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자비다선 차명상-3) 차명상의 특성

··흐름과 일미
명상의 수단인 생각(알아차림, 사유, 상상)과 감정, 언어는 그대로 차명상에서도 적용된다. 그렇다면 차명상의 특성은 무엇일까? (다르마)을 바르게 아는 지혜와 자비를 위해 이미지를 시각화하는 상상, 사마타와 위빠사나, 자비가 한 덩어리가 되게 하는 조건으로 차의 색··미가 있다. 차의 색향미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사람과 자연을 상호의존으로, 인과의존으로 이야기한다. 이와 같이 차의 이야기가 차명상의 특성이 된다. 차의 색향미 이야기 흐름을 통하여 다르마를 드러내고 지혜가 생기도록 명상하는 것이 차명상이다. 그래서 이야기 흐름이 다르마로 흐르게 하는 상상과 상상 속에서 알아차림과 추론이 작용하고, 언구의 멘트로 다르마가 드러나도록 한다. 그리하여 지혜와 자비가 일어나게 하는 틀을 가지게 한다.

모든 것의 공통되는 현상이 다르마이다. 그러므로 회복해야할 마음의 본성이 다르마이며 또한 마음의 본성이 명상의 수단도 된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이야기의 흐름을 매듭으로 나누면 여러 가지 명상이 되고 이야기의 흐름을 하나로 통합하면 하나의 명상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삼라만상 우주 모든 것을 일미(다르마)로 회통되게 하는 것이 차명상이다.

명상 수단인 생각·감정·언어
차명상에서도 그대로 적용돼
다르마 아는 순간 지혜 생겨
모든 생명에 대한 연민 발현

이미지를 시각화하는 상상, 알아차림과 사유, 그리고 이야기의 흐름이라는 네 가지 틀을 구성하는 요소로써 언구, 비유, 심리, 상호의존, 인과, 변화, (), 자아 없음과 자성 없음이 있다. 이 네 가지 틀과 구성 요소는 망념과 망상이 일어날 때 그 번뇌를 다르마로 보게 한다. , 다르마(一味)를 보게 하는 집중과 사유통찰, 자비라는 명상수단이 생기게 한다. 또한 네 가지 틀이 그대로 다르마를 보는 명상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 결과 잠재되어 있던 진금과 같은 마음의 본성인 공적함이 네 가지 틀의 힘으로 인하여 무지와 번뇌 망상의 껍질을 깨고 나타나면서 번뇌 망상을 제거하기 시작하는데 이름하여 지혜이다.

이 지혜는 특히 차명상 틀의 요소 가운데 다르마가 마음에 영향을 줌으로써 발생한다. 지혜의 특성이 무지와 번뇌 망상을 없애고 모든 것을 하나로 꿰뚫는 것이다. 그래서 지혜에 의해서 삼라만상 모든 것의 우주를 공성 하나로 꿰뚫는 일미에 대한 이해가 생기고, 이해하는 그 마음도 일미임을 이해한다.

그리고 지혜의 대상이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이 오직 마음뿐 다른 경계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마음에서 도덕성과 삼매와 지혜가 상승하는 것이다. 이 지혜로 하나로 꿰뚫는 일미를 실천한다. 그 실천이 자비행이다. 자비행에 자비심의 차원이 있다. 중생연자비에서 법연자비, 무연자비로 상승한다.

전통적인 명상체계-회통
자비다선 차명상은 다선일미(茶禪一味) 차명상법 안에 있는 열두 가지의 다선법 중에 핵심이 되는 명상 방법이다. 다선일미 차명상을 통해 일미(一味)를 깨닫게 될 때 무연자비가 실현된다. 그래서 자비다선 차명상이라 하는 것이다.

열두 가지의 본 수행법은 마치 남방의 수행 논서인 <청정도론>에 사마타수행법이 40여 가지나 되듯이, 기본 차명상으로 깨침의 다실 꾸미기 뜻 새기기 명상 행다선 자비다선 오색차 명상, 색 한마음 다선 명상 향 한마음 다선명상 맛 한마음 다선 명상 연꽃 찻잔 일곱 가지 뜻에 들어가기 명상 색향미 감로차 마시기 명상 주인과 손님, 다선일미 차명상 다선시 명상 화두차 명상 등 응용의 차명상법이 50개 내지 60개 이상 된다. 차명상법을 나누면 여러 개의 명상이 되고 통합하면 하나의 명상이 된다. 이 모두가 사마타, 위빠사나로 다르마()을 알아차려 모든 것을 한 마음, 일미로 통합되고 회통하기 때문이다.

요즘의 대다수 명상법을 보면 집중도 없는 것 같고, 특히 지혜를 얻는 위빠사나에 대한 것이 없는 것 같다. 거의 명상힐링이라는 말을 쓰는데, 지혜를 얻는 방법에 대한 제시를 못 하고 있다. 이러한 명상은 맛보기식 명상, 또는 1회성 명상이라고도 한다. 지속성이 없기 때문이며 다르마()에 대한 지혜가 없기 때문이다.

집중의 삼매와 사유통찰의 지혜는 다르마를 알아 하나로 회통시키는 수단이다. 수행법이 수없이 많다 하더라도 사실 딱 이 두 가지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 원효 스님께서는 범망경보살계품사기(梵網經菩薩戒品私記)’에서 열반이라는 성에 사대문(四大門)이 있고 사대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굉장히 많은데 그 열반의 성에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다 하나가 된다고 설하였다.

굉장히 많은 길이 있어도 사마타와 위빠사나뿐이라는 것이다. 초기경전에는 처음에 사마타수행을 하고 난 뒤 위빠사나수행으로 들어가고, 두 번째는 위빠사나수행에서 사마타로 들어가는 것이 있고, 세 번째는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쌍수(雙修)하는 것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보다 더 수승한 네 번째 길이 있다. 법문 듣고 즉각 깨닫는 길이다.

이 수행 중에서 세 번째 길인 집중명상과 분석명상을 같이 닦으면, 명상수행의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차명상은 바로 지와 관이 있고, 지관(止觀)을 쌍수(雙修)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법의 언구를 통해 법속에 있는 진실을 깨닫는 것도 매우 빠른 방법이다. 다선시(茶禪詩) 명상에서 이 방법을 쓴다. 이러한 빠른 방법은 모두 다르마를 깨닫는 방법이기도 한다. 다르마를 아는 순간 모든 것을 하나로 꿰뚫어 보는 지혜가 생긴다. 다르마는 무시이래(無始以來)의 것이며, 일체 모든 것이 다르마를 의지하고 있으며, 열반과 윤회도 다르마이기에 다르마를 알기만 하면 모든 것을 아는 것이다.

이 다르마를 바뀌지 않는 불변과 인연을 따르는 수연(隨緣)으로 압축하며, 불변과 수연이 모든 것의 근본인 두 번째도 세 번째도 아닌 제일의 뜻인 공(第一義空)으로 둘이 아니므로 주객이 없어 하나이며 공의 한 가지 맛이므로 일미이다. 그래서 다르마를 아는 것은 모든 것을 하나의 맛으로 꿰뚫어 보고 아는 지혜이다. , 일미의 지혜이다. 지혜의 내용이 일미이므로 지혜가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생사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대자유를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정무정(有情無情) 모든 것을 다르마인 일미로 회통하는 것이 다선일미의 차명상이며 자비다선 차명상인 것이다.

회통이란 모일 회(), 통할 통()으로 스마트폰과 같다. 스마트폰 안에는 휴대전화 기능, 인터넷 접속 등의 데이터 통신 기능, TV, 라디오 방송 시청취 기능, 카메라, 문서작업기능 등 모두 다 있다. 이것을 펼치면 여러 가지 기능이 나타난다. 이 모두를 하나로 통합하여 통하게 한 것이다. 차명상도 마찬가지이다. 다른 이름으로는 다선일미 차명상, 일미다선이라고 하며 자비다선 차명상이라고 하는 것이다.

一味로 꿰뚫는 회통
깨침의 다실 꾸미기 뜻 새기기 명상과 행다선과 자비다선과 오색차명상, 색 한마음 다선 명상 등의 차명상을 통하여 다르마를 아는 지혜가 생기면 지혜의 대상이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지혜라는 마음만 있을 뿐 다른 경계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지혜는 차명상의 틀이라는 수단을 통해 다르마를 알게 되고 그때 일어난다. 번뇌망상의 단단한 껍질을 깨고 잠재능력과 가능성을 가진 마음을 격발시켜준다. 마음의 본성이 다르마이고 다르마는 지혜와 짝을 이룬다. 그러므로 지혜가 다르마를 알아보고 다르마에 의해 마음이 지혜로 나타난다. 차명상의 지혜 관찰로 한 덩어리의 마음이 발견되고, 그 마음이 찰나로 사라져도 마음은 존속하는 불연속의 연속체임을 알게 되고, 이 마음을 자아라고 이름 하는 것도 알게 된다. 불연속의 연속하는 마음이 과거, 현재, 미래 어디에도 얻을 수 없음을 알게 되면 마음의 본성이 자성이 없어 청정함을 깨치게 된다. , 조작이 없어 본연이며 생로병사가 없어 불사(不死)이며 주객과 높낮이가 없어 평등하며 진여(眞如)인 무아의 아(), 공과 불공의 제일의공(第一義空)으로 본래면목이다. 그래서 번뇌와 죄라고 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없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이 밖으로 펼쳐지는 현상은 인연을 따라 형상을 이루는데 모든 것이 변화(無常), 상호의존(緣起)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마음의 본성인 공적 그대로 본래면목은 바뀌지 않는다. 마치 금으로 장식구를 만들어도 금의 노란 성품이 바뀌지 않는 이치와 같다. 그래서 마음의 잠재되어 있던 진금과 같은 공적한 성품이 현실화되면서 인연따라 갖가지의 모습을 하더라도 진금과 같은 하나의 맛으로 변함이 없다. 이것이 일미로 회통하는 과정이다.

차명상을 통하여 지혜가 생겨서 하나로 꿰뚫어 갈 때 만나는 모든 생명을 감성적인 사랑과 연민으로 대하게 된다. 나아가 한량없는 마음을 계발하여 생명 있는 모든 존재들의 괴로움을 해결해 주는 것이다. 이것이 자비다선의 자비이다.

자비다선 차명상의 일미로 회통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이야기가 있다. 두 번째는 그 이야기 전개하는 틀은 상상 속에서 이루어진다. 상상을 활용하는 것이다. 상상을 활용하는 명상법은 2,600년 전에 붓다께서 가르쳐주신 관상(觀想)하는 방법이다. 세 번째, 그 이야기를 따라서 가다 보면 집중하는 사마타가 그 안에 있고, 지혜를 얻는 위빠사나가 그 안에 있다. 특히 위빠사나 중에서 사유 분석하여 통찰하는 것이 들어가 있다.

네 번째, 그 결과 모든 것은 변한다는 한 가지 맛으로 회통하는 다선일미를 깨달을 수 있다. 또한 상호의존의 연기(緣起)와 주재하는 자아 없음[無我]과 스스로 존재하는 성품[自性] 없음인 공()이라는 한 가지 맛으로도 정신현상과 물질현상 미시세계와 거시세계 모두를 꿰뚫는 지혜를 얻고, 다선일미를 깨닫고, 체득할 수 있다. 상상과 이야기, 그 속에서 사마타와 위빠사나로 다르마를 알게 되어 모든 것을 하나로 꿰뚫는 이 명상은 대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생각과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놓아버림과 시원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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