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염화미소(拈花微笑)

‘꽃을 들어 보이자 미소를 지었다’는 뜻이다. 염화미소를 다른 말로는 ‘염화시중(拈花示衆, 꽃을 들어서 대중에게 보이다),’ 또는 ‘염화일소(拈花一笑)’라고도 한다. ‘화(花)’자 대신 ‘화(華)’자를 사용하여 ‘염화미소(拈華微笑)’라고 하기도 한다.

‘미소(微笑)’는 ‘말 없는 웃음’ ‘소리 없이 웃는 웃음’이다. ‘가장 아름다운 웃음’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말로 형용하면 ‘빙긋 웃는, 입가의 엷은 웃음’을 뜻한다. 의미적으로는 ‘상대방의 마음을 알고 있다’ ‘이해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갖고 있다.

미소 가운데는 ‘백제의 미소’ ‘ 천년의 미소’라고 하는 ‘반가사유상의 미소’가 있다. 국보 78호와 국보 83호의 두 반가사유상의 미소는 시공을 초월하여 전 세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일본 교토 고류지(광륭사)에도 똑같은 반가사유상이 있지만, 백제의 미소까지 그려내지는 못했다고 일본 미술사학자들도 토로하고 있다.

대부분의 불교사자성어, 불전고사성어(佛典故事成語)에는 일화가 얽혀 있는데 염화미소 역시 예외는 아니다. 〈대범천왕문불결의경(大梵天王問佛엄疑쒔)〉 제3권 ‘여화품’에서 염화미소의 태동을 찾을 수 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영축산(영취산, 기사굴산) 정상에 있는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설법을 하실 때의 일이다. 고대 인도 마가다국의 수도인 라자가하(왕사성) 동북쪽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영축산은 부처님께서 수많은 경전을 설하신 곳으로도 유명하다.

부처님의 법문을 듣기 위해 마하가섭, 수보리, 사리불, 목건련, 아난 등 10대 제자를 비롯하여 많은 제자들이 모였다. 부처님께서 법문을 하시기 위하여 법상에 오르셨다. 그런데 법상에 오르신 지 한참 동안 묵묵히 앞만 응시하고 계셨다. 이것을 선에서는 ‘양구(良久)’ ‘묵연양구(默然良久)’라고 한다.

이윽고 부처님께서는 법문 대신 ‘앞에 있는 꽃을 한 송이 들어 대중에게 보이셨다. 전례 없는 부처님의 행동에 그 까닭을 모르는 대중은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다. 바로 그 때 수제자(首弟子) 마하가섭이 미소(微笑)를 지어 보였다. 부처님께서 꽃을 들어 보인 의미를 오직 마하가섭만이 알아차렸던 것이다. 부처님께서 마하가섭의 미소를 보시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나에게 있는 정법안장(正法眼藏)과 열반묘심(涅槃妙心), 실상무상(實相無相),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싱外깎傳)의 심오한 이치를 마하가섭에게 부촉한다.”(〈대범천왕문불결의경〉 제3권 여화품).

정법안장이란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최고의 진리, 정법의 진리, 반야지혜를 가리킨다. 정법안장을 가섭 존자에게 부촉한다는 것은 곧 가섭에게 법을 전한다는 뜻이다. 염화미소는 부처님과 제자 가섭의 마음이 상통했음을 뜻한다. 그것을 선불교에서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고 하는데, 주로 스승과 제자의 깨달은 경지가 거의 같을 때, 그리하여 스승이 제자에게 법을 전할 때 사용한다. 언어 문자가 아닌 마음이 통하여 마음으로 진리, 정법안장을 전했다는 것이다.

중국의 선불교는 이 ‘염화미소’의 고사(故事)에서 발원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외별전(敎外別傳, 경전 외에 특별히 전한)의 미소’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선불교(선종)의 초조는 보리달마이고, 2조는 혜가인데, 이들이 모두 선(禪)의 법맥 상으로는 부처님께서 염화미소로 가섭에게 전한 불립문자, 교외별전의 가르침을 계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역사적 사실과 일치하는 것은 아님).

염화미소는 선수행자들이 참구한 공안(화두)으로도 널리 전해졌다. 선종(禪宗)의 여러 어록과 문헌에 수록되어 있는데, 선의 대표적인 공안집인 〈무문관(無門關)〉 제6칙에 ‘세존염화(世尊拈花)’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말이 많은 세상, 말과 매체가 수도 없이 널려 있어도 ‘자기주장’만 하고 있는 세상, 소통하기 힘든 세상이다. 오로지 자기주장, 자기생각만 옳다는 것은 우치(愚癡)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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