잘 보신다고 해서 이렇게 찾아 왔습니다. 허리가 아파서 병원에도 가고 여러 가지 방법을 써 봐도 낫지 않아요. 어떻게 하면 나을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스님은 찾아 온 사람에게 “자네, 주물공장에 다니고 있지”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 사람은 깜짝 놀라면서 자신이 주물공장에서 평생 성실히 일하고 노력해서 높은 지위에도 올랐고 돈도 제법 벌어서 잘 산다고 했다.

묘법 스님은 “자네 집에는 공장에 있는 것은 다 있다”고 하니 그 사람은 “스님께서 어떻게 잘 아십니까”라고 놀라워 했다. 그는 “공장에 있는 물건들은 자신이 열심히 만들었기 때문에 한두 개 정도는 가져와도 괜찮다고 생각했다”며 “집에서 쓸 수 있는 못과 여러 가지 물건을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묘법 스님은 이렇게 경책했다. “자네는 아무 생각없이 공장의 물건들을 평생 가지고 왔는데 그것은 엄밀히 말해서 도둑질이며 남을 속이는 것으로 죄가 되는 것이다. 자네가 그 회사에 성실히 다니기 때문에 물건들을 가지고 와도 괜찮다고 하지만 자네가 평생 갖다 나른 못과 여러 가지 물건들을 생각해 보면 자네 허리가 아프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지 않는가?”

아무런 죄의식 없이 가지고 온 못과 나사의 무게 때문에 허리를 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 남자는 ‘정말 내가 죄를 지었구나, 도둑질을 했구나’하며 바로 그 자리에서 참회했다.

보름 후에 다시 스님을 찾았을 때 남자의 허리는 완벽히 치유됐다. 허리가 아프다고 했을 때 수술을 하고 교정을 하는 등 온갖 방법을 다 했지만 근본적인 치료가 되지 않았다. 일시적으로는 낫는 것 같지만 근본적인 치료가 되지 않는 한 항상 재발하게 된다.

육체에 생기는 병도 단순히 육체의 병으로 여기면 병은 영원히 낫지 않는다. 이생에서 병을 가지고 가면 다음 생에도 그 병을 그대로 가지게 된다. 근본적으로 그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참회하고 원인을 없애야 한다. 바로 원인을 제거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부처님께서 가르친 고·집·멸·도, 사성제이다.

싯다르타, 도를 이루어 부처 되다 
부처님도 처음 도를 이루고 전파했을 당시에는 인도의 많은 사상가와 다를 바가 없는 한 사람이었다. 정각 이후 부처님은 약 300km 떨어진 바라나까지 전도를 떠난다. 부처님은 깨친 바를 누구에게 전할 것인가를 생각하였다. 부처님이 처음 출가했을 때 도를 가르쳐 주신 분들은 이미 다 돌아가셨다. 그래서 자신과 같이 6년 동안 고행한 5비구를 찾아갔다. 수소문해 5비구가 있는 녹야원까지 300km나 되는 거리를 보름 이상 걸어서 찾아갔다.

하지만 5비구들은 부처님에게 냉정했다. “당신은 고행을 하다가 포기하고 간 것이 아닌가. 당신하고 이야기 할 것이 없다”면서 가르침을 거절하였다. 그러자 부처님은 “벗들이여, 내 얼굴을 보아라. 내 얼굴이 지금처럼 이렇게 빛난 적이 있느냐, 나는 도를 이루었다. 자네들이 내 말을 들어보고 난 연후에 그때 나를 내쳐도 좋다”고 했다. 5비구가 부처님의 얼굴을 쳐다보니 광채가 나면서 이제까지 자신들이 본 적이 없었던 거룩한 얼굴이었다. 그래서 5비구들은 부처님과 둘러앉아 공부했다.

부처님이 분명하게 깨우친 것은 연기인데 이 연기법을 사성제로 가르쳤다. 5비구와 부처님은 한 달 동안 설명과 질문을 반복했다. 사성제를 설명해 바로 알아듣는 것이 아니라 두 명이 나가서 탁발해 오면 6명이 나누어 먹고 3명이 탁발해 오면 6명이 나눠먹었다. 이렇게 탁발해서 공양을 하고 또 설명을 하고 또 질문을 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도 똑같은 행동을 되풀이 하였다.

그렇게 한 달 동안 계속하여 비로소 5비구 중에 한 명인 콘다냐가 처음으로 부처님이 설명하신 사성제와 연기의 인식 체계를 이해하고 깨닫게 된다. 콘다냐가 이해하고 깨우친 것을 보고 부처님은 너무도 좋아했다. “콘다냐가 깨달았다. 콘다냐가 깨달았다”며 부처님은 자신의 정각보다 더 기뻐했다. 이와 같이 최초의 법문은 사성제로 이뤄지게 된다.

필자는 고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열심히 사찰에 다녔다. 당시에는 두뇌 회전이 빨라 〈반야심경〉 〈천수경〉은 한 번 들으면 모두 외웠다. 당시 부처님의 존재는 절대적이었으며, 신격화된 부처를 다르게 바라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불교를 새로운 각도에서 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은 대학 다닐 때 현암사에서 번역한 일본판 불교전서가 있었는데 이 책에서 절대적이라고 생각했던 부처님이 참으로 진실되고 솔직한 인간임을 알게 됐다. 부처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 책을 보면서 불교를 바라보는 인식이 180도 바뀌었다. 아마 전생에 열심히 공부한 인연으로 불교경전을 보는 눈이 쉽게 열렸던 것 같다.

대학 1학년이었을 때 사성제를 고등학생들에게 어떻게 하면 쉽게 가르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그림을 그렸다. 당시 고안해서 그린 그림은 현재까지 평생 활용하고 있다. 전체 그림을  알고 있다면 각론을 이야기 하는 것은 쉽다.

공부 잘 하는 사람에게는 공부는 쉽다. 반대로 못하는 사람은 공부가 어렵다. 공부 잘 하는 학생에게는 공부가 신나고 못하는 학생에게는 짜증난다. 모든 것은 똑같은 이치다. 우리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고 또 잘 해야 한다.

그래서 고·집·멸·도를 평생 사용해야 하고 삶 속에서 실천해 나가야 한다. 고·집·멸·도를 과제의 제시, 발생의 이유, 현실의 극복, 실천 방법으로 설명했을 때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지 상상해 보자. 알고나면 불교는 재미있게 된다. 그냥 막연했던 고·집·멸·도가 나의 생각과 생활에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 때 얼마나 신기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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