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믿음 편 16

“이보게, 그것은 삼척동자도 다 알지만 팔십 노인도 행하기는 어려운 것이라네.”

당나라의 조과도림(鳥?道林, 741~824) 선사가 당시 유명한 시인이자 정치가인 백낙천(白樂天, 772~846)의 온몸을 떨게 만든 한마디다. 학문과 식견이 뛰어나 젊은 나이에 항주(杭州)의 자사가 된 백낙천은 당대의 고승으로 알려진 조과 선사를 찾아가 가슴에 새길만한 법문을 들려달라고 청했다. 선사가 나쁜 짓 하지 말고 착하게 살라고 말하자 백낙천은 선사를 향해 “그거야 삼척동자라도 다 아는 거 아닙니까?”라고 물었다. 위에 인용한 말은 백낙천의 질문에 대한 선사의 답이다. 실천의 중요성을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일화다.

불교에서 실천을 상징하는 대표적 인물은 보현보살(普賢菩薩)이다. 대웅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분이다. 석가모니 붓다의 왼쪽에 문수보살이 있다면 오른쪽에는 보현보살이 있다. 문수와 보현은 여러 면에서 짝을 이루고 있다. 문수가 깨달음의 지성적 측면, 즉 지혜를 상징한다면 보현은 이를 실천하는 행(行)을 상징한다. 지혜를 나타내는 청색의 사자와 실천의 상징 흰색 코끼리도 묘하게 대조를 이룬다. 사찰에서 코끼리를 타고 있는 동자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분이 바로 보현보살이다.

법회의식에서 자주 불리는 찬불가 중에 ‘보현행원’이 있다. 보현보살의 행원(行願)이 담긴 노래다. 허공계와 중생계가 다할지라도 오늘 세운 이 서원을 끝없이 실천하겠다는 다짐으로 끝을 맺는다. 얼마나 소중하고 간절한 원이기에 이 세상 끝나는 날까지 끊임없이 실천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일까?

<보현행원품>은 보현보살의 10가지 행원을 담고 있는 경전이다. <화엄경>의 결론이라고 일컬을 만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화엄경>에서 선재동자(善財童子)는 53명의 선지식 가운데 문수보살을 맨 처음 만나 법을 구하고 마지막에 보현보살을 만나 지혜를 완성한다. 문수에게서 얻은 지혜를 보현의 실천을 통해 완성하고 있는 것이다. <보현행원품>이 <화엄경>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보현보살의 열 가지 행원은 ①모든 부처님께 예경하고(禮敬諸佛), ②여래를 우러러 찬탄하며(稱讚如來), ③널리 공양하고(廣修供養), ④업장을 참회하며(懺悔業障), ⑤남의 공덕을 따라 기뻐하고(隨喜功德), ⑥설법해 주기를 청하며(請轉法輪), ⑦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래 머무르기를 청하고(請佛住世), ⑧항상 부처님을 따라 배우며(常隨佛學), ⑨항상 중생들을 수순하고 (恒順衆生), ⑩널리 모두 회향하는 것(普皆廻向)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모든 사람은 본래 지혜가 충만한 부처님이라는 것을 깊이 믿고 내가 만나는 모든 이를 부처님처럼 대하라는 가르침이다. 그럴 때 비로소 진정한 평화와 행복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행하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지혜와 실천은 불교를 지탱하는 양대 축이다. 지혜를 통해 깨달음을 이루고 자비를 실천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둘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런데 보현보살에 대한 신앙 역시 문수신앙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 서는 그리 유행하지 않았다. 기복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고 불교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서도 보현신앙이 널리 퍼졌으면 하는 바람 이다.

<보현행원품>에서는 일체중생을 뿌리에, 불보살(佛菩薩)을 꽃과 열매에 비유하고 있다.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기 위해서는 충분한 물로 뿌리를 적셔야 한다. 그 물이 바로 자비라는 이름의 감로수다. 자비의 물이 중생이라는 뿌리에 닿지 않으면 정각(正覺)의 꽃과 열매는 불가능하다. 이 경전이 매력적인 이유도 최상의 깨달음은 자비의 실천으로 완성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愛 자비를! 세상愛 평화를!’

올해 부처님오신날 봉축표어다. 보현행원이 바로 자비와 평화를 실천하 는 길이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