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손경산 스님

부처님 법대로 살았던 스승
넓은 품으로 대중 허물 포용

경산 스님은 나의 은사 스님이다. 스님은 함경도에서 출가해 처음에는 철저하게 수행에만 정진하는 선승이었으나 비구와 대처간의 문제가 정리되면서 종단 일을 맡게 됐다. 경산 스님은 조계종 총무원장을 세 번이나 역임했으며, 동국대 재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나는 교도소 출소자 중 한 사람을 출가시킨 적이 있다. 법명은 자순이다. 그런데 그 스님은 출가할 때의 초발심을 잊고 여러 사찰을 돌아다니면서 행패를 일삼았다. 산중에서 자순 스님과 같은 폭력을 휘두르는 스님을 제지하기란 쉽지가 않은 일이었다. 자신의 지난날을 반성하고 수행에만 정진하겠다던 자순 스님은 산중 사람들의 그런 약점을 이용해 스님들에게 갖은 행패를 일삼았다. 수행중인 큰스님들을 찾아가 돈을 요구하기 일쑤였다.

“부처님의 삼보정재를 혼자 먹어서야 되겠소? 같이 나눠 먹읍시다.”

그렇게 주먹을 앞세워 협박을 해오면 힘없는 스님들은 절 운영자금을 자순 스님에게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자순 스님은 그뿐만이 아니라 종단 분쟁의 와중에서 불미스러운 일에 이용을 당하기도 했다. 그래서 내게도 많은 원망이 따랐다.

경산 스님이 성자암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당시 경산 스님을 모시던 이는 나이 많은 비구니였다. 그 비구니는 경산 스님을 진심으로 존경하며 마치 부처님을 모시듯 했다.

경산 스님을 찾아온 자순 스님은 뜻대로 돈을 얻지 못하자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자순은 문중의 모든 대중을 대신하여 경산 스님을 지극 정성으로 모시는 그 노 비구니가 돈을 내주지 않는다면서 멱살을 잡고 폭행을 하고 있었다. 노비구니의 비명소리에 놀란 경산 스님은 대경 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산 스님이 대노하여 호통을 치자 자순은 노장조차 비웃으며 유유히 성자암을 나갔다. 자순이 성자암에서 행패를 부렸다는 사실이 문중의 모든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경산 스님을 모시는 대중은 나를 몹시 원망했다.

경산 스님을 찾아가 진심으로 죄송한 마음을 전했을 때 경산 스님은 오히려 나를 달래 주셨다.

“삼중 스님이 내게 죄송할 것이 뭐 있어? 그놈 일은 그놈이 저지른 일이고, 삼중 스님은 오히려 사람 만들려고 한 일이니 개의치 마라.”

그것뿐이었다. 그 뒤에 경산 스님을 뵈었지만 경산 스님은 자순의 일을 한 번도 재론하지 않았다. 명경(明鏡)과도 같은 심성과 아량을 가진 경산 스님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내가 경산 스님의 입장이었다면 그렇게 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한때 대중들과 함께 청송의 중앙산 중앙암에 머문 적이 있다. 그때 같이 지내던 대중들 중에는 출소자들도 있었다. 재소자들과 함께 일종의 공동체 생활을 계획하던 무렵이었다. 그때 중앙암의 본사 주지였던 의현 스님과 황진경 총무원장이 얽히고 설킨 복잡한 일이 발생했다. 당시 중앙암 큰 절의 주지였던 곽동선 스님은 경산 스님과 함께 금강산에서 출가하여 함께 불교 교리를 배웠지만 오히려 경산 스님보다 출가 시기가 빠른 스님이었다. 그 분쟁으로 경산 스님이 참석한 가운데 논쟁이 벌어졌다. 곽동선 스님은 내게서 약점을 잡지 못하자 자순의 행실을 거론하며 나와 대중이 중앙암에 머물 수 없다고 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경산 스님이 말씀하셨다.

“자식이 많다보면 이런 자식도 있고 저런 자식도 있을 수 있는 것처럼 상좌가 많다보면 이런 상좌도 있고 저런 상좌도 있을 수 있으니 그 문제가 이유가 될 수는 없소.”

경산 스님은 언제나 청명한 가을 하늘과 같은 마음으로 대중들을 대했다. 한 번은 자순 말고도 또 다른 소매치기 전과가 있는 재소자에게 계를 준 적이 있었다. 그 재소자는 경산 스님이 머무는 절에서 수행을 하게 됐는데, 그 재소자가 온 뒤로 자주 사중의 돈과 물건이 없어져 대중이 문단속을 하느라 애를 먹은 적이 있었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대중공사가 열리게 되었다. 대중공사에 참석하여 대중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 경산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삼중은 지옥에 가서 교화를 하고 다니는데 겨우 지옥에서 나온 이 사람을 다시 그 지옥으로 돌려보낸다니, 그것은 안 될 말이다. 도리어 중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야 하거늘 잊어버릴 것들을 가지고 있었던 너희들이 잘못이다.”

이처럼 경산 스님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해보다는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고, 어떤 사람이라도 부처님 아래에서 언젠가는 선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믿는 스님이었다. 그리고 경산 스님은 분쟁보다는 화해와 용서를 먼저 생각하는 분이었다.

내가 중앙암에 있을 때, 큰절 주지 스님과 어느 보살이 지은 암자 사이에 소유권 분쟁이 생겼다. 분쟁은 법정으로 이어졌다. 나를 찾아 중앙암에 오신 경산 스님은 그 이야기를 듣고 몸소 분쟁을 해결하겠다며 나섰다. 나는 경산 스님에게 중간에 끼어들어 해결될 일이 아나라며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중이 되어서 분쟁을 보고 외면하면 안 되는 일이야. 화해가 되고 안 되고는 나중의 일이고 일단 분쟁을 만났으면 결코 그냥 피하면 안 되는 거야.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야지.”

나는 경산 스님의 말씀에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경산 스님의 말씀은 설법이었기 때문이다.

경산 스님은 노구를 이끌고 산꼭대기에 위치한 암자까지 올라 보살을 만났다. 경산 스님은 보살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이곳까지 왜 올라왔는지 아십니까? 화해를 시키기 위해서 왔습니다. 듣자하니 저 밑에 있는 주지하고 싸운다면서요? 재판 취하하세요.”

하지만 보살은 큰절의 주지 스님이 자신의 요구 조건을 들어줄 사람이 아니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경산 스님은 목소리를 높였다.

“어떻게 부처님의 제자라는 사람들이 서로 싸울 수 있습니까? 내 말을 믿고 취하하세요!”

밤을 새워서라도 경산 스님은 보살을 설득할 생각이었다. 나는 경산 스님 뒤에 앉아있던 보살에게 우선 경산 스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라고 눈짓을 보냈다. 경산 스님은 보살에게서 재판을 취하한다는 말을 듣고서야 암자를 나왔다. 그리고 큰절의 주지인 곽동선 스님에게 보살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역시 재판을 취하하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경산 스님이 떠난 뒤에도 분쟁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새삼 경산 스님이 그리운 것은 현재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 불교 내 갈등들을 지켜보면서 착잡한 심경이 들어서다. 화해와 화합을 통해 부처님의 제자로서 본연의 자세를 강조하는 경산 스님의 말씀과 행동이 다른 어떤 때보다도 절실하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경산스님(우측)과 삼중스님이 마주앉아 대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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