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전남 해남 도솔암(兜率庵)

 

세상 모든 것에는 ‘이름’이 있다. 그리고 그 이름이라는 것에는 저마다 뜻이 있다. 각자는 하나의 ‘뜻’으로 존재한다. 유정은 유정대로 무정은 무정대로, 수없이 많은 뜻으로 와있는 것이다. 산의 이름 하나, 암자의 이름 하나도 마찬가지이다. 아니 그것만큼 뜻에서 시작하고 뜻으로 끝나는 것이 또 있을까. 같은 모습의 전각과 마당을 가진 것이 도량이지만 도량마다 뜻을 달리하여 서있고, 같은 모습의 초목과 산새들을 품은 것이 산이지만 그 역시 저마다 다른 뜻으로 서있는 것이다. 산의 이름은 저마다 다른 정기를 뜻하고, 암자의 이름은 그 이름마다 다른 불사의 뜻을 지니고 있다. 달마산 도솔암. ‘달마’와 ‘도솔’, 그 이름만 생각하면 그곳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이 아니며,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곳도 아니리라.

해남 8경 중 으뜸 도솔암
해발 400m 기암절벽 암자
법당·삼성각·마당이 전부
달마산·남해 조망 절경

도솔암에 이르는 길
이름만으로는 멀고도 먼 곳, 달마산 도솔암. 달마산(해발 489m)은 우리 땅의 끝이자 시작인 전남 해남군의 명산이다. 산이 기르는 나무가 거기서 거기고 산새의 울음소리가 거기서 거기겠지만 ‘달마’라는 이름을 거쳐서 오는 숲의 정기와 산새의 곡조는 불가(佛家)의 향훈 중에서도 선가(禪家)의 내력으로 읽힌다. 그것은 ‘이름’에서 비롯된 느낌의 퇴적들이다.

도솔암(해발 400m)은 선가의 내력으로 읽히는 달마산에 봉우리처럼 돋아있다. 도솔암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가지다. 빠르게 가는 길. 천천히 가는 길. 빠르게 가는 길도 한 가지는 아니고, 천천히 가는 길 또한 한 가지가 아니다. 가는 길이 여러 길인만큼 길을 나서기까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많은 생각 끝에 길을 나선다. ‘도솔’이라는 이름 때문일까. 그 많은 생각의 길에는 설명할 수 없는 설화적 언어와 내보일 수 없는 종교적 믿음들이 가득하다.

천천히 가기로 했다. 한 발 한 발 밟아 가기로 했다. 그 길을 도솔천으로 가는 길이라 생각하고 한 발작 한 발작에 모두 의미를 두기로 했다. 걸어서 갈 수 밖에 없는 길, 그 길의 이름은 ‘달마고도’. 어찌 그 길을 두고 다른 길로 갈 수 있을까.

구도의 길 ‘달마고도’
‘천년의 세월을 품은 땅으로 낮달을 찾아 떠나는 구도의 길’이라는 이름으로 2017년 11월 열린 ‘달마고도’길은 해남군과 미황사가 함께 달마산 일원에 조성한 길이다. 달마산을 한 바퀴 도는 17.74km의 달마고도는 4개 구간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미황사에서 큰바람재, 노시랑골, 몰고리재로 이어지는 둘레길이다. 달마고도는 다른 둘레길과는 다소 다른 형태의 길이다. 사람의 손을 탔지만 ‘인공’의 흔적을 최소화한 산길이다. 중장비와 외부 자재를 전혀 쓰지 않고 사람의 손길만으로 길을 냈다. 그래서 달마고도에는 ‘천년’이 온전히 남아있다고 할 수 있다.

미황사에서 출발한다. 일주문을 지나면 사천왕문 옆에 달마고도 안내판이 있다. 제4구간을 걷는다. 미황사 부도밭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달마고도에 들어선다. 도솔암까지는 약 4.5km.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고 했던가. 한 발작 한 발작 길은 아름답다.

길은 쉽다. 힘겨울 것이라 생각하고 나선 길은 힘겹지 않았다. 길은 그랬다. 쉽기로 하면 어려운 길이고, 어렵기로 하면 그 길은 쉬워진다. 도솔암까지의 길은 한동안 경사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오르는 길이 아니라 따르는 길이다. 앞서 간 이들의 발자국 위에 발자국을 얹으며 ‘구도의 길’이라 불리는 고도를 걷는다. 좁은 길. 넓은 길. 반듯한 길. 굽은 길. 푸근한 길. 급한 길. 나무가 많은 길. 돌이 많은 길. 그렇게 길은 그때그때 달랐다. 좁은 길에서는 바람도 몸을 좁혀 지나가고, 넓은 길에는 하늘이 많았다. 반듯한 길은 먼 곳을 바라보게 했고, 굽은 길은 길 위의 나를 보게 했다. 푸근한 길 위로는 새들이 날았고, 급한 길에서는 마음이 흔들렸다. 나무가 많은 길은 봄을 꿈꾸게 했고, 돌이 많은 길은 묵언이 어울렸다.

달마고도에는 도솔암으로 가는 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닿는 곳은 모두 달랐다. 미황사에서 출발해 약 4km쯤 걸으면 작은 ‘도솔암’ 표시판이 보인다. 여기서부터는 오르는 길이다. 둘레길을 놓고 조금은 가파른 400m의 산길을 오른다.

먼 곳으로부터 온 뜻 ‘도솔암’
“미륵은 미래에 석가모니부처님을 계승하는 보살로서, 원래 남인도 바라문의 아들이었으나 석존의 제자가 되고, 그 후 석존보다 먼저 입멸하여 하늘의 세계인 도솔천에 태어나 현재는 미륵의 정토인 도솔의 내원에서 천인들을 위해 법을 설하고 계신다.”

<미륵하생경>에서 도솔이란 이름을 만난다. 우리는 볼 수 없으며,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곳, 도솔천. 도솔이란 이름은 그렇게 먼 곳으로부터 온 뜻이다. 보살이 아득한 시간을 기다리며 법을 설하고 있는 곳. 미륵의 이름으로 설명되는 정토. 그곳의 이름을 옮겨온 도솔암이다.

거대한 기암 밑으로 삼성각이 먼저 보인다. 겨울나무 하나가 붉은 등 하나를 걸고 도량임을 일러준다.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 도솔암이다. 기암절벽 끝에 작은 법당 하나, 작은 마당과 마당만한 나무 하나, 처마 끝에 풍경 하나, 멀리 떨어져 있는 삼성각 하나. 그것으로 충분한, 도솔암이다.

해남 8경 중 으뜸인 달마산 도솔암은 통일신라 말기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동국여지승람) 의상대사가 미황사를 창건하기 전 머물렀으며, 많은 선지식들이 머물렀다. 도솔암은 정유재란 때 명랑해전에서 패한 왜구들이 해상퇴로가 막혀 달마산으로 퇴각할 때 화마를 겪었다. 빈터에 주춧돌과 기왓장만 남아있었다. 30여 년 전부터 여러 차례 불사가 시도됐지만 이루지 못했다. 2002년 오대산 월정사에 계셨던 법조 스님이 3일 동안의 선몽으로 한 번도 와본 적이 없었던 도솔암 터를 보고 불사의 원력을 세웠다. 그리고 32일 만에 단청까지 마친 법당을 세웠다. 지리적으로 쉽지 않은 불사였음에도 빠른 시간에 원만히 회향한 것은 부처님의 가피로 회자된다. 목자재 및 1,800 장의 흙기와를 들어 나른 공력이 있었다. 2006년 6월 16일 승보종찰 송광사의 현봉 스님을 증명법사로 하여 법당 낙성식을 했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삼성각을 지었다.

도솔암의 이름이 시작된 도솔천은 욕계의 6천 중 네 번째 하늘이다. 염부제로부터 32만 유순 위에 있으며, 가로 세로 8만 유순이다. 즐거움과 기쁨이 가득하고 팔정도에 대해서는 만족할 줄 몰라 닦고 또 닦는 곳이다. 도솔천에는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이 있는데, 내원은 장차 성불할 보살이 머무는 곳이다. 지금은 미륵보살이 머물고 있다. 석가모니부처님도 성불하기 전에 이곳에 머물렀다.

도솔천의 내원에는 모두 49원이 있고 외원은 천중의 거처다. <미륵상생경>은 49원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데, 도솔천이 장엄된 모습은 정토가 장엄된 모습을 대표하여 여러 경전에서 불국토를 서술할 때 자주 인용된다.

도솔천의 하루는 인간세의 4백 년에 해당하고 도솔천의 수명은 4천세라고 한다. 미륵보살은 부처님 입멸 후 56억 7천만 년 후에 이 땅에 하생하여 용화수 아래서 세 번 설법하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우리는 지나간 역사 속에서 미륵을 기다렸던 때가 많았다. ‘미륵’은 힘겨운 중생이 마지막으로 기댄 ‘곳’이다. 그리고 남아 있는 ‘기댈 곳’이기도 하다.

법당은 겨우 한 평 남짓한 작은 법당이다. 마당 역시 한 그루 나무 그림자도 겨우 들이는 작은 마당이다. 가로 세로 8만 유순의 도솔천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법당에 들어 여래 앞에 서니 한 평과 8만 유순은 같은 숫자였다. 부처와 보살을 볼 수 있는 곳이라면 그곳은 모두 8만 유순의 도솔천이며, 부처와 보살을 볼 수 없는 곳이라면 그곳은 한 평짜리 사바가 아닐까. 마당으로 나오니 발 아래로 달마산과 해남 땅, 남해가 한 눈에 다가온다. 절경이다. 나무 그림자 하나도 겨우 들이는 마당에서 내려다보는 사바가 도솔천이었다. 언젠가 미륵불의 시절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도솔암은 도솔천을 보게 해주는 암자다. 부처님의 말씀과 점점 멀어지는 세상에서 미륵의 시절이 기다려진다면 도솔암에 다녀오자.

작은 도솔암 마당에 서면 달마산과 해남 땅, 남해가 한 눈에 보인다. 절경이다.
도솔암 법당의 정면 모습.
달마산을 도는 달마고도 길.
도솔암의 삼성각.

도솔암 가는 길
*쉽고 빠른 길은 도솔암 주차장까지 차량으로 이동한 후 800m를 걷는 것이다. 이 길이 가장 쉽고 빠른 길이다. 고민해야 할 것은 주차장이 협소하다는 것. 또 하나는 길이 좁고 다소 험하다는 것. 고민을 해결하는 방법은 택시를 이용하는 것. 미황사 일주문 앞이나 송지면 사무소 근처에서 승차.
*천천히 걸어서 가는 길은 여러 등산 코스 중 하나를 선택해 걷는 것. (미황사의 달마산ㆍ달마고도 안내도 참조)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